“아이고, 저도 집에서 차례 지내고 싶죠.”
13년 동안 일한 코오롱에서 2005년 2월 해고당한 최일배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실의 원료인 ‘원사’를 만드는 생산직 노동자였다.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최씨를 포함한 78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길고 긴 투쟁을 이어오는 최씨에게 해결의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함께 회사에서 쫓겨난 이 가운데 투쟁에 동참하는 이는 이제 14명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지친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최씨는 지난해 5월부터 경기 과천에 있는 코오롱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조건없는 복직’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추석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최씨는 더욱 우울해진다. 고작 두명이 지키고 있는 천막이지만, 명절이라고 비워놓을 수는 없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농성장을 비울 수 없어서 명절을 천막 안에서 보냅니다. 결의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게 하루이틀씩 비우기 시작하면 투쟁 동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명절 때 천막 안에 앉아 있으면 별 생각이 다 납니다.” 최씨는 말끝을 흐렸다.
최씨 같은 투쟁 사업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명절은 ‘남의 일’이다. 명절 분위기로 들뜬 사회는 이들을 더욱 외면한다. 농성장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명절기간 내내 머무는 답답한 천막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건 굳게 닫힌 텅 빈 건물뿐이다.
명절에서 소외당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합동 차례를 치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다.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투쟁단은 오는 19일 추석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차례상을 차린다. 쌍용차,골든브릿지, 공무원 노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등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차례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함께 모여 밥을 먹기로 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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