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고향으로 추석을 3일 앞둔 9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케이티엑스(KTX) 승강장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직장인 박아무개(35)씨는 지난 6월 케이티엑스(KTX) 마산역에서 서울로 가는 표를 구입하며 ‘마산역발’이 아닌 그 다음 역인 ‘창원역발’로 표를 끊었다. 불과 5분여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구간이다보니 표값을 몇 백원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박씨의 ‘부정승차’는 3분을 버티지 못하고 여승무원에게 발각됐다. 박씨는 “마산역 근처에서 약속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마산역에서 탔다고 둘러댔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단속될 줄 몰랐다”고 했다. 박씨는 부정승차할 경우 최대 10배까지 물리는 부과금은 피할 수 있었지만, 표를 취소하고 마산역발 표로 다시 끊으면서 4천원 정도의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
지난 달 추석 열차표 예매 전쟁을 치른 이들이 귀성길에 올랐다. 북적이는 귀성인파 속에 부정승차는 얼마나 이뤄질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이 추석을 앞두고 한국철도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케이티엑스·새마을·누리로·무궁화·통근열차에서 이뤄진 부정승차 단속건수는 모두 21만3128건, 금액으로 따지면 31억6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부정승차 유형은 표를 끊지 않고 승차(무표)하는 경우로 20만8995건(30억7900여만원)이었는데, 무궁화호가 9만3034건(6억4300여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케이티엑스 5만4918건(18억9300여만원), 새마을 4만2898건(4억4500여만원), 누리로 1만8125건(9600여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무표 승차 다음으로 많은 것은 성인이 어린이 할인권을 끊거나, 비장애인이 장애인 할인권을 끊어 사용하는 경우로 3394건(7400여만원)이 단속됐다. 서울~수원처럼 짧은 구간 표를 끊은 뒤 부산 등 장거리 승차를 하다 단속된 경우는 724건(700여만원)이었다.
노선별로는 경부선의 부정승차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경부선 부정승차 단속 건수는 14만1491건에 달했다. 하지만 단속 액수는 224만여원에 불과했다. ‘마산~창원’이나 ‘서울~수원’처럼 아주 짧은 구간을 가면서 무임승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호남선은 2만2777건(3억6천여만원), 장항선 1만9912건(1억8천여만원), 전라선 1만1600건(1억4100여만원), 경전선 4875건(1억3800여만원), 경복선 3275건(1800여만원) 순으로 부정승차가 많이 이뤄졌다.
부정승차 단속 건수는 해마다 급증하다가 단속이 강화되면 이듬해 하락했다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2006년에는 3만619건(3억6600여만원)이던 부정승차 단속 건수는, 2007년 5만5082건(7억7800여만원), 2008년 10만5934건(29억9800여만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7만6761건(15억5900여만원)으로 하락한 뒤, 이듬해 2010년 11만1054건(19억여원)으로 다시 급증하면서 2011년에는 15만2603건(25억1700여만원), 지난해에는 21만3128건을 기록했다. 코레일 여객본부 관계자는 “직원들이 단속을 강화하면 부정승차 건수가 늘어나게 되지만, 그 영향으로 부정승차 시도 건수 자체가 줄어드는 경향도 함께 나타난다”고 했다. 정우택 의원은 “코레일은 연간 적자가 5천억원씩 누적되고 있고 철도운영부채만 약 15조원에 육박한다. 코레일의 부채는 결국 국민의 부담인 만큼, 부정승차에 대해서도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추석 연휴 때는 부정승차가 증가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코레일 쪽 대답이다. 여객본부 여객마케팅처 관계자는 “명절 때보다는 평일 출퇴근 시간대, 구간으로는 장거리 승객보다는 짧은 단구간 승객, 좌석보다는 입석이나 자유석 승객들의 부정승차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거리 승객들은 오히려 정상적으로 표를 발권해 승차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승차를 하려는 사람들도 오랜 시간 서서 가야하는 신체적 고통, 비어있는 자리로 이른바 ‘메뚜기’를 뛰어야 하는 불편함, 늘어난 구간만큼 단속에 걸릴 확률도 커지기 때문에 오히려 좌석표를 끊는 다는 것이다. 다만, 좌석에 앉아 있지 않고 식당칸, 카페객차에 앉아 있는 승객들은 주요 단속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장거리보다는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 짧은 구간을 오가는 통근열차 이용 승객들 가운데 표를 끊지 않는 ‘무표 승차’가 많다고 한다. 당연히 부정승차 단속도 출퇴근 시간대-단구간-통근열차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열차 각 차량의 부정승차 여부를 어떻게 알까. 승무원들은 승차권 발매단말기를 들고 다닌다. 해당 차량에 들어서면 각 좌석마다의 승차권발매 현황이 단말기에 뜨게 된다. 승차권이 발매되지 않은 좌석에 승객이 앉아있다면 우선적으로 승차권 확인에 들어간다. 입석·자유석 이용 승객도 승차권 구입 여부를 유심히 살핀다는 것이 코레일 쪽 설명이다.
코레일 쪽은 부정승차에 대해 최대 10배까지 부과금을 징수하지만, 현장에서 승무원과 어느 정도의 ‘조정’은 가능하다. 열차시간이 빠듯해서 표를 구입하지 못하고 승차했을 경우, 승무원에게 이를 미리 알려주면 0.5배 정도의 부과금만 물리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고의성이 뚜렷할 경우에는 표값의 10배까지 부과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