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가족] 가족관계 증명서
엄마, 밥은 제대로 해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늘 걱정하는 막내딸이에요. 명절에도 잘 안 내려가서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딸에게 방해될까 봐 연락 잘 안 하는 거 알아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편집한 책으로 대신하는 무심한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큰 것도요. 책을 들고 직접 전해드리지 못하고 택배 아저씨 손을 통해 받게 해서 미안해요.
지난번 편집한 책을 보냈을 때 잘 받았다는 엄마 문자를 받고 얼마 안 돼 아빠에게 문자가 왔어요. “니네 엄마 책 읽으라 밤샜다”라는 내용이었어요. 딸이 편집한 책을 받으면 코멘트 해주려고 바쁜 일 제쳐두고 밤새 읽는 거 말은 안 했지만 고마워하고 있어요. 편집자 생활 8년 동안 늘상 제1의 독자가 엄마라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이렇게 책과 함께하는 엄마가 있다는 건 행운이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엄마의 영향이 컸다는 것도 알아요. 좋은 책을 먼저 권해주고 얘기할 수 있는 엄마가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엄마,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자주 얘기하잖아요.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요. 그런데 저는 정작 엄마가 왜 이렇게 책에 빠져 살게 되었는지 단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어요. 제가 떠올리는 엄마는 집안 모든 일은 제쳐두고 책만 읽는 독서광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거든요. 엄마 하면 책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말이에요.
엄마가 밥 먹을 시간에 책만 읽고 잘 시간에 스탠드 켜놓고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원망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건강도 안 좋아지셨는데 돋보기에 의지한 채 책 읽으시면 힘드시니까 너무 오래 보진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해도 엄마는 또 한 권을 다 읽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어요. 책 없이 살 수 없다고 말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우리 엄마 못 말리는구나 생각하죠.
제가 서른두해를 보내면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궁금한 게 생겼어요. 어떤 이유로 엄마가 책에 빠져 살게 되었는지, 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는지,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물음표로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엄마를 주부나 어머니가 아닌 한 여자로 바라보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던 서른두살에 엄마의 딸은 비로소 엄마를 한 여자로 바라보게 되었나 봐요. 이젠 제1의 독자가 아니라 제1의 저자가 되어 당신의 삶에 대해 얘기해주시겠어요? 왜 삶을 송두리째 뺏을 만큼 책을 읽어야만 했는지, 왜 쓰지 않고 읽기만 하는지를요. 엄마를 사랑하는 막내딸은 그 어떤 저자들의 원고보다 엄마의 삶을 더 보고 싶거든요!
행간과 자간 사이를 유영하는 막내딸이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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