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주연배우가 ‘생일 햄버거’ 쏘자, 기획사는 120인분 식대 떼먹어

등록 2013-10-06 19:31수정 2013-10-07 08:19

<문화방송> 드라마 <동이>의 보조출연자들이 2010년 8월19일 경북 문경 촬영장의 소품 창고에서 밥을 먹고 있다.
<문화방송> 드라마 <동이>의 보조출연자들이 2010년 8월19일 경북 문경 촬영장의 소품 창고에서 밥을 먹고 있다.
엑스트라 쥐어짜는 드라마 왕국 ④ 밥그릇에 담긴 차별

“왜 밥을 안 줍니까?” “햄버거 드렸잖아요.”

영화 <미인도>를 촬영하던 2008년 8월16일 경기도 양평 양수리 촬영장의 점심시간.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연배우 김규리씨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햄버거·음료수를 제작진과 보조출연자들에게 돌렸다. ㅍ기획사는 이 햄버거를 핑계로 보조출연자들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주린 보조출연자들이 분노했다. “그건 김규리씨가 기획사랑 상관 없이 선물한 거잖아요!” 기획사는 보조출연자들에게 일당 3만원에 더해 5000원 또는 5000원짜리 식사를 지급한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기획사 반장은 “햄버거가 식대보다 더 비싼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촬영장에 있던 보조출연자는 120여명이었다. 화가 난 보조출연자 ㅇ씨는 여배우의 얼굴이 그려진 햄버거 봉투를 들고 기획사 반장에게 따졌고, 반장은 뭐가 문제냐는 태도를 보였다. ㅇ씨는 기획사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 항의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눈 앞에서 점심값 60만원을 도둑맞은 보조출연자들은 출연료라도 받기 위해 다음날도 군말 없이 촬영을 이어가야 했다.

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제공된 보조출연자 식사.
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제공된 보조출연자 식사.

제작사는 1인당 6200원 주지만
기획사 700원 떼고 5500원 책정
현장선 이 돈에서 또 몇백원 떼여

‘4500원 도시락’ 불고기 빼고 맞추고
밥에 김치·김·단무지만 얹혀있기도
야식시간도 배우·스태프만의 것

기획사의 보조출연자 밥값 떼먹기는 오랜 관행이다. 제작사나 방송사로부터 기획사가 받아 보조출연자들에게 줘야 할 밥값 중 일부를 떼는 것을 전국보조출연자노조가 인정했을 정도다. 현재 지상파 방송3사가 용역 계약을 맺은 기획사에 주는 밥값은 보조출연자 1인당 6200원. 기획사는 이 가운데 700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떼고 5500원을 현금 또는 식사로 주기로 노조와 약속했다. 기획사는 밥값 말고도 출연료의 17%, 지역 출장 지원금과 교통비 등에서도 일정 수수료를 뗀다. 노조 관계자는 “기획사가 밥값에서 수수료를 떼지 않으면 운영이 어렵다고 사정해 임금·단체협약에서 인정했다. 떼고 남은 5500원 밥값이라도 꼭 보장하란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기획사가 수수료 700원을 떼고도 현장 반장 등은 또 다시 보조출연자들의 밥값에서 몇 백원씩 손을 댄다. “수십년간 지속된 밥값 착취를 기획사가 묵인한다. 방송국 피디는 알고 있는가.” “차라리 대도가 될지언정 벼룩의 간을 빼먹는 좀도둑이 되지 말거라.” “도시락 가격이 그대로 나와있는데 어찌 눈속임을 하는지 모르겠다.” 보조출연자들은 촬영장에서 식대 일부를 빼앗겼다며 부실한 밥 사진을 노조 누리집의 익명 게시판에 올리곤 한다. 2010년 6월29일 한 보조출연자가 게시판에 올린 도시락 사진을 <한겨레>가 확인해보니, ㅎ업체의 4500원짜리 도시락 메뉴에서 불고기를 빼고 맞춤 제작한 것이었다.

지난달 종영한 <한국방송>(KBS) 드라마 <칼과 꽃> 촬영 현장에서도 5000원짜리 도시락이 지급됐다. 충북 단양과 충남 부여 등지에서 촬영이 이뤄질 때 ㄱ기획사는 보조출연자들에게 ㅇ업체의 도시락을 점심으로 지급했다. <한겨레> 취재진이 ㅇ업체에 확인해 보니, 도시락은 임금·단체협약과 달리 5000원짜리였다. 이마저도 제작사가 ㅇ업체로부터 협찬받은 것이었다. ㅇ업체는 드라마에 자막 광고를 내는 대가로 보조출연자와 스태프들의 도시락 2000개 등을 협찬했다. ㄱ기획사는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하다 뒤늦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 제작사로부터 밥값 대신 도시락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사 반장이 보조출연자 눈 앞에서 밥값 일부를 가로채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해 5월21일 <문화방송>(MBC) 드라마 <닥터진>을 촬영하던 경기도 용인 드라미아 세트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촬영장에 밥차나 도시락을 들여오는 게 여의치 않자 ㅌ기획사 ㅎ반장은 보조출연자들한테 6000원씩 걷었다. 돈을 모아 식당에 밥값을 냈지만 잔돈은 보조출연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식당에 준 1인당 밥값은 5500원. 이후 노조가 기획사에 공문을 보내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기획사가 보조출연자들의 은행계좌로 500원씩 돌려줬다.

밥값 떼먹기뿐 아니라 ‘밥의 계급’에도 보조출연자들은 분노한다. 보조출연자 ㄷ씨가 지난해 7월13일 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받은 도시락은 밥 위에 김치·김·단무지가 얹혀 있었다. 스태프들의 도시락은 달랐다. 밥과 반찬 용기가 구분돼 있었고, 크기도 보조출연자들에게 나눠준 도시락의 두배가량 됐다. ㄷ씨는 “내가 보조출연 경력 10년이 넘는다. 현장에서 도시락을 많이 먹기 때문에 딱 보면 가격을 안다. 우리에게 준 것은 2500원짜리도 안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ㄷ씨 등 보조출연자 8명이 촬영장 외부 식당에 가서 먹고 오겠다고 하자, 스태프들이 촬영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욕설을 하면서 싸움까지 붙었다.

‘야식’도 보조출연자들을 서럽게 한다. 잦은 밤샘 촬영 도중 배우·스태프들이 야식을 먹을 때면, 보조출연자들은 ‘촬영장의 투명인간’이 돼버린다. 지난 1월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쇼핑몰 타임스퀘어에서 주로 밤샘 촬영을 했다. 출출한 새벽, 스태프와 배우들이 햄버거와 음료수를 먹을 때면, 보조출연자들은 입맛만 다셔야 했다. 보조출연자 ㄹ씨는 “우리끼리 물을 사서 돌려 마셨다. 새벽 촬영이라 배가 고팠지만 간식 사러 나가기도 마땅찮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취재진이 <문화방송> 드라마 <기황후> 촬영장에서 보조출연자로 일한 체험기(<한겨레> 9월30일치 9면)를 접한 한 보조출연자는 전자우편을 보내 ‘먹는 차별’에 관한 서러움을 토로했다. “(기사를 보고) 공감과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아이스크림! 정말 700원이 없어서 못먹겠습니까? 다 같이 더운데 스태프나 배우들만 먹는 거 보면 진짜 누군 입이고 누군 주둥아리인지 서글프죠.”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4~6월 보조출연자 400명을 대상으로 연간 소득을 조사해보니, 응답자의 약 70%가 6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 월 소득 50만원 이하인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밥값 몇백원을 빼앗아가는 일이, 화려한 드라마의 뒤켠에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사진 전국보조출연자노조 제공


“밥값 4500원까지 절충…영수증은 원하는 대로”
식당-기획사 ‘검은 거래’

도시락집 “반장이 수수료도 요구”

지방 드라마 촬영장에선 기획사 반장과 식당 사이에 ‘수수료’와 ‘가짜 영수증’ 관행이 여전하다. 식당이 보조출연자들에게 저가 식단을 제공하면서 제값인 것처럼 기획사 쪽에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식이다.

촬영장 인근에 있는 몇몇 식당들은 <한겨레> 취재진에 이런 내용을 실토했다. 경북 문경의 사극 촬영장 부근 ㅁ식당 주인은 “한때 보조출연자들의 식사를 담당했지만 기획사 반장들이 커미션을 요구하는데다 보조출연자들이 밥을 많이 먹어 타산이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의 한 촬영장 근처에 있는 ㅎ식당 주인도 “지난해 <한국방송> 드라마 <각시탈> 촬영 당시 보조출연자 200명 이상이면 밥값을 5000원에 맞춰 줬다. 보통 기획사랑 계약할 때 영수증은 더 비싼 가격으로 끊어서 주는 걸로 한다. 보조출연자 100명 이상이면 4500원까지도 가격 절충이 가능하고 계약서는 원하는 대로 써 준다”고 말했다.

2009년 방영된 <문화방송>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 당시 한 도시락집 주인은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기획사의 수수료 요구를 폭로하며 ‘시장 골목 깡패 같은 짓’이라고 성토했다. “2009년 5월19일, 전화로 단가 5000원 도시락 340개를 주문받았습니다. (중략) 가락시장에서 340인분의 장을 보고 있는데, 도시락 비용도 지불하지 않은 상황에서 10%의 커미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거절하자 원래 주문대로 준비해달라고 하기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중략) 새벽 4시30분께 반찬 준비를 마치고 용기에 담으려는 순간 벨이 울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윗상사가 커미션을 안 주는 업체는 주문을 모두 취소하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이 글이 주목받자 도시락을 주문한 ㅌ기획사는 340인분 도시락값을 뒤늦게 지급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