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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책사업, 농어촌 희생 강요 되풀이
‘환경 정의’ 잣대로 밀양갈등 풀어야

등록 2013-10-06 22:01

전문가들 ‘사회적 합의’ 대책 촉구
밀양 송전탑 문제는 한국 사회의 ‘환경 불평등’ 상태를 보여주는 전국적 사안이며, 전기를 쓰는 국민 모두는 ‘외부세력’이 아니라 ‘당사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의 여론을 ‘국책사업에 반발하는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환경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환경정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환경 이용의 편익은 물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각종 부담·피해도 고르게 나눠 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1982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유독성이 강한 폴리염화비페닐(PCB)을 흑인 거주자가 75%에 이르는 지역에 매립하려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부딪히면서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모든 공공기관이 업무에서 환경정의를 구현하도록 하는 다양한 제도가 마련됐다.

우리나라에서 전력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은 뚜렷하게 나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전력 생산 비율은 5%지만, 소비율은 31.59%에 이른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는 경남·북, 충남, 전남 지역에 모여 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생산 설비가 설치된 농어촌 지역에서 대도시로 전력을 보내려면 대규모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억압적인 정치 분위기 속에서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저소득·고령층·소외지역을 중심으로 별 저항 없이 송전탑을 건설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의식 수준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 고압 송전망의 전자파 피해에 대해 아직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각국은 인체 유해 위험성을 원천 차단하는 ‘현명한 회피’와 선제적으로 주의조처를 취하는 ‘사전주의 원칙’에 입각해 시설을 지중화하거나 설치를 포기하고 있다.

건설 계획 수립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력공사는 2003~2004년 송전탑 건설 지역을 확정하고 설계·측량 등에 들어갔지만, 장하나 의원(민주당)이 의뢰해 에너지정의행동이 낸 용역보고서를 보면 지역 주민들은 토지측량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우연히 건설 계획을 알게 됐다. 이 보고서는 “한전이 경남 양산·밀양·창녕에서 주민대표 452회, 마을대표 862회, 종교단체 22회의 협의를 했다고 했지만, 대부분 계획 확정 뒤 협조를 구하려는 차원에서 실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헌법 35조와 환경정책기본법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고 국민의 동등한 환경권을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 제도는 미비하다”고 설명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한국의 에너지 생산·소비 구조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엄은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정부는 향후 고리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기로 계획하고 밀양에 송전탑을 만드는 것인데, 반대 주민들은 이런 계획 자체를 반대한다. 단순히 송전탑의 문제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순진 교수도 “밀양 주민들은 전기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생산·유통됨을 알리면서 전력 소비의 비윤리성을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전력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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