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 강화”-“여성운동 퇴조”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의 ‘반성폭력 학생회칙’이 11년 만에 개정됐다. 개정 내용을 두고, 성폭력 규정을 현실화해 성폭력 반대 운동의 대중성을 강화했다는 평가와 대학 내 여성운동의 퇴조를 반영한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학생회가 주도해 만드는 자치규약인 반성폭력 학생회칙은 1996년 고려대 남학생들의 이화여대 대동제 난입 사건, 경찰의 시위 진압 중 연세대 여대생 성폭력 사건 등을 계기로 각 대학에서 만들어졌고 서울대 사회대에선 1998년 제정돼 2002년 한 차례 개정됐다.
이번 회칙 개정은 2011년 한 여학생이 “대화 도중 줄담배를 피워 억압적인 상황을 만들었다”며 남자친구를 성폭력으로 학생회에 신고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회칙에 따르면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볼 수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서울대 안팎에서 성폭력의 범위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해당 여학생은 이른바 ‘담배녀’로 불리며 뭇매를 맞았다.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이었던 류한수진(23)씨는 “회칙에 따르면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보지 않는 제가 2차 가해자가 될 수도 있으나, 이에 대해 사과하고 시정할 의사가 없다”며 회장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회칙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4월 당선된 사회대 학생회는 7월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의견 수렴을 거쳐 지난달 개정안을 확정했다. 태스크포스 팀장은 류한수진씨가 맡았다. 개정 회칙에서는 성폭력을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기존 회칙에서 ‘성차에 기반을 둔 (성차별적) 행위’도 성폭력으로 본다는 부분을 없앴다.
태스크포스에 참여한 서울대 관악여성주의학회 ‘달’의 학회장 김민재(21)씨는 “이전 성폭력 개념은 급진적 페미니스트, 영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 범위가 넓었는데, 대중들은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이번 개정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반성폭력 운동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서울대의 여성주의 관련 학생모임은 ‘달’이 유일하다.
여성계 일각에서는 대학 내 학생자치공동체의 퇴조에 따른 ‘우려스런 개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사무국장은 “자치규약이라면 당사자가 왜 성폭력으로 느끼는지를 해석·지지하면서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구실이 줄어들고, 성폭력 여부를 규정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학 내 여성운동이 퇴조하면서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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