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대질환만 보장 강화 추진
작년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환자중
19만7371명은 패혈증·폐색전증 등
치료비 수천만원 중증질환인데 소외
“지금도 차별 있는데 더 커져
형평성 있는 대책 세워야” 지적
작년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환자중
19만7371명은 패혈증·폐색전증 등
치료비 수천만원 중증질환인데 소외
“지금도 차별 있는데 더 커져
형평성 있는 대책 세워야” 지적
중병을 치료하느라 진료비를 많이 내야 하는 환자의 열에 일곱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중인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 소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언주 의원(민주당)이 1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2012년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현황 자료’를 보면, 본인부담 상한제가 적용되는 고액 진료비 부담자 28만5867명 가운데 4대 중증질환(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질환)자는 8만8496명으로 전체의 30.9%에 그쳤다. 나머지 19만7371명(69.1%)은 4대 중증질환에는 속하지 않지만, 패혈증이나 폐색전증 등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다른 중증질환자이거나 대퇴골 골절처럼 치료비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질환을 앓은 사람들이다.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을 받았다는 것은 환자가 매우 중증이거나 장기 입원이 필요한 경우이다.
4대 중증질환에 걸린 이보다 그밖의 질환으로 고액의 진료비를 내는 환자들이 오히려 두 배 이상 많다는 수치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례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한 대학병원에서 폐색전증 치료를 받은 김아무개(55·서울 구로구)씨는 1115만원을 오로지 본인 돈으로 내야 했다. 20여일 입원하는 동안 진료비가 모두 3200만원이 나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의 경우 본인부담 상한제의 혜택으로 본인 부담은 200만원에 그쳤고 나머지 2085만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했으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료에다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등 이른바 ‘3대 비급여’ 등으로 915만원을 추가로 내야 했다. 폐색전증 환자에게도 4대 중증질환처럼 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늘려주기만 해도 병원비는 확 줄어들 수 있다.
김씨는 “갑작스럽게 생긴 질병이라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깨고 주변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려야 했다. 병원에 조금만 늦게 왔으면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의사에게 들었는데, 이런 중병도 4대 중증질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언주 의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4대 중증질환이 아닌 질환 가운데 본인부담 상한제가 적용되는 질환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치매다. 환자 수는 2만6714명이나 됐다. 이어 수술하지 않고 치료하는 비수술 뇌경색증 환자가 1만7802명, 관절증 환자가 1만4441명 등이었다.
문제는 4대 중증질환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중증질환의 사망률이 더 높거나 진료비가 높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혈액에까지 세균감염이 확산돼 사망 가능성이 큰 패혈증은 사망률이 20~30%로 갑상샘암이나 유방암 등 치료 성공률이 높은 암보다 훨씬 위험하다. 역시 4대 중증질환인 뇌졸중(9.3%)이나 심근경색(2.7~9.6%)보다 사망률이 크게 높다. 대퇴골 골절의 경우에는 전체 진료비가 4000만~6000만원에 이르러 환자가 내야 하는 돈이 2000만원을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2011년 기준 총 진료비 가운데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돈의 비율은 암 등 4대 중증질환이 76%로 나머지 중증질환의 62%에 견줘 크게 높다. 4대 중증질환자 외에도,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는 적고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진료비를 많이 내야 해서 본인부담 상한제 혜택도 보지 못하는 환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언주 의원은 “고액 중증질환자 가운데 70% 정도가 4대 중증질환자가 아닌데도,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5년 동안 9조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보장성을 더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머지 환자들의 질병비 부담에 대한 형평성 있는 보장성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항암제,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 고가의 검사에 대해 보험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등을 빼고 1625만원의 진료비를 본인 부담으로 내고 있는 대장암 환자가 2016년 이후에는 98만원만 내면 된다. 고액 중증질환자의 70%를 차지하는 4대 중증질환 이외의 환자들에게는 먼 얘기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치료비가 많이 드는 중병을 앓는 환자 열에 일곱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 혜택을 못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암병동에서 한 환자가 수액을 맞으며 식사를 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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