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시설, 그 자체가 인권침해다

등록 2013-11-08 20:26수정 2013-11-15 16:02

형제복지원은 군대식 조직이었다. 수용자들은 소대에서 집단생활을 했고 소대마다 소대장이 있었다. 소대 안에는 양쪽으로 2층 침대가 있었고 사람이 많을 때는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폭력은 일상화됐다. 사진은 1987년 초 형제복지원의 내부 모습이다. 김용원 변호사 제공
형제복지원은 군대식 조직이었다. 수용자들은 소대에서 집단생활을 했고 소대마다 소대장이 있었다. 소대 안에는 양쪽으로 2층 침대가 있었고 사람이 많을 때는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폭력은 일상화됐다. 사진은 1987년 초 형제복지원의 내부 모습이다. 김용원 변호사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인권운동가의 시선
2011년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로 제작되어 공개되었을 때 여론이 들끓었다. 청각장애인 시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루었던 소설과 영화는 충격적으로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를 드러냈다. 그 덕분에 사회복지사업법의 일부를 개정할 수 있었다. 그해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르면, 법인 이사회의 3분의 1을 사회복지위원회, 지역사회복지협의체의 추천을 받아 구성하고, 친인척 등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사 현원의 5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족벌체제로 운영되던 사회복지법인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법 개정이 아닐 수 없다.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들이 시설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사유화하는 데서 발생했던 수많은 인권유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선 <도가니>에 나오는 사회복지시설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매년 몇 건씩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는 한다. 대체로 사회복지시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사건들은 강제 노동, 폭행과 체벌, 장애수당의 갈취, 종교 강요, 성폭력 등이다. 이곳에 주거하는 생활인들을 폭력으로 규제한다는 의미다. 이런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신경안정제와 같은 약물을 과다로 강제 투여하는 일도 있고, 폭행으로 사망시키는 일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사망한 이들을 암매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복지시설에서는 자기결정권은 보장될 수 없다. 시설에서는 집단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권리도 종종 무시된다.

의사표현을 잘할 수 없고 저항할 힘도 없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약자들을 수용하여 정부지원금과 각종 후원금을 착복하고, 장애인 수당까지 갈취하는 자들이 있다. 그 비리의 복마전 결과가 인권유린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시설은 대개 민간에서 설립하였기 때문에 ‘내 시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다는 명분 또한 그렇다. 자기 재산을 출연하여 사회복지시설을 만들었지만, 시설은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시설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려고 족벌체제를 형성하고, 유령 직원, 유령 원생들을 만들어서 지원금을 더 타내는 방식이 비일비재했다. 또한 시설의 증개축을 명분으로 지원금을 더 확보하는 게 유능한 시설장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그간의 사정이 사회복지시설의 인권문제 근절을 막아왔다. 관리감독기관의 공무원들은 시설과 유착되어 관리감독 의무를 방기해왔다. 이는 인권유린을 저지른 시설장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다. 형제복지원 등 문제의 시설 운영자들은 광범위하게 돈 봉투를 뿌려서 공무원들과 공범 관계를 형성해온 것이다. 언론조차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도가니’ 같은 충격적 사건이
매년 몇 건씩 세상에 알려진다
관리감독 부실·솜방망이 처벌은
반복되는 강제노동, 폭행 등
시설 내 인권침해를 낳았다

꼭 그들을 가둬야만 하는가
중증장애인이라 하여 시설에서
‘사육’되도록 둘 게 아니라
지역사람들과 다양한 관계 아래
자기결정권 실현하도록 도와야

어떻게 사회복지시설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먼저 사람들의 의식 때문이다. 대개 사회복지시설에 장애인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수용되어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고, 가족들이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당연히 시설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보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시설에 대한 요구는 줄지 않는다. 바로 그런 요구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이들이 사회복지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걸고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물론 열악한 조건에서도 진정으로 사회복지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 시설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집단적인 생활시설들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진즉부터 주거시설들을 해체하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정책 전환을 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설의 인권유린 문제를 넘어서 탈시설의 방향을 설정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화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올해 세운 인권기본계획에 따른 ‘탈시설 로드맵’은 중요한 시사점이다. 탈시설하는 장애인들의 임시 주거를 마련하는 등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정책을 마련중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격리된 채 평생을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는 입장에 있다고 한다면 그건 사람의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질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시설 내에서 한정된 서비스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제한하게 된다. 집단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어떻든 집단적인 규율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수동화된 인격은 보호에 사람을 길들여지게 만들고, 그에 따라서 자아를 상실하게 만든다. 장애인 운동을 하는 이들은 “시설에서 사육된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시설에서 ‘사육’되도록 둘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곳에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관점으로 이동해야 사회복지시설의 문제가 제대로 보일 수 있다.

합법적인 법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만 약 3만명이다. 그밖에 다른 시설, 미신고 시설까지 합치면 대략 2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아직도 시설에 갇혀 있다. 이것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인식으로 전환되는 것이 필요하다. 대형 시설부터 해체해 가야 한다. 지나친 민영기관과 시장 의존을 벗어나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고, 분명한 탈시설의 방향으로 정책 전환를 해가야 한다.
박래군/‘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권중심 사람 소장
박래군/‘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권중심 사람 소장
주거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이나 지역사회로 돌아온 이들이 마을의 주민으로 살아가도록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갇힌 사람들은 감옥에만 있는 게 아니다. 형기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비정상적인 감옥에서 꺼내줘야 한다. 중증 장애인이라도 우리와 함께 우리 지역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자리잡혀갈 때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들은 서서히 해소될 것이다.

박래군/‘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권중심 사람 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