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어딜 가나 쉽게 찾을 수 있던 공중전화가 요즘엔 열심히 찾아도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중전화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친다. 사진은 10월16일 서울 공덕동 지하철역 벽면에 설치된 공중전화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르포 / 공중전화 거는 사람들
▶ 1990년대엔 공중전화를 한번 사용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한참을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삐삐(무선호출기)의 대중화와 함께 공중전화가 급속도로 늘어 1999년엔 무려 56만여대가 전국 곳곳에 있었죠. 휴대폰이 대중화된 요즘은 공중전화가 찬밥 신세입니다. 전국에 7만6000여대만 남았고, 지금도 한달에 500여대씩 철거되고 있죠. 그래도 여전히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해진 서울시 관악구 신원시장 입구 앞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과 퇴근할 때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인근 편의점에는 인도 쪽을 향해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었고, 마침 그날 저녁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생중계됐다. 예닐곱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야구 경기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11월1일 저녁, 이 거리는 나름 분주했다. 유난히 한 곳만 조용했다. 바로 공중전화기 두 대가 나란히 서 있는 부스였다. 저녁 6시께부터 두시간째 누구도 공중전화를 찾지 않았다.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살갗을 스쳤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간간이 나뒹굴었다. 저녁 8시께 한 남성이 불쑥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공중전화에 넣은 뒤 번호를 몇개 눌렀고, 수화기에 귀를 가까이 댔다. 잠시 기다리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빠져나왔다. 한 손에 두 개의 비닐봉투를 든 이 남성은 서울 신림동, 신원동 일대에서 폐지와 고물 등을 수거해 생계를 이어가는 이상주(65)씨였다. 이씨는 석 달 전에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휴대전화 있을 때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어요. 전화할 일 있으면 이렇게 공중전화 쓰면 되죠. 폐지 주워서 하루에 만원 이만원 버는 돈으로 휴대전화 요금 내기가 힘들어요.”
공중전화 운영 5년 손실액 1701억원
이씨는 왜 공중전화를 사용했을까. 아침부터 폐지와 깡통 등을 수거해 고물상에 팔아넘기는 일을 10시간 가까이 한 이씨는 막 퇴근을 하던 참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깡통들을 한 무더기 발견했다. 약간 큰 비닐봉투 두 개를 채울 만한 양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고물상에 다시 갈까 고민하던 이씨는 공중전화에 들렀다.
“고물상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해봤어요. 여기서 20여분 기껏 걸어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허탈하잖아요. 지금은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네요. 내일 가봐야죠.”
분주한 거리임에도 이씨가 사용하기 전까지 최소한 2시간 동안 아무도 공중전화를 찾지 않았다. 사실 이런 상황은 다른 대부분의 공중전화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요즘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매우 유용하다. 앞으로도 휴대폰 살 생각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폐지 주워 버는 돈으로
휴대전화 요금 내기 벅차거나
보이스 피싱과 도청 걱정에
휴대전화 가지고 있으면서
공중전화 찾는 사람도 있었다 1999년엔 56만대였던 공중전화
올해 7만6천여대로 줄어들었다
‘매출 0원’도 100대 넘고
올해 가장 많이 사용된 곳도
군부대와 정신병원이다 요즘 시대엔 어떤 사람들이 공중전화를 사용할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사흘간 서울역·용산역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신원동, 구로구 구로동 일대의 공중전화 20여곳를 찾아다녔다. 한 곳마다 1~3시간씩 머물며 사용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기다렸다. 서울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만나기보단, 공중전화와 마주한 시간이 훨씬 길었다. 요즘은 공중전화가 한해에 7000여대씩 없어진다. 올해 7만6000여대인데, 내년에는 6만대 후반대로 줄어들 예정이다.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지만, 여전히 한달 매출이 0원인 공중전화도 평균 100대가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실액도 적지 않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공중전화 운영으로 인한 손실액이 총 1701억원이었다. 그 손실은 매출 300억원이 넘는 21개 통신업체들이 비용을 분담한다. 공중전화는 통신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주 사용되는 공중전화도 일반 사회로부터 격리된 곳이 대다수다. 케이티(KT)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올해 가장 많이 사용된 공중전화기 50개의 대부분은 군부대와 정신병원 안에 있다. 군부대가 아닌 곳은 서울역·용산역 등인데 이곳에서도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월30일 오후 4시께 서울역에서 만난 김아무개 상병은 휴가를 나와 집에 가는 길에 공중전화를 찾았다. 해병대 소속인 김 상병은 “군 생활을 하면서 3번째 휴가이고, 5개월 만에 사회에 나오는 꿀맛 같은 휴가다. 방금 부산에 있는 가족들에게 곧 집에 간다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포천 쪽에서 군 생활을 하는 육군 이아무개(21) 병장은 “기차표를 끊고, 기다리는 중에 대전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번 휴가 때 만나서 회포를 풀 예정”이라고 전했다. 울산이 고향인 박아무개(22) 일병은 공중전화를 보면 수신자부담 전화(컬렉트콜)가 생각난다고 했다. 31일 밤 9시께엔 전역을 하는 장병을 만났다. 예비역 병장 모자를 쓴 이승윤(21)씨는 서울역에 있는 공중전화에 들러 짧게 통화를 했다. 이씨는 짧게 전역 소감을 밝혔다. “오늘 전역하고서 기쁜 마음에 이 시간까지 서울에서 놀았어요. 방금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곧 기차를 탄다고 연락했죠. 공중전화요? 이전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군인이 되어 많이 사용했죠. 근데 이젠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지난달 휴가 나와 스마트폰을 샀거든요. 처음 사용해보니 신기했어요. 이젠 여자친구와도 아무 때나 연락할 수도 있어서 기뻐요.” 서울역과 용산역을 제외하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선 공중전화의 사용이 드물었다. 하지만 한때 공중전화에도 수요가 폭증하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1994년엔 한 시민이 일간지에 공중전화를 확충해달라는 글을 기고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재옥씨는 <동아일보>에 글을 기고해 “호출기의 대량 보급으로 공중전화를 걸려는 사람이 늘었다. 약속 장소에서 공중전화를 사용하려고 해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공중전화의 사용 순서를 기다리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적었다. 1990년 8월엔 실제로 한 20대 청년이 공중전화를 사용하던 한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인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공중전화는 급속도로 늘었다. 1980년 5만8017대에 불과했는데, 1999년 56만4054대까지 증가했다. 학교·병원·기차역 등 공공장소는 물론 학원·카페·독서실 등 사설 기관에도 보급됐다. 70원 내면 시내전화 3분, 휴대폰엔 38초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공중전화는 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의 주된 소재이기도 했다. 1992년 <문화방송>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질투>에선 주인공인 최수종, 최진실이 약속장소에서 만나지 못하고, 긴 줄이 늘어선 공중전화에서 기다리다 결국 엇갈린다. 영화 <슈퍼맨>에선 순진한 주인공이 빨간 팬티를 입고 영웅으로 변신하는 장소가 공중전화 부스다. 작가 김애란(33)씨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공중전화의 위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단편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등장인물인 한 재수생은 “1999년 노량진 재수학원 근처 여성전용 독서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부르르’ 하는 삐삐의 진동음이었고, 그 때문에 학원 공중전화 앞에는 항상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중전화는 연인 사이에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도구이기도 했고,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소재이기도 했다. 1990년 공일오비(015B) 1집에 수록된 노래이자, 객원가수였던 윤종신씨의 데뷔곡인 ‘텅 빈 거리에서’는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픈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 1994년에 발표된 가수 나미씨의 ‘공중전화’에선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찰칵 떨어진 동전 그 작은 소리에도 놀라/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지/ 그대 목소리 들리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네/ 삼분이 지나가도록 입술은 열리질 않아’ 노래 가사들을 살펴보면 당시의 공중전화 요금을 알 수 있다. ‘텅 빈 거리에서’가 발표됐던 1990년엔 ‘야윈 동전 두 개’인 20원이 한 통화의 요금이었다. 나미씨의 노래에서는 한 통화의 시간이 3분이다. 공중전화 요금은 1962년 5원에서 1976년 10원, 1990년 20원으로 올랐고, 1992년 30원, 1997년 50원에서 2002년 70원으로 오른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70원을 넣으면 시내전화의 경우 3분, 시외의 경우 거리에 따라 61초, 43초 동안 통화가 가능하다. 휴대폰에 전화를 걸 경우엔 38초만 통화를 할 수 있다. 휴대전화 통화요금이 초당 1.8원이기 때문에 38초로 환산하면 68.4원이다.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공중전화가 휴대전화보다 저렴하지는 않은 셈이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상당수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나마 색다른 사례는 31일 밤 9시께 서울역에서 만난 이아무개(30)씨였다. 이씨는 한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전화를 마친 이씨는 “개를 새 주인에게 인계하기 위해 경기도 안성에서 개를 안고 서울에 왔다. 휴대폰을 며칠 전에 잃어버려 공중전화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울역의 한 외식 프랜차이즈점 앞에서 10여분 기다린 뒤 강아지의 새 주인을 만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만난 김아무개(54)씨는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와서 공중전화를 썼다. 요즘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잘 안 외우고 다니는데 난 옛날 사람이라 자주 거는 번호 몇개는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체불명의 번호가 찍히면 공중전화로 피싱·도청의 위험 때문에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11월1일 오전 10시 서울역에서 만난 이정국(55)씨는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로 공중전화를 사용했다. 부산에서 대안학교 교사를 한다는 이씨는 “정체불명의 번호가 찍히면, 휴대폰으로 전화를 받지 않고 공중전화로 가서 무슨 전화였는지 확인한다. 방금 걸려온 전화는 은행에서 온 전화였다. 평소 거래하는 은행이 맞긴 한데 갑자기 주민번호를 누르라고 해서 의심스러워 끊었다. 나중에 직접 은행에 가서 무슨 일이었는지 확인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신림동에서 만난 고시생 김아무개(35)씨는 “피싱·도청을 당하는 것 같아 휴대폰보단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방금 전엔 친구랑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네이버 메일을 사용하던 중에 아무 조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읽지 않은 메일이 ‘읽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무래도 해킹과 도청을 당하는 것 같다. 그 이후로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대부분 공중전화로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노출시키기 부담스러울 때도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신림동에서 만난 김씨는 이전의 경험을 알려줬다. “고시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돈이 없는데 집에 손 벌리기도 민망할 때가 있어요.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대출상담 문의가 많잖아요. 하다못해 인터넷 가입하면 현금 십여만원을 준다는 광고도 있고요. 형편이 어려워 그런 곳에 전화를 해본 적이 있어요. 내 전화번호를 노출하기가 두려워 공중전화를 이용했죠.” 1일 저녁 8시부턴 서울 금천경찰서 옆 온누리약국 앞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2시간 동안 기다렸다. 공중전화 부스 바로 옆에서 붕어빵을 파는 상인은 “밤에 여기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시간째 공중전화 안에는 개미 한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밤 10시가 되자 한 청년이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갔고, 1분 만에 나왔다. 그 청년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인근 대성시장 정육점에서 근무하는 김지원(27)씨였다. 주말 없이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는 김씨는 이 시간마다 울산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다고 전했다. 휴대전화는 집에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육점 일이 워낙 바빠 휴대폰 볼 여유가 없어요. 안 보며 살다 보니, 없는 생활에도 익숙해졌고요. 여자친구와 내년부터 함께 살 계획이에요. 그것 말곤 특별히 전화를 사용할 일이 없어요.” 김씨는 젊은 세대인데도 스마트폰이 없는 아날로그 생활에 익숙한 듯했다. 김씨처럼 휴대전화 없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또 있었다. 같은 날 대낮에 신림동에서 만난 김아무개(48)씨는 사는 곳과 일터가 수십년째 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가 일하는 곳이자 놀이터예요. 친구들도 다 근처에 있고요.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가고, 어디 갔는지 물어보려면 잠시 공중전화를 쓰면 돼요. 난 예전부터 이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요즘 공중전화가 손실이 나서 없앤다고 하던데, 그래도 긴급전화 등 필요한 데가 많아요. 없는 사람들의 통신수단이기도 하고요. 밤거리를 다니다 보면 공중전화가 있는 곳엔 그래도 환하게 불이 들어와 거리를 비춰요. 공중전화를 꼭 수익논리로만 접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휴대전화 요금 내기 벅차거나
보이스 피싱과 도청 걱정에
휴대전화 가지고 있으면서
공중전화 찾는 사람도 있었다 1999년엔 56만대였던 공중전화
올해 7만6천여대로 줄어들었다
‘매출 0원’도 100대 넘고
올해 가장 많이 사용된 곳도
군부대와 정신병원이다 요즘 시대엔 어떤 사람들이 공중전화를 사용할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사흘간 서울역·용산역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신원동, 구로구 구로동 일대의 공중전화 20여곳를 찾아다녔다. 한 곳마다 1~3시간씩 머물며 사용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기다렸다. 서울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만나기보단, 공중전화와 마주한 시간이 훨씬 길었다. 요즘은 공중전화가 한해에 7000여대씩 없어진다. 올해 7만6000여대인데, 내년에는 6만대 후반대로 줄어들 예정이다.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지만, 여전히 한달 매출이 0원인 공중전화도 평균 100대가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실액도 적지 않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공중전화 운영으로 인한 손실액이 총 1701억원이었다. 그 손실은 매출 300억원이 넘는 21개 통신업체들이 비용을 분담한다. 공중전화는 통신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주 사용되는 공중전화도 일반 사회로부터 격리된 곳이 대다수다. 케이티(KT)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올해 가장 많이 사용된 공중전화기 50개의 대부분은 군부대와 정신병원 안에 있다. 군부대가 아닌 곳은 서울역·용산역 등인데 이곳에서도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월30일 오후 4시께 서울역에서 만난 김아무개 상병은 휴가를 나와 집에 가는 길에 공중전화를 찾았다. 해병대 소속인 김 상병은 “군 생활을 하면서 3번째 휴가이고, 5개월 만에 사회에 나오는 꿀맛 같은 휴가다. 방금 부산에 있는 가족들에게 곧 집에 간다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포천 쪽에서 군 생활을 하는 육군 이아무개(21) 병장은 “기차표를 끊고, 기다리는 중에 대전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번 휴가 때 만나서 회포를 풀 예정”이라고 전했다. 울산이 고향인 박아무개(22) 일병은 공중전화를 보면 수신자부담 전화(컬렉트콜)가 생각난다고 했다. 31일 밤 9시께엔 전역을 하는 장병을 만났다. 예비역 병장 모자를 쓴 이승윤(21)씨는 서울역에 있는 공중전화에 들러 짧게 통화를 했다. 이씨는 짧게 전역 소감을 밝혔다. “오늘 전역하고서 기쁜 마음에 이 시간까지 서울에서 놀았어요. 방금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곧 기차를 탄다고 연락했죠. 공중전화요? 이전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군인이 되어 많이 사용했죠. 근데 이젠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지난달 휴가 나와 스마트폰을 샀거든요. 처음 사용해보니 신기했어요. 이젠 여자친구와도 아무 때나 연락할 수도 있어서 기뻐요.” 서울역과 용산역을 제외하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선 공중전화의 사용이 드물었다. 하지만 한때 공중전화에도 수요가 폭증하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1994년엔 한 시민이 일간지에 공중전화를 확충해달라는 글을 기고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재옥씨는 <동아일보>에 글을 기고해 “호출기의 대량 보급으로 공중전화를 걸려는 사람이 늘었다. 약속 장소에서 공중전화를 사용하려고 해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공중전화의 사용 순서를 기다리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적었다. 1990년 8월엔 실제로 한 20대 청년이 공중전화를 사용하던 한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인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공중전화는 급속도로 늘었다. 1980년 5만8017대에 불과했는데, 1999년 56만4054대까지 증가했다. 학교·병원·기차역 등 공공장소는 물론 학원·카페·독서실 등 사설 기관에도 보급됐다. 70원 내면 시내전화 3분, 휴대폰엔 38초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공중전화는 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의 주된 소재이기도 했다. 1992년 <문화방송>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질투>에선 주인공인 최수종, 최진실이 약속장소에서 만나지 못하고, 긴 줄이 늘어선 공중전화에서 기다리다 결국 엇갈린다. 영화 <슈퍼맨>에선 순진한 주인공이 빨간 팬티를 입고 영웅으로 변신하는 장소가 공중전화 부스다. 작가 김애란(33)씨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공중전화의 위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단편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등장인물인 한 재수생은 “1999년 노량진 재수학원 근처 여성전용 독서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부르르’ 하는 삐삐의 진동음이었고, 그 때문에 학원 공중전화 앞에는 항상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중전화는 연인 사이에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도구이기도 했고,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소재이기도 했다. 1990년 공일오비(015B) 1집에 수록된 노래이자, 객원가수였던 윤종신씨의 데뷔곡인 ‘텅 빈 거리에서’는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픈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 1994년에 발표된 가수 나미씨의 ‘공중전화’에선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찰칵 떨어진 동전 그 작은 소리에도 놀라/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지/ 그대 목소리 들리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네/ 삼분이 지나가도록 입술은 열리질 않아’ 노래 가사들을 살펴보면 당시의 공중전화 요금을 알 수 있다. ‘텅 빈 거리에서’가 발표됐던 1990년엔 ‘야윈 동전 두 개’인 20원이 한 통화의 요금이었다. 나미씨의 노래에서는 한 통화의 시간이 3분이다. 공중전화 요금은 1962년 5원에서 1976년 10원, 1990년 20원으로 올랐고, 1992년 30원, 1997년 50원에서 2002년 70원으로 오른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70원을 넣으면 시내전화의 경우 3분, 시외의 경우 거리에 따라 61초, 43초 동안 통화가 가능하다. 휴대폰에 전화를 걸 경우엔 38초만 통화를 할 수 있다. 휴대전화 통화요금이 초당 1.8원이기 때문에 38초로 환산하면 68.4원이다.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공중전화가 휴대전화보다 저렴하지는 않은 셈이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상당수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나마 색다른 사례는 31일 밤 9시께 서울역에서 만난 이아무개(30)씨였다. 이씨는 한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전화를 마친 이씨는 “개를 새 주인에게 인계하기 위해 경기도 안성에서 개를 안고 서울에 왔다. 휴대폰을 며칠 전에 잃어버려 공중전화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울역의 한 외식 프랜차이즈점 앞에서 10여분 기다린 뒤 강아지의 새 주인을 만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만난 김아무개(54)씨는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와서 공중전화를 썼다. 요즘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잘 안 외우고 다니는데 난 옛날 사람이라 자주 거는 번호 몇개는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체불명의 번호가 찍히면 공중전화로 피싱·도청의 위험 때문에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11월1일 오전 10시 서울역에서 만난 이정국(55)씨는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로 공중전화를 사용했다. 부산에서 대안학교 교사를 한다는 이씨는 “정체불명의 번호가 찍히면, 휴대폰으로 전화를 받지 않고 공중전화로 가서 무슨 전화였는지 확인한다. 방금 걸려온 전화는 은행에서 온 전화였다. 평소 거래하는 은행이 맞긴 한데 갑자기 주민번호를 누르라고 해서 의심스러워 끊었다. 나중에 직접 은행에 가서 무슨 일이었는지 확인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신림동에서 만난 고시생 김아무개(35)씨는 “피싱·도청을 당하는 것 같아 휴대폰보단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방금 전엔 친구랑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네이버 메일을 사용하던 중에 아무 조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읽지 않은 메일이 ‘읽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무래도 해킹과 도청을 당하는 것 같다. 그 이후로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대부분 공중전화로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노출시키기 부담스러울 때도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신림동에서 만난 김씨는 이전의 경험을 알려줬다. “고시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돈이 없는데 집에 손 벌리기도 민망할 때가 있어요.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대출상담 문의가 많잖아요. 하다못해 인터넷 가입하면 현금 십여만원을 준다는 광고도 있고요. 형편이 어려워 그런 곳에 전화를 해본 적이 있어요. 내 전화번호를 노출하기가 두려워 공중전화를 이용했죠.” 1일 저녁 8시부턴 서울 금천경찰서 옆 온누리약국 앞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2시간 동안 기다렸다. 공중전화 부스 바로 옆에서 붕어빵을 파는 상인은 “밤에 여기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시간째 공중전화 안에는 개미 한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밤 10시가 되자 한 청년이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갔고, 1분 만에 나왔다. 그 청년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인근 대성시장 정육점에서 근무하는 김지원(27)씨였다. 주말 없이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는 김씨는 이 시간마다 울산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다고 전했다. 휴대전화는 집에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육점 일이 워낙 바빠 휴대폰 볼 여유가 없어요. 안 보며 살다 보니, 없는 생활에도 익숙해졌고요. 여자친구와 내년부터 함께 살 계획이에요. 그것 말곤 특별히 전화를 사용할 일이 없어요.” 김씨는 젊은 세대인데도 스마트폰이 없는 아날로그 생활에 익숙한 듯했다. 김씨처럼 휴대전화 없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또 있었다. 같은 날 대낮에 신림동에서 만난 김아무개(48)씨는 사는 곳과 일터가 수십년째 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가 일하는 곳이자 놀이터예요. 친구들도 다 근처에 있고요.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가고, 어디 갔는지 물어보려면 잠시 공중전화를 쓰면 돼요. 난 예전부터 이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요즘 공중전화가 손실이 나서 없앤다고 하던데, 그래도 긴급전화 등 필요한 데가 많아요. 없는 사람들의 통신수단이기도 하고요. 밤거리를 다니다 보면 공중전화가 있는 곳엔 그래도 환하게 불이 들어와 거리를 비춰요. 공중전화를 꼭 수익논리로만 접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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