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땅주인이 묘 옮기라는데…
농토 사용료 더 내라는데…
법률사각지대 해소하려 6월 도입
314개 마을 505명 변호사 활동
전화·인터넷·우편상담에 큰호응
고위법관·검사 출신도 재능기부
원하는 마을 많아 2차 신청 받아
농토 사용료 더 내라는데…
법률사각지대 해소하려 6월 도입
314개 마을 505명 변호사 활동
전화·인터넷·우편상담에 큰호응
고위법관·검사 출신도 재능기부
원하는 마을 많아 2차 신청 받아
#1. 충북의 한 농촌마을에 사는 ㄱ씨는 이웃 주민 ㄴ씨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ㄴ씨는 일제시대부터 대대로 ㄱ씨 집안의 땅에 집을 짓고 농사도 지어왔다. ㄱ씨는 ㄴ씨에게서 1년에 쌀 5말(40㎏)을 받는 대신 지상권을 설정해줬다. 문제는 ㄱ씨가 ㄴ씨로부터 쌀 2가마(160㎏, 현 시세 약 40만원) 상당의 돈을 받기로 계약을 바꾸면서 발생했다. 이후 ㄴ씨는 자기 마음대로 “1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며 계약을 무시했다. ㄱ씨는 마을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마을변호사는 “2년 이상 실질적으로 땅 사용료(지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면 ‘지상권 소멸’을 주장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건물 철거나 땅 사용료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2. 전북에 사는 ㄷ씨는 20년 전 땅 주인의 허락을 받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을 이장했다. 이후 계속 성묘를 다니고 벌초도 하며 묘를 관리해왔는데, 최근 새로 바뀐 땅 주인이 “묘를 다른 데로 옮기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ㄷ씨는 마을변호사를 찾았다. 변호사는 “20년 이상 묘를 관리해왔다면 민법상 ‘분묘기지권’(타인의 토지 위에 있는 분묘의 터전에 대해 관습법상 인정되는 지상권과 비슷한 일종의 물권)이 성립될 수 있으므로 이장 요구에 반드시 응할 필요가 없다. 다만, 땅 사용료에 대해 전 소유자와 합의했던 내용을 잘 파악해 현 소유자와 협의하라”고 알려줬다.
법무부가 법률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지난 6월 도입한 마을변호사 제도가 주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마을변호사는 개업 변호사가 없는 읍·면·동에 변호사 1~2명씩을 배정해 전화·인터넷·우편 등으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제도다. 지난 6월 전국 250개 마을 415명으로 시작했고 시행 5개월여 만에 314개 마을 505명으로 확대됐다.
경륜있는 변호사들도 재능 기부에 동참했다. 양동관 전 서울가정법원장(전남 보성), 김수학 전 대구고법원장(대구 달성), 노환균 전 법무연수원장(경북 상주),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경북 영주) 등 고위 법관 및 검사를 지냈던 변호사 59명과 국내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상담 내용을 보면, 농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법률 지식이 부족해 갈등을 키워온 사례들이 많다. 제주에서 농사를 짓는 ㄹ씨는 농사를 위해 오랫동안 다닌 길을 새 땅 주인이 못 다니게 해 어려움을 겪었다. ㄹ씨가 자신의 밭으로 가려면 이 땅을 꼭 지나야 했고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 모두 그 땅을 길로 인식해 왔다. 마을변호사가 “원칙적으로 새로운 땅 주인의 소유권 주장이 타당하지만 기존의 길 외에는 도저히 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민법상 ‘주위토지통행권’(어느 토지의 사용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 소유자가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는 권리)이 인정된다. 소정의 사용료를 지급하고 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법무부는 마을변호사가 없는 지역에서 위촉 요청이 계속됨에 따라 지난 13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제2차 마을변호사 신청을 받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24일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법률분쟁 때문에 생업을 놓고 밤잠을 설치며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다. 대한변호사협회, 안전행정부 등 유관기관과 함께 법률서비스가 전국 구석구석에 퍼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마을변호사와 상담을 하려면 온라인 홍보페이지(campaign.naver.com/livetogether02)에 접속해 자기 마을에 배정된 변호사 이름과 전화번호, 전자우편 주소를 검색한 뒤 직접 연락하면 된다. 대한변호사협회(02-2087-7772)로 전화해도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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