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피살자 명부’ 분석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정황 첫 기록 확인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정황 첫 기록 확인
1923년 9월 일본 가나가와현을 중심으로 일어난 간토(관동)대지진 당시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폭동을 저지르려 한다’며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구체적인 정황이 우리 쪽 기록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24일 독립기념관 연구소 등이 최근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경남 창녕 출신의 한용선(23)씨는 ‘쇠갈쿠리로 개잡듯이’, 경남 함안 출신의 차학기(40)씨는 ‘일본인이 죽창으로 복부를 찔러 학살됐다’고 적혀 있다. 경남 밀양 출신의 최덕용(26)씨와 이덕술(22)씨는 ‘군중이 피습해 살해’당했고, 울산 출신의 박남필(39)씨와 최상근(68)씨는 ‘곡갱이로 학살됐음’이라고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연구소 연구위원은 “간토대지진 당시 잔혹한 조선인 학살 사실은 그동안 생존자 증언이나 일본 기록으로만 알려져왔는데 우리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자경단원과 일본 헌병 등 학살 가해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라고 말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40만명에 이르자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렸고, 이에 현혹된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군경과 함께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명부에 실린 간토대지진 피살자는 명부에 실린 290명과 명부에 중복 기재된 3·1운동 때의 피살자 52명을 합쳐 342명이지만, 실제 피살자는 19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나머지 144명은 3·1운동 관계자나 독립운동 참가자, 강제동원된 사람들, 혹은 연도를 착각해 잘못 기재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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