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가슴 짓누르는 폐 종양에 힘겹지만
두 동생도 네일아트도 포기 못해요”

등록 2013-11-27 20:36수정 2013-11-27 22:58

혜성공동생활가정 식구들이 경아(오른쪽 둘째)의 네일아트를 구경하러 한방에 모였다. 막내 슬아(아래쪽 가운데)와 둘째 은아(맨 왼쪽)도 언니가 네일아트를 해줄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세 자매는 모두 미술에 소질이 있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재능을 살리지 못할까 걱정이 많다.
혜성공동생활가정 식구들이 경아(오른쪽 둘째)의 네일아트를 구경하러 한방에 모였다. 막내 슬아(아래쪽 가운데)와 둘째 은아(맨 왼쪽)도 언니가 네일아트를 해줄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세 자매는 모두 미술에 소질이 있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재능을 살리지 못할까 걱정이 많다.
부모가 집 나간 뒤 동생 둘 돌봐
무력한 생활속 네일아트로 희망
폐렴 앓으면서도 자격증 따내

교사 “종양 놔두면 목소리 잃어
수술비 300만원 있어야 하는데…”
2013년 새해 벽두부터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버지가 집을 떠났다. 이제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경아(가명·16)는 졸지에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 돼버렸다. 새하얀 눈 내리는 풍경을 쳐다보는 경아의 머릿속은 백짓장 같았다. 광주광역시 경아의 집엔 정적이 흘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경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와 헤어졌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떠나갔다. 그래도 그때는 아빠가 있었다. 행복했다고는 하기 어려워도 기댈 곳은 있었다. 이제 대리운전을 하던 아빠마저 말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사라졌다. 돌봐줄 친척도 없었다. 동생 은아(가명·15)와 슬아(가명·8)는 언니에게 기댔다. 굶길 수 없었다. 집 나간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지만 돌아오지는 않았다. 대신 돈을 보내줬다. 넉넉할 리 없었다. 경아는 미역국을 끓였고, 동생들과 함께 미역국만 먹었다. 한 달 동안 매일 먹었다. 다른 걸 해먹을 돈도, 여유도 없었다.

잿빛 하늘이 무거운 구름을 몰고 다니던 2월, 집주인 할아버지가 물었다. “너희들끼리만 지내는 거니?” 할아버지는 경아네 사정을 구청에 알렸다. 세 자매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그룹홈 ‘혜성공동생활가정’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이내 무력감이 몰려왔다. 선생님들이 동생들을 돌봐주니 긴장이 쫙 빠졌다. 그래서 그냥 누워 지냈다. 천장만 바라봤다. 미역국을 먹지 않아도 되는 건 좋았다. 경아가 누워있는 날이 많아지자 원장 선생님은 경아에게 춤도, 권투도 가르쳤다. 마음이 편치 않은데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와도 기분은 우중충했다.

파란 하늘이 쨍한 여름 햇빛을 품던 7월 경아의 마음이 열렸다. 손톱을 알록달록 꾸미는 ‘네일아트’를 만났다. 재미있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즐겁다’고 느꼈다. 평소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과목은 영 재미도 못 느끼고 성적도 신통치 않았지만 미술만은 우수했던 경아다. 네일아트를 배우고 두 달도 안 돼 한국네일협회에서 주는 ‘네일 기술 자격인증서 2급’을 땄다. 고등학교에도 네일아트 특기자로 지원했다. 공동생활가정 방 안을 온통 매니큐어 염료 냄새로 채우며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다. 시험이 있던 지난 9월 경아는 폐렴으로 고생했다. 손등에 링거 주사바늘을 꽂고 치료받으며 자격증을 땄다. 경아는 “손등에 주사바늘까지 꽂고 손을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네일아트 시험을 준비하는 게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했다”고 말했다. 혜성공동생활가정의 이신명(30) 교사는 “동생들을 챙기고 엄마 노릇을 하면서 자격증까지 따 참 대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원비 부담에 마음껏 재능을 살려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문제는 건강이다. 세 자매는 모두 간염 보균자로 태어났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피곤해하며 누워있는 날이 많다. 경아는 종양 제거 수술이 급하다. 지난 9월 폐렴 치료를 받으면서 폐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의사는 “폐에 종양이 자라 기관지까지 누르고 있어 수술이 급하다. 놔두면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돈이다. 의사는 수술비 300만원이 든다고 했다. 복지재단의 후원금과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 살아가는 공동생활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는 서경순(56) 원장은 “아이들이 재능이 많고 착해서 작은 지원이라도 있으면 훌륭한 사회인으로 클 수 있는데 아쉽다. 아이들의 교육비는 물론 경아의 수술비가 절실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경아는 요새 종양이 있는 가슴에서 ‘짓누르는 느낌’이 난다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면 네일아트뿐만 아니라 피부미용과 헤어디자인까지 배우고 싶어요.” 몸과 마음의 아픔을 겪고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경아의 작은 희망이다.

광주/글·사진 김미향 박승헌 기자

aro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