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역파출소 소속 정순태(오른쪽) 경위가 4일 서울 영등포동 한 쪽방촌에 사는 안윤식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노숙인이 왜 죽는 줄 알아? 다 술 때문이야. 술 끊고 쪽방촌 벗어나야지”라고 말하고 있다
영등포역 파출소 정순태 경위
자격증 준비·긴급구조비 혜택 등
영등포역 노숙인들 재기 도와
술값 탕진 막으려 지원금 보관도
“노숙인들 제2의 인생 돕고 싶어”
자격증 준비·긴급구조비 혜택 등
영등포역 노숙인들 재기 도와
술값 탕진 막으려 지원금 보관도
“노숙인들 제2의 인생 돕고 싶어”
이아무개(56)씨는 1997년 10월7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 여인숙에서 다툼 끝에 한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하고 부산교도소에서 15년을 복역했다. 지난해 10월6일 출소한 그는 과거 자신을 체포한 형사들에게 ‘앞으로 잘 살겠다’는 인사를 하려고 영등포역 파출소를 찾았지만 당시 형사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그를 반긴 이는 ‘노숙자 반장’이라고 불리는 정순태(52) 경위였다.
정 경위는 영등포역 주변에서 이씨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터전을 만들라”고 용기를 줬다. 이씨는 따뜻한 위로에 힘입어 영등포의 한 교회를 찾았다. 그 인연으로 1년2개월째 교회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아침·점심·저녁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하면서 월 50여만원을 번다. 이씨는 내년 봄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지난달 임대주택도 신혼집으로 마련해뒀다.
정 경위가 ‘노숙자 반장’으로 불린 지는 5년째다. 2009년 영등포역 파출소로 발령난 뒤 노숙인들이 많은 역 주변을 순찰하며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만난 노숙인들은 삶의 유형이 모두 같아보였다. 노숙인이 갑자기 사라지면 이유는 뻔했다. 그들 사이에서 ‘학교’로 통하는 교도소에 갔거나 병원에 갔거나, 그것도 아니면 숨졌거나.
정 경위는 “폭행 등 각종 범죄에 노출된 노숙인들을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들에게 예방과 위로가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노숙인을 만나러 하루에도 서너차례 역 주위를 맴돈다.
송아무개(51)씨도 정 경위의 ‘노숙인 친구’다. 20년 넘게 노숙생활을 하며 폭행 등 각종 전과 기록까지 줄줄이 가진 그는 2009년 영등포역 주변에서 정 경위를 만났다. 송씨는 정 경위의 권유에 따라 2년간 노력한 끝에 지난해 9월5일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 일자리를 찾고 있다.
갓 교도소에서 출소한 노숙인들이 각종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도 정 경위의 몫이다. “사는 게 힘들어서 싸움질 좀 했다”는 안윤식(53)씨는 지난달 24일 출소했다. 정 경위와 안씨가 알고 지낸 지는 3년째다. 안씨는 정 경위의 도움을 받아 노숙인지원센터인 옹달샘상담센터를 통해 서울시가 지원하는 긴급구조 지원비를 받을 수 있었다.
정 경위는 영등포역 파출소만의 ‘작은 제도’도 만들었다. 일부 알콜중독 노숙인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술값으로 탕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숙인 귀중품 보관 은행’이다. 정 경위는 “저소득층을 위한 월 40여만원의 정부 지원금이 절제를 잘 못하는 일부 노숙인을 더욱 알콜중독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며 “보관이 필요한 노숙인은 파출소에 돈을 맡기고 물품보관대장에 이름과 금액을 적어둔다”고 말했다.
현재는 노숙인 3명이 30만원을 보관하고 있다. 1시간마다 1만원씩 달라고 찾아오는 노숙인들도 있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 견뎌낸다.
정 경위는 “폐결핵·혈압·당뇨를 안 가진 노숙인이 없을 만큼 이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며 “그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 편견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유리·김성광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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