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사람 못 살 곳으로 그렸던 것 죄송”
60년대 인기 라디오프로그램 <김삿갓 북한방랑기>의 작가였던 이기명(69) 전 노사모 후원회장이 최근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조용필 평양공연 공식참관단 자격으로 3박4일 동안 평양과 묘향산 등을 돌아보고 온 그는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의 당당하고 밝은 표정, 유연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제의 각을 뜨자’ ‘제국주의 앞잡이’ 등의 욕설에 가까운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전쟁광 같은 분위기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60~80년대엔 낮에 라디오를 틀면 매일 12시 55분 어김없이 ‘두만강 푸른물에…’를 배경곡으로 ‘어이타 북녘땅을 핏빛으로 물들였나’라는 시가 흘러나왔고 곧 김삿갓이 본 북한의 어두운 모습이 실감나게 펼쳐졌다.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박정희 정권으로선 ‘북한 비판=남한 찬양’이었으므로 국책 차원에서 <김삿갓 방랑기>에 공을 들였다. 중앙정보부가 최근 북한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자료로 만들어 직접 공급했고 방송국에선 원고료도 듬뿍듬뿍 줬다. “20분 분량 드라마 원고료를 1회당 1500원씩 받던 시절에 5분짜리 <김삿갓…>은 그 두배씩 받았지.” 이 전회장은 “<김삿갓…>을 쓸 당시에도 ‘이건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직업작가로서 돈을 벌기 위해 썼다”며 “북한을 내눈으로 직접 보니, 10여년 동안 <김삿갓…> 대본을 쓰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그렸던 것이 몹시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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