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갑 선생(1922~1987)
일본군속 조선 포로감시원들
인도네시아서 항일단체 결성
안승갑 선생 유고집 곧 발간
인도네시아서 항일단체 결성
안승갑 선생 유고집 곧 발간
1944년 12월29일 태평양전쟁의 전장이었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조선인 청년 10여명은 항일운동단체 ‘고려독립청년단’을 결성했다. “우리는 선열의 위업을 거울 삼아 조국 독립의 선봉이 되어 일심동체 결사 투쟁할 것을 자바섬 스모노 산중에서 엄숙히 선언하노라.”
고려독립청년단 회원들은 모두 일본군 소속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었다. 일본군으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던 이들은 필리핀과 버마(미얀마)의 독립 선포에 영향을 받아 이 단체를 결성했다. 낮에는 일본군으로 활동하면서 비밀스럽게 독립운동을 모의했다. 그러나 청년단의 손양섭·민영학·노병한 등 3명이 싱가포르 전출 명령을 거부하고 1945년 1월 일본 군인·군속 12명을 사살한 뒤 자살하면서 단체가 발각됐다. 대다수 회원들은 군법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살다 해방 소식을 들었다.
당시 고려독립청년단원으로 활동하던 안승갑(1922~1987·사진) 선생이 쓴 일기와 자료 등을 모은 <낙산 유고>가 조만간 발간될 예정이라고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밝혔다. 안 선생의 아들 안용근 충청대 교수가 수십년간 모은 자료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은 “1945년 8월 조국은 해방을 맞았지만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일본군으로 취급받아 연합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들의 기구한 삶을 60년 만에 들여다보는 뜻깊은 자료다”라고 설명했다.
<낙산 유고>에는 조선인 출신 일본군들의 독립운동과 함께 안 선생의 신산했던 개인사도 들어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야학을 개설하고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던 안 선생은 일본 순사에 발각될 위기에 놓이자 일본 군속으로 지원해 몸을 피했다. 그는 1942년 6월 일본이 점령 중인 인도네시아 자바섬 반둥시 일본 제16군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감시 일을 시작했다.
고려독립청년단에서 ‘조선인민회’ 지부장을 맡았던 안 선생은 조선인 군속들이 일본의 강요로 저축한 예금 내용을 적은 ‘사금회수증명서’ 를 자료로 남겼다. 안용근 교수는 “아버지는 1947년 2월 귀국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체불 임금과 위로금 배상 청구 운동을 벌이는 한편 고려독립청년단 활동가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도록 힘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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