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콤플렉스’가 오히려 힘 됐다-이봉화 서울시 재무국장
고졸 ‘콤플렉스’가 오히려 힘 됐다
“잠깐만요!”
인터뷰를 하러 사무실에 들어가자 곧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맨 윗단추까지 단정하게 채운 블라우스가 사진 찍는 데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서울시 이봉화(52) 재무국장은 그런 사람이다. 1973년 서울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32년 동안, 잠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꼿꼿하게 달려왔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 ‘지독한 집중력의 소유자’, ‘남자들보다 더 대담하게 일을 밀어붙이는 여장부’ 등등 시청 안에서 그가 받는 평가도 한결같다. 이 국장이 이달 24일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두번째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콤플렉스’ 때문에 공부와 일에 매달렸던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에 대학 포기하고
공무원 생활하며 주경야독
여성정책 이어 복지학 학위 “집이 너무 가난해서 대학을 갈 수 없었어요.” 6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난 그는 충주여고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작은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던 오빠 곁으로 무작정 올라왔다. 일자리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여자경찰관 공채 1기 시험을 쳤다(당시 동기 중엔 첫 여성 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인옥 전 제주지방경찰청장도 있었다). 1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하면서 일반 공무원 쪽으로 마음이 쏠렸고, 이듬해엔 서울시 7급 공채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일은 즐거웠지만 내내 ‘고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대학을 나와 행정고시를 통해 들어온 남자 공무원들을 보면 “자극이 됐다”. 이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된 생활이 시작됐다. “그 와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나를 믿어 달라’는 한마디에 결혼했어요.” 신혼여행 갈 때도 교과서를 챙겨갈 정도로 열심이었던 그는 임신해서 배가 불룩한 채 학력고사를 쳤다. 그렇게 해서 79년 한국외대 일본어과 야간학부에 들어갔고 10년 뒤엔 서울시립대 도시행정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해 석사를 마쳤다.
노인·여성·복지 관련 분야에서 줄곧 일해 온 이 국장은 행정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하기 위해 99년 일본 도시샤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서울시 여성 공무원 중 첫 국외유학이었다. “2년6개월 동안의 유학생활은 제게 무척 엄격한 시간이었어요. 남편과 아이들과 떨어져 책만 들여다보고 살면서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2001년 시립대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여성정책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한편, 5년 동안 도시샤대 논문에 매달려 왔다.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는 ‘고령자 장기요양보호 제도에 관한 한국형 모델 개발’이라는 논문은 그동안 개인의 몫으로 맡겨져 왔던 노인 요양 제도를 공공 시스템으로 체계화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다. 도시샤대 복지학과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과 엄격한 학풍을 자랑하는 곳으로 외국인이 학위를 받기가 무척 까다로운 곳이다. “콤플렉스는 콤플렉스의 원인 그 자체를 해결할 때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박사 학위를 두개씩 받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남들 대학갈 때 가지 못했다는 것에서 출발하지요. 물론 울고 싶을 만큼 힘든 때도 많았지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인생에 역할모델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일제 때 도쿄에 유학했을 만큼 지적인 신여성이었어요. 하지만 사업에 실패를 거듭하는 남편과 여섯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나래를 펼쳐볼 기회가 없었어요.” 일본에서 유학할 때 어머니가 다녔다는 신주쿠의 학교를 찾아가 봤다는 그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지금도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힘을 얻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공무원 생활하며 주경야독
여성정책 이어 복지학 학위 “집이 너무 가난해서 대학을 갈 수 없었어요.” 6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난 그는 충주여고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작은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던 오빠 곁으로 무작정 올라왔다. 일자리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여자경찰관 공채 1기 시험을 쳤다(당시 동기 중엔 첫 여성 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인옥 전 제주지방경찰청장도 있었다). 1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하면서 일반 공무원 쪽으로 마음이 쏠렸고, 이듬해엔 서울시 7급 공채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일은 즐거웠지만 내내 ‘고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대학을 나와 행정고시를 통해 들어온 남자 공무원들을 보면 “자극이 됐다”. 이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된 생활이 시작됐다. “그 와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나를 믿어 달라’는 한마디에 결혼했어요.” 신혼여행 갈 때도 교과서를 챙겨갈 정도로 열심이었던 그는 임신해서 배가 불룩한 채 학력고사를 쳤다. 그렇게 해서 79년 한국외대 일본어과 야간학부에 들어갔고 10년 뒤엔 서울시립대 도시행정대학원 행정학과에 입학해 석사를 마쳤다.
노인·여성·복지 관련 분야에서 줄곧 일해 온 이 국장은 행정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하기 위해 99년 일본 도시샤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서울시 여성 공무원 중 첫 국외유학이었다. “2년6개월 동안의 유학생활은 제게 무척 엄격한 시간이었어요. 남편과 아이들과 떨어져 책만 들여다보고 살면서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2001년 시립대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여성정책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한편, 5년 동안 도시샤대 논문에 매달려 왔다.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는 ‘고령자 장기요양보호 제도에 관한 한국형 모델 개발’이라는 논문은 그동안 개인의 몫으로 맡겨져 왔던 노인 요양 제도를 공공 시스템으로 체계화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다. 도시샤대 복지학과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과 엄격한 학풍을 자랑하는 곳으로 외국인이 학위를 받기가 무척 까다로운 곳이다. “콤플렉스는 콤플렉스의 원인 그 자체를 해결할 때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박사 학위를 두개씩 받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남들 대학갈 때 가지 못했다는 것에서 출발하지요. 물론 울고 싶을 만큼 힘든 때도 많았지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인생에 역할모델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일제 때 도쿄에 유학했을 만큼 지적인 신여성이었어요. 하지만 사업에 실패를 거듭하는 남편과 여섯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나래를 펼쳐볼 기회가 없었어요.” 일본에서 유학할 때 어머니가 다녔다는 신주쿠의 학교를 찾아가 봤다는 그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지금도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힘을 얻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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