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로 남편을 잃은 유가족 4명은 한목소리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2009년 1월20일부터 한결같이 해온 요구다.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터에서 ‘용산참사 5주기 범국민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 참여한 유영숙(오른쪽부터), 전재숙, 김영덕, 권명숙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제2의 용산참사 막으려면
제2의 용산참사 막으려면
‘용산 학살의 진실이 밝혀질 때 이 땅은 죽음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섯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임당한 용산참사 재개발 구역의 펜스에 낙서처럼 쓰여 있는 문구이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용산참사 현장은 죽음의 땅으로 남아 있다. 망루가 불탄 남일당 건물 터는 고작 주차장으로 쓰인다. 레아호프·삼호복집·무교동낙지 등 주민들의 삶이 있던 자리는 낡은 공사장 펜스로 둘러싸인 채 이제는 사람 키만한 나무가 자라 있다. “
주민들을 서둘러 쫓아내던 용산 4구역(국제빌딩 주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이, 허허벌판으로 방치되어 멈춰진 이유는 무엇일까? ‘타운돌이’라는 말이 생겨났던 2008년까지 부동산은 토건족들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 욕망의 정점에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필연처럼 맞았다. 하지만 용산 4구역의 공사는 참사 한 달 반 만에 재개됐다. 해결 때까지 개발 중단을 요구하던 대책위 대표단한테 당시 서울시 부시장은 “시간은 돈”이라며 개발을 늦출 수 없다고 답했다. 355일 만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장례를 치르고서야 개발은 속도를 내는 듯했다.
2010년 말 법원은 용산 4구역 개발사업이 절차상 중대한 위반이 있었다며 철거 직전 마지막 인허가 단계인 관리처분인가의 무효를 판결했다. 여섯명이 주검이 되고 땅속에 묻히고, 모든 것이 철거된 후에야 말이다. 그렇게 또 늦어진 개발로 말미암아 비용 발생이 증가했다며 당시 시공사였던 삼성물산 등은 시공비 1600억원의 증액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합은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그 후 지금까지 어느 시공사도 용산 개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용산 개발사업에 장기적 전망과 계획은 없었다. 거품만을 보고 달린 욕망이라는 막차의 폭주였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역에서부터 한강까지 이르는 용산 한강로 일대를 서울의 신부도심으로 개발한다며, 사업비 5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세우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 광란의 폭주 결과가 용산 4구역뿐만 아니라,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개발지구 해제 사태로까지 드러난 셈이다.
용산은 모든 것이 철거돼 사람이 살지 않지만, 폐허가 된 뒤 수년째 방치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참혹하다. 용산에 연대하러 왔다가 구속된 철거민이 살던 서울 동작구 상도4동의 11구역이 그렇다. 이곳은 2008년 대규모 철거용역들이 동원되어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지만, 이사비 몇 푼에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 살 수 없던 주민들은 그 폐허 속에서도 대책을 요구하며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사업자가 개발조합과 공무원에게 60억원대의 뇌물을 뿌리는 비리가 터져 지금은 정비구역 지정이 취소됐다. 마을의 외형과 공동체가 모두 파괴됐지만, 주민들은 떠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한국 강제퇴거의 심각성을 우려한다. 우리나라도 가입하고 국회에서 비준한 유엔 사회권규약에서는 강제퇴거를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한다. 이에 각국 정부가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해 법 제정 등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도록 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는 1995년부터 한국 정부의 사회권 관련 세 차례의 심사에서 모두 ‘한국의 강제퇴거 실태에 대한 우려와 이를 위한 예방 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퇴거 위기에 놓인 사람의 재정착 대책은 여전히 미약하다. 심지어 아직도 겨울철 강제퇴거조차 법으로 금지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하락으로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의 도심 개발사업은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정부는 개발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한 채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을 내놓는다. 개발 방식도 ‘전면철거’를 유지한다. 뉴타운 실패가 드러난 서울시는 도시재생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시급히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진행하는 강제퇴거를 막아야 한다. 강제퇴거는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이자 생계와 사회적 관계, 삶의 전반을 후퇴시키는 문제다. 개발로 삶과 생존의 공간을 빼앗기는 이들의 재정착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강제퇴거는 금지돼야 한다. 특히 어떤 법이 적용되고, 어떤 방식의 개발이냐에 따라 원주민 대책이 달라지는 법체계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민간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세입자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무대책의 사업을 포함해, 퇴거를 수반하는 모든 개발사업에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9대 국회에 발의된 ‘강제퇴거금지법’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만들어진 법이다.
이제 이틀 뒤 20일이면 용산참사 5주기이다. 국가와 사법부에 의해 죽은 철거민들과 생존한 철거민들은 여전히 도심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있다. 이제는 개발법으로 보호되는 토건세력들의 합법화된 폭력을 불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법 집행을 내세워 휘두르는 저들의 폭력이, 대책 없이 남발되는 강제퇴거가 불법이고 지역 주민들에 대한 테러임을 밝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어제의 용산은 내일 우리에게 닥칠 일이 된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 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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