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17일 부천서 성고문사건으로 기소된 문귀동씨의 첫 공판에서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방청 신청자들이 법정 밖에서 공판을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사법부과거 이제는말해야한다] (중) 부끄러운 판결들
“고문·협박에 의한 거짓 자백이라는 증거가 없다.” 시국사건의 판결문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장이다. 군사독재 시절, 법원이 ‘고문을 당했다’는 피고인들의 호소에 귀기울이지 않고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만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말이다. 즉,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 보루’이기를 포기했다는 유력한 ‘증거’인 셈이다.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조작간첩 사건의 함주명씨가 대표 사례이다. 대법원은 1984년 5월 “경찰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피고인의 주장 외에, 검찰 진술이 강요에 의한 임의성 없는 허위진술이라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없다”며 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서 안전기획부의 고문에 의한 자백을 검찰에서 되풀이했다는 주장을, 법원은 믿어주지 않았다. 99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함씨를 고문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렸을 것이다. 고문에 의한 자백을 근거로 중형이 선고된 반공법·국가보안법 사건의 피해자는 함씨만이 아니다. 86년 간첩혐의로 무기징역의 확정판결을 받은 강희철씨 사건의 주심판사였던 박우동 전 대법관은 회고록에서 “피고인의 자백이 상식에 어긋나 ‘사건을 다시 재판해야 옳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심이 아니어서) 상고기각 판결이 불가피했다”며 “‘어디에 발전소, 군부대가 있다는 것을 탐지했다’는 등 판에 박은 공소사실에서 조작성이 내다보였지만, 아무 감정도 고뇌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항소심 재판에 부아가 치밀었다”고 썼다. 사건조작 가능성은 외면한 채, ‘공지의 사실도 국가기밀’이라고 인정한 당시 법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다. 함주명·강희철 등 “거짓 자백 증거없음”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법살인’ 꼬리표
부천서 성고문·유서대필 끊임없는 의혹
58년 조봉암 진보당 위원장과 75년 인혁당 재건위사건의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대다수의 판사들도 인정하는 ‘부끄러운 판결’이다.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돼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뒤 불과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사건을 두고, 한 부장판사는 “인혁당 사건은 법원의 업보”라고까지 표현했다. 피고인이 부인한 혐의사실을 정반대로 쓰거나 고문에 항의하는 발언을 기록에서 빼는 방식으로 거짓 작성된 비상군법회의 공판조서와 위법한 재판과정을 대법원이 그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2002년 의문사위는 ‘조작사건’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법원의 ‘혐의’를 간접 인정했다. 간첩 양명산을 통해 북한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봉암 역시, 2심에서 양명산이 “특무대의 고문에 거짓자백했다”고 진술을 뒤집었는데도 사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이승만의 ‘정적’ 조봉암을 제거하기 위한 조작사건이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법원이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협박에 의해 진술됐거나, 재판에서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헌법 제12조7항)”는 원칙이나 ‘피고인 무죄추정’ 원칙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것이다. 지난해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81년)’이나 “내란 목적의 살인죄는 성립하지 않고 단순 살인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소수의견을 쓴 대법관 6명이 쫓겨난 ‘10·26 김재규 저격사건(80년)’의 대법원 판결도 법원의 부끄러운 과거다. 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확정판결이 있고 나서 89년까지 대법원이 두 사건이 부끄러워 ‘대법원 전원합의체 형사판결집’을 발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법원행정처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86년 9월 검찰이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가해자 문귀동을 기소유예한 데 대해, 서울고법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권인숙씨 진술은 목격자가 없어 인정할 수 없다”며 재정신청을 기각한 것을 두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결정은 87년 민주화항쟁을 거친 이듬해에야 대법원에 의해 파기환송됐다. 경찰청 과거사위의 조사대상인 92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의 판결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유서 필적이 강씨 것’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형영씨 감정을 믿기 어렵고, 검찰이 김기설씨 필적을 은폐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으나, 대법원은 유죄의 결정적인 증거로 김씨의 감정 결과를 채택했다. 김씨는 그 뒤 문서감정 사기사건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법부 과거 문제 판결들
재심청구 쏟아지는데… 대법원 요건엄격…진실규명 높은 벽 심한 고문으로 간첩으로 몰렸다는 이들을 비롯한 법원 판결의 피해자들이 잇달아 “잘못된 확정판결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히겠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사법 살인’으로 꼽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2002년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결정을 미루고 있다. 지난달에는 1986년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2년여 동안을 복역하다 98년 나란히 가석방됐던 이장형, 강희철씨가 서울중앙지법과 제주지법에 각각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은 “영장도 없이 수십 일 동안 불법구금된 채 심한 고문을 당하는 바람에 거짓자백을 했다”며 “재판 과정에서 고문당한 사실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1969년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씨의 조카 배경옥씨가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배씨는 “1989년 <월간조선> 기사의 중앙정보부 관계자들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모부는 북한의 이중간첩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67년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던 이씨는 69년 배씨와 함께 한국을 탈출하려다가 홍콩에서 붙잡혀 사형당했고, 배씨는 89년 풀려났다. 이밖에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고, 민가협은 이른바 ‘가족간첩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송소연 민가협 총무는 5일 “1981년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15년을 복역한 신귀영씨 사건의 재심을 다시 청구해볼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씨 사건은 두 차례나 재심청구를 해 1심에서 재심개시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번번이 대법원이라는 ‘벽’에 부닥쳐 성공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고문 또는 위증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95년과 2004년 각각 1심의 재심개시결정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법원 안팎에서는 최근 봇물을 이루는 재심 청구가 별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일단 형사소송법의 재심 개시요건을 까다롭게 해석하는 대법원 판례 때문에 재심개시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낮아 문제”라며 “재심을 개시한다 해도 새로운 증거 없이 ‘고문당했다’는 피고인의 진술만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서 사실상 재심을 거의 봉쇄해 놓은 대법원 판례를 빨리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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