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충북 음성군 수태리의 한 오리농가에서 방역요원들이 살처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지 않은 오리들은 산 채로 포대에 담겨 부근의 매장 장소로 옮겨졌다. 이 농가에서만 이날 오리 7000여마리가 예방적 살처분을 당했다.
[현장] ‘오리 살처분’의 살풍경
‘꽥꽥’ 소리에 개들도 따라 ‘왈왈’…‘AI 예방’ 명목 땅구덩이로
의심 농가 반경 3㎞ 멀쩡한 7만 마리…작업자들 “너무 힘들다”
‘꽥꽥’ 소리에 개들도 따라 ‘왈왈’…‘AI 예방’ 명목 땅구덩이로
의심 농가 반경 3㎞ 멀쩡한 7만 마리…작업자들 “너무 힘들다”
노란 포대자루가 파르르 떨렸다. 욱여넣어진 오리 4마리는 땅에 묻히기 전까지 마지막 몸부림을 칠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쐬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 포대에 들어가기 전 오리는 힘이 덜 빠진 날개를 푸드덕 펼쳐댔다. 날갯죽지를 단단히 잡힌 오리가 포대에 들어가자마자, 지퍼는 지옥문처럼 닫혔다. 오리들은 비명이라도 지르듯 꽥꽥거렸다. 오리 소리에 주변 개들도 따라 짖어댔다. 공중에는 오리털이 눈처럼 휘날렸고, 비릿한 배설물 냄새가 뒤섞였다.
4일 충북 음성군 미곡리의 오리 살처분 현장은 살풍경이었다. 이날 <한겨레>가 찾은 오리농가에서만 7개 축사에 머물던 오리 7000여마리가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살처분은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 저녁 8시가 훌쩍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음성군 미곡리와 수태리의 오리 4만2000여마리는 이날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음성군에서 살처분은 3일 시작했다. 삼정리에 조류인플루엔자 의심 농가가 발생한 탓에 반경 3㎞에 있는 닭과 오리들을 모두 죽이고 있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오리들에게는 축사 안에서 1차로 이산화탄소 가스가 뿌려졌다. 그 뒤 오리들은 우사와 오리 축사 사이에 노란 상자 두 줄로 만들어진 3m가량의 임시 바리케이드 사이로 내몰렸다. 오리 수백마리가 빽빽하게 모여 서로 몸을 부대꼈다. 날개를 펼쳐 뛰어오르는 오리도 있었다. 살처분 작업에 나선 10여명은 오리들을 한두마리씩 포대에 잡아 넣었다. 작업중인 음성군청 직원은 “일단 포대에 담으면 안에서 산소가 부족해 자기들끼리 부대끼다 금세 죽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살처분 지침에 어긋나는 방식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2011년 개정한 ‘조류인플루엔자 긴급 행동지침’은 이산화탄소 가스로 오리를 안락사시킨 뒤 포대에 넣도록 하고 있다. 음성군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이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산화탄소 가스 처리를 하기는 하지만, 밀폐되지 않은 축사에서 이뤄지는 탓에 오리는 죽지 않은 채 생매장되는 것이다.
대기하던 작은 트럭은 포대 30여개를 실었다. 120~150마리의 오리가 죽음의 트럭에 실렸다. 트럭은 10여m 떨어진 축사 오른편에 멈췄다. 지름 8m에 어른 키보다 높은 살처분 통이 묻혀 있었다. 작업자들은 포대에 담긴 오리를 대형 플라스틱 통에 털어넣었다.
음성군청 관계자는 “부패가 쉽게 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포대를 빼고) 오리만 통에 담는다. 원래 바닥에 부직포를 깔고 바로 매장하는 방식이었지만 침출수 문제 때문에 통에 오리를 담은 뒤 뚜껑을 덮고 흙을 그 위에 덮는 식으로 방법을 바꿨다”고 말했다.
1통에 오리 1만여마리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위쪽에 가스와 침출수를 뺄 수 있는 관을 설치해놓고, 나중에 그 관을 통해 침출수를 뽑아낸다. 올해부터 처음 시도하는 거라 살처분 통의 최후 처리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방역요원들은 한차례 푸닥거리를 끝낼 때마다 노란 상자에 걸터앉아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도 거의 없었다. 살처분 현장 바로 옆에 놓아 둔 막걸리와 물, 빵은 거의 먹지 않은 채로 놓여 있었다. 푸념만 이따금 이어졌다. “추운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이산화탄소 가스로) 마취가 좀 된 건지, 너무 힘이 든다.”
바로 옆 또다른 오리농장은 전날 저녁 예방적 살처분 작업을 끝냈다. 커다란 축사 다섯개 동은 오리 1만여마리가 북적였던 흔적이 사라지고 텅 빈 채 고요했다. 오리농장 주인은 예민해 보였다. “얼른 나가세요. 여기는 오염된 데예요!” 한 축사에는 ‘방역작업중’이라는 팻말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살처분 현장과 달리 마을은 고요했다. 주민들조차 오가지 않았다. 마을 어귀부터 외부인과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한 방역요원은 “반경 500m 안에는 소독작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음성군은 이날 오리를 담을 살처분 통이 충분히 조달되지 않아 작업을 다 끝내지 못했다. 5일까지 음성군에서만 오리 7만4600마리가 ‘예방적 차원에서’ 죽었다.
음성/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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