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와 환경운동연합이 9일 고양 장항습지 안의 논에서 트랙터를 이용해 굶주린 철새들의 먹이가 될 볍씨를 뿌리고 있다. 트랙터에 매단 포대에 미리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볍씨가 논바닥에 떨어지도록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환경부 지침 나온 뒤 재개
고양·구미·철원서 볍씨 줘
“철새도래 지자체들 나서야”
고양·구미·철원서 볍씨 줘
“철새도래 지자체들 나서야”
저 멀리 습지에 철새 50여마리가 모여 있었다. 막상 습지에 들어서니 철새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경기도 고양시 김포대교에서 김포시 일산대교까지 7.49㎢ 이르는 장항습지에는 해마다 큰기러기·흰뺨검둥오리부터 희귀종 재두루미까지 2만~3만마리의 철새가 날아든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이후 철새 먹이주기 행사가 중단된 뒤 이곳을 찾는 철새가 부쩍 줄었다.
9일 장항습지의 고양시 장항나들목 부근에서 트랙터가 시동을 걸었다. 600㎏짜리 볍씨 포대를 들어올린 트랙터는 큰 소리를 내며 습지 중간에 있는 논으로 들어갔다. 포대에 미리 뚫어놓은 구멍 4개로 볍씨를 쏟아냈다. 가끔 구멍이 막힐 때마다 볍씨가 뭉쳐졌다. 고양환경운동연합의 황유성 집행위원장은 안타까워했다. “사람 손으로 뿌리지 않으면 볍씨가 한곳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힘센 놈들은 잘 찾아 먹겠지만 약한 놈들이 쪼아 먹을 거리가 있을지 걱정입니다.”
고양시와 환경운동연합은 매주 두차례 시민들과 해오던 철새 먹이주기를 중단했다가, 지난달 28일 환경부의 ‘철새 먹이주기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나서 재개했다. 사람 손으로 주지 못하게 된 것도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이후 새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일행은 단출했다. 고양시청 직원 2명과 황 집행위원장, 군사지역인 탓에 따라온 군인 2명이었다. 예전처럼 대대적인 먹이주기 행사는 취소했다. 고양시청 환경보호과 정금영 주무관은 “‘최소한의 인원이 가능한 한 조류와 접촉하지 않고 먹이를 나눠주라’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예전처럼 행사 형식으로 직접 먹이를 줄 수는 없고 트랙터로 먹이를 나눠준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만 있다”고 말했다. 장항습지에 들어가기 전 일행은 방역복과 방역덧신, 입마개, 고무장갑을 착용했다. 군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을 내려놓고 방역복을 군복에 덧입었다.
트랙터가 지그재그로 돌며 1700㎡가량 되는 논에 볍씨 두포대를 뿌리는 데 20분 정도가 걸렸다. 볍씨가 흩뿌려진 논에 가장 먼저 찾아든 건 고라니였다. 뭉친 볍씨에 한참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황 집행위원장은 “녀석도 배가 고픈 모양”이라고 말했다. 고양시는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이후 장항습지뿐만 아니라 인근 야산에서 하던 먹이주기도 중단했다. “새든 동물이든 음식이 있다는 소식을 알고 찾아드는 경향이 있는데 지난 몇주간 음식이 끊기고 철새가 아예 다시 찾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했습니다.” 황 집행위원장은 “보통은 저녁때가 돼야 철새들이 찾아든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뒤인 6일과 이날 두차례 제한된 형태로 철새 먹이주기가 이뤄졌다. 환경운동연합과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는 장항습지를 비롯해 경북 구미 해평습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 등지에서 철새 먹이나누기 활동을 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철새를 조류인플루엔자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먹이주기 자제가 정부의 방침이었다.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먹이를 줘야 할 많은 지자체들이 아직 머뭇대고 있어 시민단체가 먼저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철새 먹이주기 행사는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와 전북 전주 만경강 하구에서 11일까지 이어진다.
고양/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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