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이 전면 통제된 지 일주일이 지난 2월13일 오전 아현고가도로의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고가도로 뒤편으로 올해 9월 입주 예정인 아현뉴타운 3구역의 아파트가 보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 철거되는 아현고가도로
르포 / 철거되는 아현고가도로
▶ 서울은 자동차를 위한 도시였습니다. 1970, 80년대 한강 남·북단에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개통됐고,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내부순환로·동부간선도로 등이 놓였습니다. 이마저도 부족해 도심에선 교차로나 기차길 등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죠. 고가도로가 있던 지역은 길을 내주고, 그림자를 얻었습니다. 46년 만에 철거되는 국내 첫 고가도로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출근시간대인 지난 13일 오전 8시30분, 서울시 마포구 홍익대 정문 인근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아현고가도로를 지나 서울시청으로 가주세요.”
“아현고가도로 철거 작업으로 그쪽 길이 엄청 막힐 거예요.”
택시기사 경력 5년이 조금 넘은 최종복(63)씨는 일주일 전인 지난 6일 아현고가도로의 차량 출입이 전면 통제된 뒤 그쪽 길을 되도록 피해왔다고 했다.
“손님 없이 빈 차로 출퇴근 시간대에 이 길에 들어서면 완전 손해 보는 거예요. 이 길을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고, 정체된 길을 가면 기름도 더 많이 들어요.”
신촌로터리로 접어들자 정체가 시작됐다. 직선거리로 800미터 정도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이대역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이대역을 지나자 양옆으로 아현동 웨딩타운이 눈에 들어왔다. 웨딩타운이 끝나는 지점에 육교가 있었고, 거기서 70미터 앞에는 입구를 막은 아현고가도로가 나타났다. 좌우에는 신촌과 이대 상권과는 사뭇 다른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실내외 각종 문짝을 제작하는 구남문짝, 한성문짝 등이 웨딩타운 한가운데 있었고, 헌책방과 가전제품 재활용센터, 굴레방 미싱부속 등 오래된 가게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사주팔자와 점을 보는 철학원도 여러개였다.
서울 서부와 도심을 이으며
하루 차량 8만대를 실어날랐다
워낙 낡아 관리비만 연 4억
보행자 중심 개발도 철거 이유다
환경개선 신호탄이 될 거라며
주민과 상인들은 반긴다
그럼 교통정체는 괜찮을까
“우려하는 것보단 덜할 거예요
청계차도 철거때도 괜찮았어요”
1960~70년대, 차도 많지 않던 시절에… 왕복 8차선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입구가 막힌 고가도로 양옆 편도 2차선 도로로 몰렸다. 중앙차로로 달리던 파란색 시내버스가 도로변으로 가기 위해 차선을 변경했고, 승용차들과 엉키기 시작했다. 택시가 고가도로 옆길로 진입하자,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켰다. 신촌역에서 불과 지하철역 두 정거장 거리를 오는 데 30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아현역을 지나자 ‘아현동 가구거리’를 알리는 가구점들이 눈에 띄었다. 가구점은 아현역에서 충정로역까지 500여미터 거리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대로변과 이면도로에 자리잡은 가구점은 이 일대에 총 110여곳에 달한다. 939미터 길이의 아현고가도로는 삼거리인 아현교차로에서 왼쪽으로 살짝 굴곡졌고, 다음 삼거리인 충정로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상공에서 보면 굴곡이 약간 밋밋한 에스(S) 라인이다. 아현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300미터 앞에 있는 서소문고가도로 위를 달렸다. 고가도로 밑으로 서소문 근린공원이 있었고, 철길이 공원과 도로를 가로질렀다. 오른쪽으론 갈색 중앙일보 사옥이 눈에 띄었다. 택시를 타고 홍익대 인근에서 시내에 이르기까지 40여분이 걸렸다. 기사 최씨는 신용카드를 긁으며 “안 그래도 출퇴근 시간엔 항상 밀리던 길인데 고가도로 공사가 시작되고서 더 막힌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국내 최초로 건설된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위해 6일 오후 세 시부터 차량 통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아현고가도로는 오는 3월 말까지 두 달에 걸쳐 철거가 진행되고, 그 자리에는 대신 중앙버스전용차로가 7월까지 설치될 계획이다. 서울시는 아현고가도로가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만 연 4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가고,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를 할 경우 비용이 80억원에 달하는 등 노후화가 심하게 진행돼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고가도로는 안전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C급으로 2004년부터 교량 안전을 위해 통행가능 차량의 중량기준을 40톤에서 20톤으로 낮췄다. 정회평 서울시 일반교량팀장은 “아현고가도로는 2009년부터 철거 논의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워낙 노후화됐고, 고가도로가 시야를 막아 인근 상권이 침체되는 등 철거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아현고가도로는 도시개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천석현 서울시 도시개발시설본부장은 “과거 교통정책이 성장과 건설 위주였다면 이제 사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에 당선된 2002년부터 고가도로 철거사업을 시작해 2003년 철거한 청계고가도로를 포함해 현재까지 15개의 고가도로를 철거했다. 올해도 약수동고가도로와 서대문고가도로가 철거될 예정이고, 1970년에 준공된 서울역고가도로도 철거를 논의중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전세계적으로 도시개발의 기본 정책이 자가용의 운행을 억제하고 보행자나 대중교통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아현고가도로는 건설 당시부터 서울 도시개발의 상징적인 구조물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과학대학)는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서울 주요 고가도로의 역사를 설명했다. 이 책을 보면, 아현고가도로의 설립을 주도한 이는 박정희 정부가 선임한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었다. 김 전 시장은 부임 직후인 1966년 6월10일 아현고가도로의 기공식을 열어 공사를 시작했다. 김 전 시장은 아현고가도로가 한창 건립중인 1967년엔 아예 서울 동북지역인 미아리고개에서 청계천과 도심을 관통해 서쪽 서대문, 홍제동에 이르는 유료 고가도로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3년간 총 35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서울의 동쪽과 서쪽을 고가도로로 이어보겠다는 야심찬 구상이었다. 어느 철학원 원장의 풍수지리적 견해 손 명예교수는 저서에서 “1967년 말 서울시에 등록된 차량 총수가 2만5680대밖에 되지 않아 굳이 고가도로를 건설하지 않아도 차량 소통에 지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당시 35억원은 청량리에서 서울역 간에 지하철을 건설할 수도 있는 비용이었다. 결국 여론과 전문가의 반대에 부딪힌 김 전 시장은 서울을 횡단하는 고가도로 건설계획을 용두동 청계천로에서 명동성당까지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후 서울에선 고가도로 건설 붐이 일었다. 청계고가도로가 1971년 5864미터의 길이로 완공됐고, 서대문·삼각지·서빙고 등 도심과 부도심에 걸쳐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1990년대엔 강남 일대에 고가도로 건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교통공학)는 “차량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교통정책의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도심과 외곽을 막론하고 고가도로가 건설됐다”고 설명했다. 아현고가도로는 서울의 서부지역에서 도심에 진입하는 주요 도로다. 서울 서부지역인 여의도, 마포구, 서대문구 쪽에서 서울시청이 위치한 도심 방향으로 동서로 뻗은 길은 둘뿐이다. 하나는 연세대 앞을 지나 금화터널~독립문~사직터널에 이르는 성산로이고, 다른 하나가 신촌역에서부터 이대역, 아현역을 거쳐 충정로역으로 향하는 신촌로다. 서대문구 홍제동 쪽에서 도심 쪽으로 내려오는 홍제로나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역을 지나 충정로 쪽으로 뻗은 마포대로는 동서가 아닌 남동, 북동 방향으로 뻗은 길이다. 서울시의 건설기술심의위원인 박동주 교수는 “아현고가도로가 놓인 신촌로는 서울 서쪽에서 시내로 향하는 도로 중에서 통행이 가장 많은데다 주요 간선도로를 잇는 가장 중요한 도로”라고 평가했다.
아현고가도로가 서울의 서쪽과 도심을 이어주는 동안 아현동 일대는 도심과 가까운 입지와 신촌, 홍대 등 주요 상권과 해 있음에도 낙후된 채로 유지됐다. 이로 인해 아현동 일대는 이명박, 오세훈 등 전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일부 학교와 상업지구를 제외한 거의 전구역이 뉴타운 지구로 지정됐다. 이 지역의 상인들과 주민들은 대부분 고가도로 철거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고가도로 입구 옆에 위치한 헌책방 지호책방을 운영하는 장선화씨는 10일 오후 “고가도로가 없어지면 시야가 트여 동네가 밝아지고, 상권도 더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구거리에 있는 상인들의 기대는 좀더 구체적이었다. 원목가구 전문점인 마들렌상점의 방광석씨에게 아현고가도로 철거는 ‘고대하던 일’이었다.
“50년 전 여기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땐 고가도로가 없었어요. 아현동 일대는 해방 이후부터 작은 소품공장과 더불어 가구점들이 들어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거리예요. 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되면 아현동 가구거리가 서울시민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봐요.”
12일 오후 아현고가도로 초입 인근에 위치한 원갑사철학원의 이승은(70) 원장은 인도에서 공사로 인해 날아온 먼지를 쓸고 있었다. 이 원장은 “고가도로가 없어지면 차가 좀 밀릴 순 있어도 동네는 더 좋아진다. 차가 밀리면 운전자가 중간에 내려 사주를 보기도 하니까, 나는 좋다”고 했다. 이 원장은 고가도로 철거가 풍수지리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현동은 북쪽에 안산(해발 295미터)이 있고, 남쪽에 한강이 있는 대표적인 배산임수 지역입니다. 그런데 고가도로가 남북을 가르면서 산의 기운과 강의 기운이 막혔어요. 고가도로가 없어지면 기운이 트이고, 남쪽과 북쪽 동네 사람들의 왕래도 잦아질 겁니다.”
아현동 일대에 즐비한 결혼예복 전문점들도 고가도로 철거를 반겼다. 웨딩드레스 전문점 아네스의 이아무개(67)씨는 “고가도로 바로 옆은 아니지만, 거리가 깨끗해지면 상권도 더 발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결혼예복 전문점들을 지나 동쪽으로 30여미터를 더 가면 아현동의 ‘방석집’(소규모 유흥업소)들이 십여군데 있다. 인근의 한 상인은 방석집들이 대로변에 있는 것은 고가도로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엔 이 업소들에서 성매매도 많이 이뤄졌는데, 요즘엔 단속이 심하니까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몰라요. 업소들은 밤늦게부터 붉은 등을 켜고서 장사를 시작하죠. 입구엔 모두 일반음식점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어요. 서울시내 방석집들은 대부분 골목길에 있는데, 이곳은 고가도로가 사람들 시야를 가리니까 골목이 아닌 대로변에 위치한 거죠.”
서울 고가도로 85개, 올 2개가 더 헐린다
11일부터 이틀간 아현동 골목 일대를 돌아다녔다. 재래시장인 아현시장에 다다르자, 천막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내복 장사를 40년간 해온 정정애(57)씨는 재개발로 인해 장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아현뉴타운 개발 지역의 주민들이 빠져나가면서 상권이 침체됐다는 것이다. 정씨는 “새로 조성되는 아파트 단지 안에 마트가 생길 예정이라 시장 상인들은 나아질 게 없다. 그나마 고가도로가 없어지면 북아현 주민들이 장을 보러 올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현동에 오래 거주한 이들은 고가도로 철거가 인근 환경 개선에 주요 기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현중학교 뒤에서 30년간 자리를 지켜온 연합부동산의 연제원씨는 “아현시장과 인근 상가가 낙후되고 대로변에 학교 담벼락을 높게 세운 것도 고가도로 때문이다. 고가 철거 이후 아현초, 아현중, 아현산업고의 담벼락을 좀 낮추거나 철거하면 경관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만서 에스알공인중개사 소장은 획일적인 도시개발을 재고하는 계기라고 주장했다. “아현동이 낙후돼 대부분 뉴타운 지구로 지정이 됐지만, 아현3구역과 북아현 1-3구역을 제외한 지역들은 개발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에요. 이렇게 동네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도 모르겠어요. 여기 원래 살던 서민들은 집값이 비싸 돌아오지도 못해요. 고가도로 철거를 계기로 동네의 개성을 살리고 서민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재검토했으면 해요.”
아현고가도로가 없어지면 교통은 괜찮을까. 서울시는 아현고가도로의 하루 통행량이 8만대에 달한다고 했지만, 철거 이후의 예상 교통량은 아직 연구를 진행중이라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철거가 완료되면 교통정체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동주 교수는 “청계천이나 다른 고가도로가 없어졌을 때도 우려할 만큼 정체가 심하지 않았다. 고가 아래의 도로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정체를 우려한 운전자들이 다른 길을 택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다른 고가도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철거가 확정된 고가도로는 약수고가도로와 서대문고가도로뿐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서울은 도심과 부도심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과 내외곽 순환도로에 83개의 고가도로가 있다. 전문가들은 고가도로의 입지와 성격에 따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교언 교수는 “미국 보스턴시가 1991년부터 고가도로를 모두 지하화한 빅디그(Big dig) 사업 이후 전세계적으로 고가 철거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뉴욕 맨해튼의 고가도로 하이라인(Highline)은 공원으로 조성돼 지금도 도심의 명물이다. 서울도 일률적인 철거보단 인근 상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서울 서부와 도심을 이으며
하루 차량 8만대를 실어날랐다
워낙 낡아 관리비만 연 4억
보행자 중심 개발도 철거 이유다
환경개선 신호탄이 될 거라며
주민과 상인들은 반긴다
그럼 교통정체는 괜찮을까
“우려하는 것보단 덜할 거예요
청계차도 철거때도 괜찮았어요”
1960~70년대, 차도 많지 않던 시절에… 왕복 8차선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입구가 막힌 고가도로 양옆 편도 2차선 도로로 몰렸다. 중앙차로로 달리던 파란색 시내버스가 도로변으로 가기 위해 차선을 변경했고, 승용차들과 엉키기 시작했다. 택시가 고가도로 옆길로 진입하자,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켰다. 신촌역에서 불과 지하철역 두 정거장 거리를 오는 데 30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아현역을 지나자 ‘아현동 가구거리’를 알리는 가구점들이 눈에 띄었다. 가구점은 아현역에서 충정로역까지 500여미터 거리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대로변과 이면도로에 자리잡은 가구점은 이 일대에 총 110여곳에 달한다. 939미터 길이의 아현고가도로는 삼거리인 아현교차로에서 왼쪽으로 살짝 굴곡졌고, 다음 삼거리인 충정로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상공에서 보면 굴곡이 약간 밋밋한 에스(S) 라인이다. 아현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300미터 앞에 있는 서소문고가도로 위를 달렸다. 고가도로 밑으로 서소문 근린공원이 있었고, 철길이 공원과 도로를 가로질렀다. 오른쪽으론 갈색 중앙일보 사옥이 눈에 띄었다. 택시를 타고 홍익대 인근에서 시내에 이르기까지 40여분이 걸렸다. 기사 최씨는 신용카드를 긁으며 “안 그래도 출퇴근 시간엔 항상 밀리던 길인데 고가도로 공사가 시작되고서 더 막힌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국내 최초로 건설된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위해 6일 오후 세 시부터 차량 통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아현고가도로는 오는 3월 말까지 두 달에 걸쳐 철거가 진행되고, 그 자리에는 대신 중앙버스전용차로가 7월까지 설치될 계획이다. 서울시는 아현고가도로가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만 연 4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가고,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를 할 경우 비용이 80억원에 달하는 등 노후화가 심하게 진행돼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고가도로는 안전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C급으로 2004년부터 교량 안전을 위해 통행가능 차량의 중량기준을 40톤에서 20톤으로 낮췄다. 정회평 서울시 일반교량팀장은 “아현고가도로는 2009년부터 철거 논의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워낙 노후화됐고, 고가도로가 시야를 막아 인근 상권이 침체되는 등 철거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아현고가도로는 도시개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천석현 서울시 도시개발시설본부장은 “과거 교통정책이 성장과 건설 위주였다면 이제 사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에 당선된 2002년부터 고가도로 철거사업을 시작해 2003년 철거한 청계고가도로를 포함해 현재까지 15개의 고가도로를 철거했다. 올해도 약수동고가도로와 서대문고가도로가 철거될 예정이고, 1970년에 준공된 서울역고가도로도 철거를 논의중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전세계적으로 도시개발의 기본 정책이 자가용의 운행을 억제하고 보행자나 대중교통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아현고가도로는 건설 당시부터 서울 도시개발의 상징적인 구조물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과학대학)는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서울 주요 고가도로의 역사를 설명했다. 이 책을 보면, 아현고가도로의 설립을 주도한 이는 박정희 정부가 선임한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었다. 김 전 시장은 부임 직후인 1966년 6월10일 아현고가도로의 기공식을 열어 공사를 시작했다. 김 전 시장은 아현고가도로가 한창 건립중인 1967년엔 아예 서울 동북지역인 미아리고개에서 청계천과 도심을 관통해 서쪽 서대문, 홍제동에 이르는 유료 고가도로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3년간 총 35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서울의 동쪽과 서쪽을 고가도로로 이어보겠다는 야심찬 구상이었다. 어느 철학원 원장의 풍수지리적 견해 손 명예교수는 저서에서 “1967년 말 서울시에 등록된 차량 총수가 2만5680대밖에 되지 않아 굳이 고가도로를 건설하지 않아도 차량 소통에 지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당시 35억원은 청량리에서 서울역 간에 지하철을 건설할 수도 있는 비용이었다. 결국 여론과 전문가의 반대에 부딪힌 김 전 시장은 서울을 횡단하는 고가도로 건설계획을 용두동 청계천로에서 명동성당까지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후 서울에선 고가도로 건설 붐이 일었다. 청계고가도로가 1971년 5864미터의 길이로 완공됐고, 서대문·삼각지·서빙고 등 도심과 부도심에 걸쳐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1990년대엔 강남 일대에 고가도로 건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교통공학)는 “차량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교통정책의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도심과 외곽을 막론하고 고가도로가 건설됐다”고 설명했다. 아현고가도로는 서울의 서부지역에서 도심에 진입하는 주요 도로다. 서울 서부지역인 여의도, 마포구, 서대문구 쪽에서 서울시청이 위치한 도심 방향으로 동서로 뻗은 길은 둘뿐이다. 하나는 연세대 앞을 지나 금화터널~독립문~사직터널에 이르는 성산로이고, 다른 하나가 신촌역에서부터 이대역, 아현역을 거쳐 충정로역으로 향하는 신촌로다. 서대문구 홍제동 쪽에서 도심 쪽으로 내려오는 홍제로나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역을 지나 충정로 쪽으로 뻗은 마포대로는 동서가 아닌 남동, 북동 방향으로 뻗은 길이다. 서울시의 건설기술심의위원인 박동주 교수는 “아현고가도로가 놓인 신촌로는 서울 서쪽에서 시내로 향하는 도로 중에서 통행이 가장 많은데다 주요 간선도로를 잇는 가장 중요한 도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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