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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보안법 6년 싸움에 찢긴 ‘학자의 꿈’

등록 2014-02-17 08:11수정 2014-02-17 09:37

2007년 박사과정 수료 김명수씨
국립도서관 등에도 있는 책인데
북한 관련 책 팔았다고 기소 당해
‘무죄’ 확정받았지만 삶 뒤틀려
강의 배정 못 받고 생계수단 잃어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할 것”
2003년 대학 국문과 석사과정에 다니던 김명수(59·사진)씨는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작은 인터넷 중고서점을 열었다. 김씨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중고책방에서 산 책들을 인터넷에 내놨고 4년 동안 별 탈 없이 장사가 되는 듯했다. 근현대 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대학원 수업에서 논문을 쓰며 다뤘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문학 등에 관한 책들도 팔았다. <북한의 문예이론> <항일혁명문학예술> <항일무장투쟁사>와 같은 책이었다. 그런데 박사과정을 수료할 무렵인 2007년 가을, 김씨는 갑자기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김씨가 쇼핑몰에서 북한 관련 서적을 파는 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검찰은 1970년대 만들어진 수사매뉴얼에 따라 책 서문에 ‘북한’ ‘주체사상’이란 낱말이 들어간 김씨의 책 310권을 모두 이적표현물로 분류해 기소했다. 김씨는 한달에 한번꼴로 열린 재판에서 매번 책 3권가량을 놓고 이 책이 이적표현물이 아님을 설명해야 했다. 그렇게 4년 동안 기소된 책의 70%를 설명한 뒤에야 1심 재판부는 ‘이제 됐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수원지법 형사1단독 최규일 판사는 “이 사건 책들은 대부분 국립도서관 등에 비치돼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며 김씨도 논문 작성을 위해 학술 목적으로 책을 인용했다.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수 없다”며 2011년 3월 무죄를 선고했다. 담당 판사가 4번이나 바뀐 뒤였다.

김씨는 ‘혐의를 벗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검찰은 항소했다. 2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형사1부(재판장 안호봉)는 단 세 차례 재판으로 김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9종의 책들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다. 북한과 대치하는 안보 상황에서 사상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2012년 김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상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 연구자로서 학계 ‘퇴출 선고’나 마찬가지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대법원은 2013년 9월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법 형사2부(재판장 고연금)는 “김씨가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할 뚜렷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 연구와 영리를 위해 쇼핑몰을 운영했다는 주장을 배척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7년에 시작된 싸움이 6년여 만에 끝난 것이다.

재판에선 이겼지만 김씨는 6년 동안 많은 걸 잃었다. 법정에 불려다니면서 국문학 연구자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학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의를 배정해주지 않았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쇼핑몰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세 자녀의 아버지인 김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둘째를 학비와 장학금이 지원되는 지방의 한 대학으로 옮기게 했다. 김씨는 “북한 책 복사본 몇 권이 인터넷에서 팔려나갔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만큼 한국 사회의 지적 인프라가 허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관련 학술정보는 차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해야 할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에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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