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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살려줘요” 후배들 비명 소리에 다시 들어갔다가…

등록 2014-02-18 20:28수정 2014-02-18 22:25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로 숨진 김진솔(20)씨의 어머니 김희숙(54·오른쪽)씨가 18일 오전 울산 호계동 21세기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딸의 친구들을 끌어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울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로 숨진 김진솔(20)씨의 어머니 김희숙(54·오른쪽)씨가 18일 오전 울산 호계동 21세기좋은병원 장례식장에서 딸의 친구들을 끌어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울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미얀마어과 4학년 양성호씨
후배 구하려다 끝내 주검으로
“말릴 사이도 없이 뛰어갔다”

태국어학과 부학생회장 김진솔씨
주말 아르바이트하며 용돈벌이
타이관광가이드 꿈 스러져

재수 끝 미얀마어과 합격 김정훈씨
부모형편 걱정만 하던 ‘속깊은 효자’
17일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는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청운의 꿈들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오열하며 가슴을 칠 뿐이었다.

■ 후배 구하러 다시 들어갔다가 부산외국어대 양성호(25·미얀마어과 4학년)씨는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지자 창문을 깨고 먼저 빠져나왔다.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떨어진 패널과 지지대 구실을 하던 철골 등이 쏟아져 내릴 때였다. 과 학생회장인 그는 후배들의 “살려 달라”는 외침을 외면하지 못했다.

양씨는 먼저 빠져나온 후배들한테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니 조금만 더 뛰어”라고 말한 뒤 망설임 없이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빠져나오지 못한 채 1시간여 뒤 도착한 구조대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양씨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남산동 침례병원 장례식장에서 양씨의 친구들과 후배들은 오열했다. 양씨의 친구 김아무개(25)씨는 “몇몇 후배들을 구출한 뒤 말릴 사이 없이 후배들을 구하러 다시 뛰어들어갔다.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양씨의 사회 선배인 신성민(28)씨는 “성호는 길을 지나가다가도 싸움이 벌어지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을 돕는 등 평소 의협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양씨는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한 뒤 바로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학비를 마련한 뒤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 신씨는 “학생회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학 생활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양씨의 어머니는 2000년부터 부산 남부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소방방재청장의 표창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반항 한번 하지 않던 효자 미얀마어과 신입생 김정훈(20)씨는 “타고난 효자”였다. 김씨의 아버지(52)는 “부모 걱정을 많이 하던 철든 아들이었던 것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고 했다. 아들답지 않게 반항 한번 하지 않았다. 비밀이 없는 부모 자식 사이였다. 김씨를 찾아온 친지들도 ‘그 착한 것이 이리되려고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느냐’며 오열했다. 김씨는 지난해에도 수능을 치렀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 재수를 했다. 부모님 형편을 걱정해 도서관에서 독학했다. 하루 10시간씩 공부에 매달렸다.

김씨는 위아래로 넷이나 있는 이모들에게도 살가운 조카였다. 김씨의 큰이모 이금자(67)씨는 조카가 2주 전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자랑스레 보여줬다. ‘이모 가요무대 (방청) 신청 붙었어요. 재밌게 보고 오세요.’ 이씨는 “신기하게도 정훈이가 가요무대 신청을 하면 붙었다. 또 부탁한다고 했더니 바로는 잘 붙지 않으니,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리엔테이션을 떠나보내고 집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버지는 ‘부산외국어대학교’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고 했다. 아들과 끝내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서에 전화했지만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답답한 김씨는 경기도 파주 집에서 승용차를 몰아 경주로 출발했다. 김씨의 신원은 18일 아침 6시께 가장 늦게 밝혀졌다.

■ 타이로 공부하러 간다더니 2학년이었던 김진솔(18)씨는 태국어학과 부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다. 김씨의 사촌 언니는 “솔이는 쾌활하고 밝아 따르는 사람이 참 많았다. 이번에도 부학생회장을 맡아 후배들을 데리고 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김씨는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주말마다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제 용돈을 제힘으로 벌고 싶어 했다고 친지들은 전했다. 지난 학기에는 장학금을 받았고 다음 학기에는 타이(태국)로 공부를 하러 갈 계획이었다. 김씨의 꿈은 타이 관광가이드였다. 하나 있는 여동생을 특히 예뻐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었다. 나이 어린 여동생은 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듯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어른들 틈에 누워 몸을 비볐다. 김씨의 사진을 보고 어른들이 울자 그제야 따라서 눈물을 훔쳤다.

경주 부산/방준호 김영동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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