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수(45) 변호사
대기업·대형로펌·방통위 상대
조형수씨 2년여 힘겨운 소송
“자료 공개” 법원판결 끌어내
조형수씨 2년여 힘겨운 소송
“자료 공개” 법원판결 끌어내
“영업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습니다.”
대형 이동통신사의 통신요금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는 소송 과정에서 조형수(45·사진) 변호사가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었던 말이다. 조 변호사는 한 달에 꼬박 7만원의 통신비를 내지만 어떻게 산정된 금액인지 알기 어려웠다.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통신요금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해도 통신사들은 ‘영업기밀’이라는 말로 회피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조 변호사는 “이동통신서비스는 장치산업이라 서비스 기간에 비례해 통신비가 하락해야 하지만 현실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다며 요금이 더 오른다.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얻는 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을 주주배당으로 소비하는 점이 부당한데도 그 실상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소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1년 7월 참여연대는 정보공개 의무가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를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화)는 “이동통신사가 약관 및 요금 인가 신고를 위해 방통위에 제출한 서류와 방통위의 심사자료들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행정4부(재판장 성기문)도 지난 12일 같은 판단을 했다. 공개대상에 포함된 이통사들의 영업보고서가 공개되면 실질적인 이동통신서비스의 원가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이 원가구성을 분석해 불합리한 점을 확인함으로써 이통사들의 폭리를 막을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또 요금 및 약관에 관한 방통위의 심의자료도 공개돼 방통위가 적절히 감독했는지 감시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의미 있는 소송이었지만 그 과정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인적·물적 자원이 압도적인 대기업과 대형 법무법인, 정부기관을 상대로 조 변호사는 힘겨운 법정 싸움을 했다. 대형 로펌들은 국외 자료까지 수집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방통위는 통신사들로부터 영업보고서를 제출받고도 해당 자료가 없다고 발뺌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법정에서 전문가를 데려와 발표를 하는 등 통신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을 내세웠다. 홀로 싸우던 조 변호사도 통신시장을 잘 아는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전 이사가 통신시장 경험자가 아니라며 증인 자격을 트집잡기도 했다.
다행히 재판부는 양쪽에 공평하게 발언 기회를 줬고, 결국 조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조 변호사는 “통신요금의 합리적 책정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통신요금이 적정한지 비판과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서는 대기업이 관련 증거자료를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로 손해를 본 대리점주가 낸 부당이득금 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오규희 판사는 “손해액 산정 자료가 남양유업에 편중돼 있는데, 남양유업은 형식적 입증 책임만을 내세우지 말고 증거 불평등 완화를 위한 법원의 조처에 성실히 답하라”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남양유업에 패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앞으로 공정해지려면 재판부가 기계적 형평을 넘어 개인에게만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관행이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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