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가족 / 기러기 아빠, 두 개의 시간
▶ 기러기는 사실 암수가 사이 좋기로 유명한 새입니다. 늘 붙어 다니고, 암수 중 한마리가 먼저 죽으면 그 옆을 맴돌며 슬퍼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사람 기러기는 신세가 다릅니다. 가족을 타지에 보내고서 자유를 위장한 방종으로 좀비가 되기도 하죠. 가족들이 사는 도시의 지도를 혼자 사는 방에 걸어두고, 함께 다니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냐고요? 물론이죠.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눈물로 입맛을 다시고 햇반 먹어도 후회는 없지
기러기 아빠는 좀비다. 좀비는 삶과 죽음, 생명과 비(非)생명을 가로지른다. 기러기 아빠는 가족‘관계’ 안에서 죽어 있다가도 갑자기 살아나고, 살아 있어도 진짜 사는 게 아니다. 기러기 가족은 가족이면서 동시에 비가족이다.
좀비는 관계가 복원되는 순간마다 살아난다. 애를 써야 살아날 수 있다. 3년 전 아내와 아들이 캐나다로 떠난 뒤,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캐나다 시간을 떠올린다. 손목시계는 한국 시간을 가리키지만, 머리에선 캐나다 시계가 돌아간다. 여기가 아침 8시니까 거기는 오후 5시,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와서 피아노를 치겠구나, 아내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겠구나, 하는 식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기러기 아빠의 시간은 두 개가 동시에 흐른다. 시간과 공간은 결합돼 있기에 두 개의 시간을 떠올리는 순간, 좀비의 영혼은 캐나다에 속해 있다.
좀비는 햇반 마니아다. 종류별로 모으는 게 취미다. 오곡밥, 찰보리밥, 유기농밥, 흑미밥, 검정콩밥, 발아현미밥….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죽어 있던 밥알들은 전자레인지의 기운을 빌려 2분 만에 살아난다. 장모님과 시골 어머니가 보내준 오래된 반찬들도 냉장고에서 죽어 있다 가끔씩 살아나온다. 그래도 좀비의 음식 솜씨는 일취월장했다. 마음만 먹으면 잡채나 카르보나라를 해 먹을 수 있게 됐다. 잡채나 카르보나라는 인간들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 음식인지라 좀비는 집에서 그런 걸 해 먹지는 않는다. 좀비는 네 가구 중 한 가구꼴로 많아졌다는 대한민국 1인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뼛속 깊이 이해한다. 설거지는 이틀에 한 번, 빨래는 2주에 한 번, 집안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한다.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는 순간 다리미로 바로 다려서 건조대에 널어놓고 다음 빨래를 할 때까지 건조대에서 골라 입는다.
3년 전 아내와 아들이
캐나다로 떠난 뒤부터
시계는 한국시간 가리키지만
머리엔 캐나다 시계 째깍째깍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좀비처럼 기러기 아빠도
가족이면서 비가족이지만
세계시민으로 커가는 아들에게
희생을 보상받는구나 싶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라는 문구로 유명한 <웜 바디스>는 새로운 트렌드의 좀비영화를 대표한다. 그런 영향 탓일까. 생전 안 그랬는데, 좀비는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출근길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를 보는 순간, 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마주하게 되는 빛바랜 결혼식 사진의 아내 얼굴을 보는 순간, 울컥할 때가 있다. 일요일 낮 재방송 드라마도 쥐약이다. 맥락 없이 흐르는 눈물로 입맛을 다실 때 좀비의 피는 뜨거워지고 심장은 다시 뛴다. 매일 슬픈 좀비를 동경하는 인간 군상이 있다. 결혼해서 애가 있는 남자 인간들이다. 저녁 시간에 만나면 그들은 “어떻게 나온 집(구석)인데 일찍 들어가니”를 입을 모아 외친다. 그들의 속내는 이어지는 너스레에서 발가벗겨진다. “기러기 아빠가 되려면 3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며?” 그렇지만 그들이 정작 모르는 게 있다. 완전한 자유와 무제한의 책임은 동전의 앞뒤이며 한몸이라는 사실을. 자유가 방종으로 넘어가는 순간, 좀비는 부활을 멈출지도 모른다. 좀비는 기러기 아빠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걸 꺼린다. 기러기 아빠를 특권층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기러기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젠체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들한테서 질투와 선망의 모순된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 “돈지랄하냐”는 시선을 보내거나 “아이 교육에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니냐”고 따지던 사람들도 나중에 넌지시 “도대체 1년에 얼마나 비용이 드는 거냐. 아이 영어 실력은 많이 늘었느냐”고 묻는다. 좀비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국수주의자들의 주장도 여러 번 들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모순 덩어리라도 우리 땅에서 키워야지 뭐 하는 짓이냐. 아이를 외국사람 만들려고 하느냐.” 이렇게 비판하는 이들 중에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외국 체험을 하게 한 걸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건 좀비가 캐나다로 가서 가족들과 결합해 온전한 인간으로 여러 체험을 해본 뒤 확신으로 변했다. 아이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문화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학교 성적이나 영어 실력은 사실 그렇게 관심사가 아니다. 코즈모폴리턴, 세계시민으로 클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기쁘다. 캐나다 집에 있을 때 아들은 칠레에서 온 친구랑 집에서 놀다가, 인도에서 온 친구와 도서관에 가고, 독일에서 온 친구와 자전거를 탔다. 흑인, 백인, 황인종이 섞여 있는 인종 전시장 같은 학교에도 몇번 가봤다. 아이의 캐나다 학교 첫인상에 대한 코멘트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아빠, 한국 학교 복도에서 아이가 넘어지면 다른 아이들이 낄낄대면서 웃는데, 여기 아이들은 달려가서 진심으로 괜찮냐고 걱정해주더라.” 하루에 30분 책을 읽으라는 게 학교 숙제의 전부인 아들은 1년 이상 피아노를 치는 데 빠졌다가 요즘엔 저렴한 일렉트릭기타를 구입해서 진지하게 ‘뮤지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욕망하고 욕망을 현실로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 좀 부럽다. 좀비 인생엔 없었던 일이다. 스위스 알프스 200개를 모아놓은 것 같다는 평을 듣는 로키산맥 종주여행을 했을 때, 나이아가라폭포수에 온 가족이 흠뻑 젖었을 때, 아이와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단둘이 야영을 했을 때, 세인트로렌스강 옆 퀘벡시티의 그림 같은 옛 성들을 둘러볼 때 좀비는 그동안의 희생을 약간 보상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캐나다에 다녀온 뒤 좀비는 침대 머리맡에 아내와 아들이 사는 도시의 대형 지도를 붙여놓았다. 주요 도로를 머리에 그려 넣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곱씹기 위해서다. 좀비는 오늘도 혼자 잠을 청할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다시 잠들 수 없으니까 따뜻한 우유를 데워서 먹어야 한다. 독감에라도 걸리면 괜스레 서글퍼지니까 수건에 물을 적셔 습도를 맞추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내일 아침엔 한 번도 안 먹어본 햇반에 도전할 테다. 강의하는 좀비
3년 전 아내와 아들이
캐나다로 떠난 뒤부터
시계는 한국시간 가리키지만
머리엔 캐나다 시계 째깍째깍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좀비처럼 기러기 아빠도
가족이면서 비가족이지만
세계시민으로 커가는 아들에게
희생을 보상받는구나 싶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라는 문구로 유명한 <웜 바디스>는 새로운 트렌드의 좀비영화를 대표한다. 그런 영향 탓일까. 생전 안 그랬는데, 좀비는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출근길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를 보는 순간, 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마주하게 되는 빛바랜 결혼식 사진의 아내 얼굴을 보는 순간, 울컥할 때가 있다. 일요일 낮 재방송 드라마도 쥐약이다. 맥락 없이 흐르는 눈물로 입맛을 다실 때 좀비의 피는 뜨거워지고 심장은 다시 뛴다. 매일 슬픈 좀비를 동경하는 인간 군상이 있다. 결혼해서 애가 있는 남자 인간들이다. 저녁 시간에 만나면 그들은 “어떻게 나온 집(구석)인데 일찍 들어가니”를 입을 모아 외친다. 그들의 속내는 이어지는 너스레에서 발가벗겨진다. “기러기 아빠가 되려면 3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며?” 그렇지만 그들이 정작 모르는 게 있다. 완전한 자유와 무제한의 책임은 동전의 앞뒤이며 한몸이라는 사실을. 자유가 방종으로 넘어가는 순간, 좀비는 부활을 멈출지도 모른다. 좀비는 기러기 아빠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걸 꺼린다. 기러기 아빠를 특권층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기러기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젠체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들한테서 질투와 선망의 모순된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 “돈지랄하냐”는 시선을 보내거나 “아이 교육에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니냐”고 따지던 사람들도 나중에 넌지시 “도대체 1년에 얼마나 비용이 드는 거냐. 아이 영어 실력은 많이 늘었느냐”고 묻는다. 좀비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국수주의자들의 주장도 여러 번 들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모순 덩어리라도 우리 땅에서 키워야지 뭐 하는 짓이냐. 아이를 외국사람 만들려고 하느냐.” 이렇게 비판하는 이들 중에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외국 체험을 하게 한 걸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건 좀비가 캐나다로 가서 가족들과 결합해 온전한 인간으로 여러 체험을 해본 뒤 확신으로 변했다. 아이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문화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학교 성적이나 영어 실력은 사실 그렇게 관심사가 아니다. 코즈모폴리턴, 세계시민으로 클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기쁘다. 캐나다 집에 있을 때 아들은 칠레에서 온 친구랑 집에서 놀다가, 인도에서 온 친구와 도서관에 가고, 독일에서 온 친구와 자전거를 탔다. 흑인, 백인, 황인종이 섞여 있는 인종 전시장 같은 학교에도 몇번 가봤다. 아이의 캐나다 학교 첫인상에 대한 코멘트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아빠, 한국 학교 복도에서 아이가 넘어지면 다른 아이들이 낄낄대면서 웃는데, 여기 아이들은 달려가서 진심으로 괜찮냐고 걱정해주더라.” 하루에 30분 책을 읽으라는 게 학교 숙제의 전부인 아들은 1년 이상 피아노를 치는 데 빠졌다가 요즘엔 저렴한 일렉트릭기타를 구입해서 진지하게 ‘뮤지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욕망하고 욕망을 현실로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 좀 부럽다. 좀비 인생엔 없었던 일이다. 스위스 알프스 200개를 모아놓은 것 같다는 평을 듣는 로키산맥 종주여행을 했을 때, 나이아가라폭포수에 온 가족이 흠뻑 젖었을 때, 아이와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단둘이 야영을 했을 때, 세인트로렌스강 옆 퀘벡시티의 그림 같은 옛 성들을 둘러볼 때 좀비는 그동안의 희생을 약간 보상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캐나다에 다녀온 뒤 좀비는 침대 머리맡에 아내와 아들이 사는 도시의 대형 지도를 붙여놓았다. 주요 도로를 머리에 그려 넣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곱씹기 위해서다. 좀비는 오늘도 혼자 잠을 청할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다시 잠들 수 없으니까 따뜻한 우유를 데워서 먹어야 한다. 독감에라도 걸리면 괜스레 서글퍼지니까 수건에 물을 적셔 습도를 맞추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내일 아침엔 한 번도 안 먹어본 햇반에 도전할 테다. 강의하는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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