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의성의 노인들은 여전히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이 지역에서 자살 시도를 한 65살 이상 노인은 2012년 13명에서 2013년 3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삶의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한겨레>가 2012년 10월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 취재를 위해 찾아간 군위군 우보면 이화리에서 한 할아버지가 마을 어귀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군위 의성/김정효 신소영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대통령 1년 ‘대선 만인보’ 민심기행 그후 1년
지난 21일 찾아간 의성군 보건소에서 주민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군위 의성/김정효 신소영 기자 hyopd@hani.co.kr
“가진 사람만 더 가지게 해 걱정” 생계마저 곤란해진 연평도 주민들
주민 10% 남짓만 정부 취로사업
목포 다문화가정여성지원 장씨
예산절약탓 지원센터 통합돼 한숨
“현장 무시하고 무리하게 정책추진” 목포에서 다문화가정 여성 지원활동을 벌이는 장아무개(45)씨는 걱정이 늘었다. 정부가 예산 절약을 이유로 부처별로 나눠진 다문화지원 사업을 통합한다는 발표가 올해 초 나오고 나서다. 기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사라지고, 조손가정·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아우르는 ‘가족통합지원센터’가 만들어진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건 좋은데 이대로 가면 다문화가정 지원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해나가야 하는데 관에서 주도적으로 무리하게 끌고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현재 다문화가정에 무료 제공하는 방문교육 서비스도 올해 하반기부터 소득에 따라 돈을 내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현장을 도외시한 무리한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은 충남 논산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이어졌다. 정부는 역시 예산 탓에 부처별로 추진하던 ‘돌봄 서비스’를 통합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등학교 돌봄교실을 밤 10시까지 운영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들은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돌봐 달라고 지역아동센터에 다시 부탁하는 실정이다. 논산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변혜숙 센터장은 “정부에서는 (학교에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하라고 하고, 학교에서는 밤늦게까지 아이를 돌보기 힘드니까 우리한테 봐 달라고 부탁한다. 초등학교와 상담도 많이 하고 협력해서 일해 왔는데 무작정 거절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설익은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9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강원대 졸업생 홍종호(가명)씨는 올해 30살이 됐다. 당시 “지방대생에 대한 관심”을 대선 후보에게 요구하던 그는 여전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한 차례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 시험 준비가 길어지면서 생활비와 공부 비용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여전히 강원대 별관도서관에서 공부한다. “주말마다 주유소에서 10시간씩 일해요.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없어요.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지역할당제를 하도록 해서 지방대 학생들의 취업을 도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대기업 규제를 풀어 가진 사람들만 더 가지게 하니 뭘 더 기대하겠어요.” 경남 창원의 정수환(가명·30)씨는 2012년 12월 <한겨레>와 만난 직후, 3년간 운영해온 휴대전화 판매점을 접었다고 했다. “경기가 안 좋으니까 작년 초에 그냥 손 털고 나왔어요. 가게가 잘 안되니까 동업하던 친구랑 관계도 별로 안 좋아지기도 했고요. 그때 근처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했던 다른 사장들도 대부분 장사 그만뒀어요.” 정씨는 “옛 마산 쪽 지역경제가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경남도청을 옛 마산 지역으로 이전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다른 지역에서 반대가 많나 봐요. 이 지역은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부산이나 인근 도시로 건너가서 일하죠. 경기가 나쁜 지역에 돈을 풀어주든지, 규모가 작은 가게들도 좀 살아남게 해주든지 해야 할 텐데 큰일이에요.” 정씨는 지난해 초부터 ‘자동차 리스’ 쪽 일을 하고 있지만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2012년 9월 <한겨레> 기자와 만났던 서울 구로구 버스카드 단말기 공장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부분 회사를 옮겼고 연락처가 바뀌었다. 공장을 옮겨가며 고단한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서영지 정환봉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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