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김성곤(왼쪽), 김광진 의원이 9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해임과 국가기관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릴레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 37명은 지난 2일부터 오는 14일까지 돌아가며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진행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간첩 증거 조작 파문 확산]
자살 시도 ‘국정원 협력자’ 김씨
‘가짜 제작비 1000만원’ 언급에
‘다른 건 관련 대가’ 해명으로
또다른 위조 공문 시인
‘우리도 속았다’ 책임 떠넘기기
“정말 속았다면 문닫아야” 비판
검찰, 대공수사국 집중 조사 예고
국정원 윗선 개입 여부 규명돼야
자살 시도 ‘국정원 협력자’ 김씨
‘가짜 제작비 1000만원’ 언급에
‘다른 건 관련 대가’ 해명으로
또다른 위조 공문 시인
‘우리도 속았다’ 책임 떠넘기기
“정말 속았다면 문닫아야” 비판
검찰, 대공수사국 집중 조사 예고
국정원 윗선 개입 여부 규명돼야
국가정보원이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에 대해 해명을 거듭할수록 ‘불법 공작’의 실체만 스스로 더 드러내고 있다.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거짓 해명을 해오다가 오히려 ‘다른 위조 서류도 있다’고 자인까지 하고, 협력자한테선 ‘국가조작원’이란 말마저 듣는 지경이 됐다.
지난달 14일 중국 정부는 국정원·검찰이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중국 공문서 3건이 모두 위조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즉시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사실에 부합하는 문서로, 위조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받은 공신력 있는 문서라는 얘기였다.
국정원의 거짓말은 나흘 만에 들통났다. 지난달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공문서 3건 중 2건에 대해 “선양 영사관이 (중국 쪽에) 정식으로 발급 요청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비공식적으로 문건들을 입수했다는 뜻이다.
이후 국정원은 ‘비공식으로 얻은 것’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여전히 ‘문서의 내용도 맞고 위조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도 지난달 28일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의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세관) 발급 문서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 신뢰를 잃었다. 중국 정부가 진본이라고 밝힌 변호인 쪽 문서와 국정원·검찰 쪽 제출 문서에 찍힌 삼합변방검사참의 도장이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국정원은 ‘떼쓰기’에 가까운 설명을 내놓는다. 국정원은 “중국은 관공서 안에서도 복수의 인장을 사용한다. 같은 인장도 찍을 때 힘의 강약, 인주 상태 등에 따라 글자 굵기 등이 달라져 정밀감정 시 완벽하게 일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의 감정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대검은 도장의 마모 정도와 찍을 때 힘의 차이 등을 모두 고려해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고 밝혔다.
삼합변방검사참의 문서를 구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61)씨가 자살을 시도한 뒤 국정원은 더욱 납득하기 힘든 해명을 내놓았다. 김씨가 지난 5일 자살을 시도하며 남긴 유서에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써놓자, 국정원은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은 삼합변방검사참의 문서와는 별개’라고 했다. 1000만원은 위조로 드러난 삼합변방검사참 문서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는 설명을 하려다가 또다른 위조 서류가 있다고 자인한 꼴이 된 것이다.
국정원은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외 인적 첩보망(휴민트)이 망가질 수 있다는 주장을 흘리며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협력자가 검찰 조사에서 문서가 위조됐다고 시인하자, ‘우리도 몰랐다. 우리도 속았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며 김씨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김씨가 자살을 시도하며 혈서로 ‘국정원’이라고 쓰고, 유서에 ‘지금 국정원은 국조원(국가조작원)’이라고 쓴 것은 국정원에 대한 원망을 짙게 담은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검찰은 며칠 만에 위조 사실을 밝혀냈는데, 국정원이 위조 문서에 속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말 속았다면 국정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관들을 불러 누가 문서 위조를 주도했는지 등을 집중조사할 예정이다. 대공수사국 간부나 국정원 윗선이 문서 위조를 지시·방조·묵인했는지도 밝혀야 할 대목이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제출된 자신의 진술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한겨레> 8일치 1·4면)한 중국동포 임아무개(49)씨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하려고 접촉중인데 연락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진태(62) 검찰총장은 9일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엄중한 인식을 가지고, 국민적 의혹이 한 점 남지 않도록 신속하게 법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수사팀에 지시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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