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불이 나 집 안 곳곳이 그을린 화교사옥 2층 쪽방에서 집주인 나아무개씨가 10일 오후 나무판자로 무너진 벽을 덧대고 신문지를 붙이는 등 임시로 수리한 방 안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관리 주체인 한성화교협회는 이날 이 쪽방이 전소된 건물에 불법으로 지은 건축물이라며 철거를 시도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구청, 화재뒤 안전 이유로 퇴거명령
거주자 49명중 대부분은 빈곤 노인
무허가 모른채 집사 보상 못받을판
건물관리 화교협회, 이주대책 거부
“쪽방 주민들은 불법점거자일 뿐”
거주자 49명중 대부분은 빈곤 노인
무허가 모른채 집사 보상 못받을판
건물관리 화교협회, 이주대책 거부
“쪽방 주민들은 불법점거자일 뿐”
사람이 살던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곳곳이 불에 그을리고 지붕은 허물어져 있었다. 정광수(44)씨는 화재로 폐허가 된 집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와 30년 넘게 산 집이에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어요.”
을씨년스러운 서울 중구 수표동 화교사옥으로 10일 오후 철거반원 2명이 들어섰다. 지난달 17일 밤 일어난 화재로 폐허가 된 이곳에 주민이 나무판자로 지은 ‘간이 쪽방’을 허물려던 것이었다. 이 집을 지은 나아무개(46)씨는 “1975년부터 살아온 곳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니까 집을 다시 지었다”며 항의했다.
나씨와 철거반원이 뒤엉켜 다투자 경찰이 떼어놨다. 80~90대 할머니 2명이 숨진 화재 직후, 이곳에 살던 주민 20여명은 인근 찜질방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나씨는 나무판자로 거처를 만들었다. 다른 이들도 무너진 집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썼지만 포기하고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화교사옥은 1951년께 중화민국 대만대표부가 세운 뒤 여러차례 증·개축을 거쳤다. 지금은 1003㎡(303평) 땅에 3층과 2층짜리 건물이 각각 한 동씩 들어서 있다. 나무 뼈대로 지은 방 60칸 정도로 이뤄진 이른바 ‘쪽방촌’이다. 주민등록상 33가구 49명이 살고 있다. 대체로 70~80대 노인들로, 모두 한국인이다. 정씨나 나씨 등이 가장 ‘어린’ 축에 든다. 불이 난 곳은 1층에 공구상가가 있는 청계천 쪽 3층 건물이다. 2층 건물도 화재 진압 과정에서 물이 차고 지붕이 무너졌다.
화재 뒤 쪽방 주민들에겐 구청의 ‘퇴거명령장’이 날아들었다. 중구청은 지난달 26일 주민들에게 ‘안전진단 결과 건축물을 철거해야 하니 즉시 퇴거하지 않으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통보했다. 화교사옥은 건축법이 생기기 전 만들어져 ‘기존 무허가 건축물’로 분류돼있다. 사옥 땅은 대만대표부 소유이고, 실질적인 건물관리는 ‘한성화교협회’가 해왔다.
대만대표부의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화교들은 1970~80년대 한국인에게 ‘무허가 건축물’을 팔기 시작했다. 폐지 등을 주으며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는 고령의 주민들은 대부분 수십년 전 화교들에게 당시 돈 70만~80만원을 주고 집을 샀지만, 이를 증명할 문서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무허가인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1980년부터 이곳에 산 하응출(63)씨는 “30~40년 전 화교에게 집을 살 때 당연히 소유권이 생긴 줄 알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김일수(53)씨는 “십수년 동안 우리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구청이 이제 와서 주민을 내쫓고 있다. 화재로 재산도 잃었는데, 보상없이 쫓겨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냐”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 윤소녀(59)씨는 “24년 동안 지켜온 집이다. 퇴거를 요구하려면 화재 보상이나 이주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화재에 따른 긴급구호 차원에서 한달 동안 고시원에서 살만한 돈은 지급하지만 이주 대책은 건물관리를 맡고 있는 한성화교협회와 주민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성화교협회는 “쪽방 주민들은 불법 점거자여서 이주 대책을 마련해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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