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남성이 위자료 줘라” 판결
고등학교 여자 교사인 ㄱ씨는 2011년 초부터 같은 학교 남자 교사 ㄴ씨와 교제했다. ㄴ씨는 동료 교사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리고,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1년 뒤 ㄴ씨는 ㄱ씨가 근무하는 학교와 같은 시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한 뒤 ㄱ씨에게도 동·호수를 알려줬다. 구입과정에서 ㄴ씨는 ㄱ씨에게 조언을 구하고 대출 통장을 보여줬고, 얼마 후 ㄱ씨가 전근을 가자 ㄴ씨는 “옆에 못 있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ㄴ씨는 ㄱ씨와 만날 때 같은 학교 여자 교사인 ㄷ씨와도 사귀고 있었다. ㄴ씨는 두 여성과 피임 없이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2012년 초 ㄱ씨와 ㄷ씨가 동시에 임신을 하자 ㄴ씨는 ㄷ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ㄱ씨에게 “나는 간경화가 있는데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렵다”며 낙태를 권했다. ㄱ씨가 한 달 뒤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사이 ㄴ씨는 ㄷ씨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이를 알게 된 ㄱ씨는 교육청에 진정서를 냈고, ㄴ씨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전출됐다. ㄱ씨는 약혼을 부당하게 파기했다며 ㄴ씨와 그의 부모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단독 최정인 판사는 “ㄴ씨는 ㄱ씨에게 2000만원, ㄱ씨의 부모에게 각각 2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최 판사는 “ㄴ씨가 ㄱ씨에게 장차 신혼집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며 자금 마련 상황을 상세히 알려주는 등 상의했고 그 직후 서로 피임 없이 성관계를 가졌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묵시적으로 약혼의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ㄴ씨의 부당한 약혼 파기로 ㄱ씨와 ㄱ씨의 부모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다만, ㄴ씨의 부모가 임신 중절을 강요해 약혼을 파기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ㄴ씨 부모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는 기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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