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환형제도 개선 구체안 마련
벌금 1억 이상땐 ‘일당 최대 0.1%’
100억 넘으면 노역 900일 이상으로
유착 우려 지역법관제 폐지 검토
벌금 1억 이상땐 ‘일당 최대 0.1%’
100억 넘으면 노역 900일 이상으로
유착 우려 지역법관제 폐지 검토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 황제 노역’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대법원이 노역장 환형유치 금액을 제한하고 유치기간에 하한선을 두기로 하는 내용의 개선책을 내놨다. 토착 기업인 등과 유착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 지역법관(향판) 제도의 폐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28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에서는 벌금을 노역으로 대신할 때 적용하는 하루 유치 금액을 벌금 1억원 미만일 경우 원칙적으로 10만원으로 하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벌금 액수가 1억원 이상인 경우엔 벌금의 0.1%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다만, 벌금 1억원 미만 사건에서 노역장 유치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양형 조건을 따져 50만원 범위 안에서 하루 유치 금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세·관세·뇌물 사건 등 징역형과 함께 벌금형이 부과되는 사건의 환형유치 기간 하한도 마련됐다. 1억원 이상 벌금을 못 낼 경우 터무니없는 고액 일당이 부과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1억~5억원 미만은 300일 이상, 5억~50억원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100억원 미만은 700일 이상, 100억원 이상은 900일 이상 노역장 유치를 하도록 했다. 현행법에서는 3년이 넘지 않는 기간 동안 노역장 유치가 가능하다.
허 전 회장에게 새 기준을 적용하면 하루 유치 금액은 벌금 254억원의 0.1%인 2540만원을 넘기면 안 되고, 유치 기간은 900일이 넘어야 한다. 허 전 회장은 하루 유치 금액 5억원이 적용돼 유치 기간 50일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번 기준은 권고사항이어서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또 판사들이 환형유치 기간을 길게 적용하는 것을 꺼려 선고유예 판결을 하면 기준 강화는 무의미해진다.
대법원은 허 전 회장이 지나치게 관대한 환형유치 선고를 받은 배경에 지역법관 제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지적을 반영해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전국 법원 수석부장판사들이 재판의 공정성이나 지역적 폐쇄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며, 전국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역법관제 폐지 또는 ‘의무 권역 순환 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무 권역 순환 근무제’는 판사가 지방법원 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 등으로 승진할 때마다 다른 권역으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수석부장판사 회의에 참석한 박병대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최근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과 언론의 따가운 시선과 우려의 눈빛을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수천 수만 건 중 단 한 건의 판결이라도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사법 작용 전반에 대한 국민 신뢰에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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