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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원에 왜 중지 요청 못 하나…검찰에 왜 고소할 수가 없나

등록 2014-04-04 20:15수정 2014-04-05 14:22

‘경제경찰’을 자임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의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추진 의사가 줄어들면서 함께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2013년 6월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차원의 ‘부당 단가인하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경제경찰’을 자임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의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추진 의사가 줄어들면서 함께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2013년 6월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차원의 ‘부당 단가인하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모순투성이 ‘공정거래사건 집행체계’
샘물유통사업체 마메든샘물 김용태 사장이 대기업 하이트진로음료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벌여온 싸움은 가히 ‘김의 전쟁’이라 할 만한다. 김 사장의 경험은 특별한 불운을 겪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가맹점, 대리점, 하도급,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등의 수많은 갑을관계에서 지금도 을들은 외롭고 힘든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을 공정한 시장경쟁으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공정거래사건의 집행체계 개혁’이다. 하나의 공정거래사건이 시작부터 종결에 이르는 과정에 관여하는 행정과 사법의 제도 및 절차 일체를 ‘공정거래사건 집행체계’라고 한다. 마메든샘물의 사례는 공정거래사건의 집행체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 사장에게는 사업이 부도나기 전에, 공정위 신고 과정에서, 그리고 하이트진로음료의 위법행위를 확인한 공정위의 행정처분 이후에도 자신의 정당한 이해를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행정·사법상의 권리와 보호장치가 너무도 부족했다.

대기업 횡포 금지요청할 수도
무혐의 처분에 대항할 수도 없어
시정명령까지 4년이나 걸렸고
손배 청구도 어렵긴 마찬가지

공정거래 시작부터 종결에까지
이르는 행정·사법제도와 절차
갑에겐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을에겐 거대한 벽으로 서 있다

하이트진로음료가 마메든샘물의 사업을 ‘잡아먹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실행하던 바로 그 시점에 김 사장이 법원에 하이트진로음료의 행위의 중지(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인의 금지청구 제도’는 공정거래사건의 피해자가 공정위 신고나 처리 결과를 기다리기 이전에도 법원에 직접 위법행위의 신속한 중지(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하이트진로음료의 행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공정위 결정을 고려했을 때, 이 제도가 있었다면 김 사장은 부도를 피해갔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고 공정위 2013년 업무보고에도 추진 과제였던 이 제도는 정부 여당이 ‘경제민주화 완성’을 외치는 사이에 공정위가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고, 현재 국회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김 사장은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중재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공정위 신고건은 원칙적으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의 중재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정은 적극적인 조정안을 제출하고 당사자를 설득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당사자의 화해를 촉구하는 알선에 가깝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하이트진로음료가 형식적인 조정에 응할 리 만무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은 조정안에 대해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사법상 화해계약,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부여되는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의 조정은 이런 효력도 없다.

김 사장은 공정위 신고건이 언제까지 처리될 수 있는지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시정명령 의결까지 4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그의 고통은 배가됐다. 공정위는 빗발치는 을들의 원성에 따라 지난해 말 ‘공정거래사건은 두 달 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6개월을 넘긴 사건은 특별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전에도 공정거래사건은 2개월 이내 처리가 원칙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공정거래사건 처리 시한에 관한 규범력 있는 규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김 사장에게는 1차, 2차 신고에서 공정위의 무혐의 처분에 불복할 다른 수단이 없었다. 하이트진로음료가 공정위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은 공정위 행정처분에 맞서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전략을 취한다. 지난해 공정위가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공정위 행정처분에 대한 소 제기 비율은 2008년 7.6%에서 2012년 13.4%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소 제기 비율이 이렇게 늘었다는 것은 자금력과 전문인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인 을들의 처지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도 공정위 내부에 재심위원회를 두거나 신고인도 행정소송을 통해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김 사장에게는 하이트진로음료의 위법행위를 직접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형사고발 권한을 공정위한테만 부여한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소송 남발을 막고 형사고발 사안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공정위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도입됐지만 공정위가 재벌·대기업 편에서 형사고발을 너무 아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등 다른 정부기관에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이것을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로 보기 어렵다. 검찰총장에게 공정거래사건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부여한 1996년 이래 검찰총장이 공식적으로 이 권한을 행사한 사례가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은 것처럼, 이들 정부기관이 적극적으로 고발요청권을 행사할지 의문이다. 피해 당사자와 공익적 시민단체가 공정거래사건을 직접 검찰에 고소·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 사장이 부도나기 전에 직접 검찰에 고소했다면 하이트진로음료는 사법적으로 위축되어 위법행위를 중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사장은 하이트진로음료에 자신이 입은 손해액의 수배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하도급법상 기술 탈취 등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최대 3배까지만 인정되고 있다. 위법의 정도가 심할 경우 손해배상액이 회사의 존폐까지 이르게 한 많은 선진국들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르다. 하이트진로음료가 마메든샘물에 끼친 손해액의 몇배, 몇십배를 배상해야 하는 상황을 미리 고려했다면 그런 위법행위는 계획 단계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높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공정거래사건 일반으로 확대해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억지력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하이트진로음료를 상대로 한 김 사장의 손해배상 청구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자신이 입은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지부터 쉽지 않다. 전문 인력을 갖춘 공정위가 행정처분과 함께 김 사장이 입은 피해액을 산정해 주었다면 이후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공정위의 ‘손해배상 명령제’도 김 사장에게 유효한 구제수단이 될 수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부당해고 구제사건에서 노동위원회가 노동자의 생계 보장을 위해 행사할 수 있는 임금지급 명령이 이 제도에 참조가 될 수 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힘센 사업자의 위세를 절감한다.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이론은 시장경제가 내재적이고 체계적으로 힘센 사업자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규칙일 뿐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경제질서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
이 신뢰는 하이트진로음료 같은 대기업의 위세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횡포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 마메든샘물 같은 중소기업의 시련이 ‘김의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여러 장치들을 전제하고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김 사장에게 가능한 최대의 행운이 따르더라도 그가 부당하게 잃은 것과 하이트진로음료가 위법하게 얻을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즉 현행 공정거래사건의 집행체계로는 시장의 정의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갑에게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을에게는 거대한 벽으로 서 있는 공정거래사건 집행체계는 대대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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