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박근혜 대통령님 대기업 횡포 계속 방치할 건가요”

등록 2014-04-04 20:20수정 2014-04-06 17:10

하이트진로음료의 공격을 받은 마메든샘물은 몰락했다. 50억 자산이 사라졌다. 2층 규모 본사 건물은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로 바뀌었다. 김씨 가족은 이제 월세방에 산다. 2일 저녁 천안시 구룡동의 사무실 문을 잠그고 퇴근을 하는 김용태 사장의 뒷모습이 멀찍이 보인다. 허재현 기자
하이트진로음료의 공격을 받은 마메든샘물은 몰락했다. 50억 자산이 사라졌다. 2층 규모 본사 건물은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로 바뀌었다. 김씨 가족은 이제 월세방에 산다. 2일 저녁 천안시 구룡동의 사무실 문을 잠그고 퇴근을 하는 김용태 사장의 뒷모습이 멀찍이 보인다. 허재현 기자
[토요판] 커버스토리
마메든샘물 김용태 사장 이야기
중소업체 울리는 하이트진로·공정위 다시 고발한다
▶ 불법시위는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불법시위를 벌인 사람들의 사연을 자세히 들어본 적 있나요. 2012년 어느 날 아침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불법시위를 벌인 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의 사연을 들어보니 ‘오죽했으면…’ 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2014년 오늘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그에게 벌어졌던 걸까요.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중인 대통령께서 사업가 김용태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셨으면 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꿈도 재산도. 우리 사회의 상식에 대한 기대도. 어차피 더 망가질 것도 없다. 해볼 만큼 해봤다. 청와대,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언론 어디든 다 문을 두드려봤다.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는 이 방법뿐이다.’

2012년 7월3일 아침 6시30분. 천안 일대에서 생수 업체를 이끌어오던 김용태(53) 사장의 머릿속에 더 이상의 희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억울함을 세상에 호소할 방법은 도심을 마비시키는 일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앞 10차선 도로 한복판에 25t 트럭(길이 15m)을 몰고왔다. 트럭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세웠다. 8차선 도로 중 4차선이 가로막혔다. 가던 길을 가로막힌 차들이 경고음을 울려댔다. 김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차 열쇠를 뽑아 들었다.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천안에서 점유율 50%를 넘겼다
하이트진로음료 관계자가 왔다
마메든샘물 대신 자신들 물을
팔아달라며 총 세번을 찾아왔다
거절했더니 대리점을 빼앗겼다

하이트진로음료가 2000원대 생수
622원에 대리점 넘긴 사실 확인
명백한 부당염매 행위였으므로
공정위에 제소하면 이길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대기업에 맞서 싸운 지 8년째, 50억원 날려

트럭 옆면에는 “하이트진로그룹은 각성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하이트진로그룹의 부당염매 행위를 묵인하지 말라”고 쓰인 펼침막이 내걸렸다. 출근길 도심을 마비시켰다는 두려움에 김씨의 손발이 떨렸다. 김씨에게는 생애 첫 범법행위였다.

공정위 건물 앞으로 방송사 기자들이 몰려왔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제 남은 건 자수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자들과 만난 김씨는 바로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았다. 이날 방송사 저녁 뉴스에는 ‘아침에 한 남성이 트럭 시위를 벌여 반포동 출근길 교통혼잡이 극심했다’는 짤막한 소식만 전해졌다.

수사를 맡은 경찰이 김씨에게 물었다. “왜 그런 일을 저지른 건가요.” 김씨는 이날 저녁 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날카롭던 수사관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고 김씨는 전했다. “나중에는 경찰이 그러더라고요. ‘법이 그렇다보니 당신을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요. 하지만 ‘당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한다’고, ‘나중에 기업 비리 있으면 더 제보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김씨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됐다. 그해 8월22일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일반교통방해)’을 선고했다. 김씨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트럭시위 1년 뒤인 지난해 7월 하이트진로음료 쪽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김씨가 운영하던 마메든샘물업체의 대리점에 하이트진로음료가 부당하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해 사업을 방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씨의 ‘트럭 시위’가 이긴 걸까. 그러나 그는 여전히 초췌한 모습으로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 김씨가 겪어온 일들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외치던 ‘경제민주화’, ‘비정상의 정상화’가 한낱 구호에 그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김씨는 대기업의 발굽에 무자비하게 짓밟혀 허리가 끊긴 개미 같은 삶을 살았다. 국가기관은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2일 찾은 충남 천안시 구룡동 마메든샘물 본사는 8평(26.446㎡) 남짓한 컨테이너 가건물이었다. 바닥을 밟으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낡은 컨테이너 사무실 한켠에 김씨는 힘없이 앉아 있었다. 예전 본사는 번듯한 2층짜리 건물이었다.

“다시 대기업과 경쟁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 이 회사를 붙들고 있는 건 아니에요. 민사소송을 해야 하는데 뭔가 사업장 형태라도 갖고 있어야 제가 힘이 날 거 같아 컨테이너 사무실이라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하이트진로음료는 증거까지 조작해서 (공정위와)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천안 지역에서 생수 회사를 운영하는 김씨는 이제 지쳤다. 대기업에 맞서 싸운 지 8년째다. 그간 50억원 자산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김씨가 생수 업계에 뛰어든 것은 2000년께였다. 그 이전에는 유류 운송업을 했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사태를 겪으며 유류 수요가 크게 줄었다.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마침 신문에 ‘농협샘물 대리점주 모집’ 광고가 눈에 띄었다. 지리산의 생수를 뽑아 소비자에게 공급한다고 쓰여 있었다.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업으로 그렇게 생수 사업을 시작했다. 김씨는 영업 수완이 좋았다. 대리점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농협샘물 전체 대리점을 통틀어 매출규모 1위가 되었다. 부업이 본업보다 잘되기 시작하자 유류 유통업은 접고 생수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2004년 11월 김씨는 농협샘물이 아닌 새로운 생수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소비자의 마음에 드는 물’이란 뜻에서 마메든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역시 지리산 자락에서 솟아나오는 물을 담아 팔았다. 대리점 11개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과 집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16억원을 투자했다.

2006년이 되자 천안 지역 생수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다. 이대로 몇년만 더 가면 은행 빚을 모두 갚고 견실한 기업으로 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씨에게 인생의 봄날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말 하이트진로음료(당시 석수앤퓨리스) 관계자가 찾아오면서 김씨의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석수앤퓨리스에서 (지점 관리 업무를 맡은) 전아무개 차장이 저를 찾아왔어요. 제 물 대신 자기네 물을 팔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거절했어요. 대기업은 처음에는 파격적으로 대우해준다고 해도 나중에는 (계약자들을) 코 뚫린 소처럼 끌고 다니는 것을 잘 알거든요. 전 차장이 세번 정도 찾아왔는데 계속 거절했어요.”

얼마 안 가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전 차장이 마메든샘물 대리점주들을 천안 시내 식당으로 불러내어 저녁을 사준다고 했다. 석수앤퓨리스가 터무니없이 좋은 조건을 대리점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사이가 좋았던 대리점주들과 김씨의 불화가 이즈음부터 시작됐다.

2012년 7월3일 아침 서울 서초구 반포로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인근 폐회로텔레비전에 잡힌 김용태 사장의 트럭 시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12년 7월3일 아침 서울 서초구 반포로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인근 폐회로텔레비전에 잡힌 김용태 사장의 트럭 시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생수 한통당 2500원일 때 622원으로?

“대리점주들이 갑자기 석수(하이트진로음료) 얘기를 하면서 거기 가격에 맞춰달라고 하는 겁니다. 석수는 초기 1년간 (18.9ℓ) 생수통 하나당 860원, 이후 4년간 1720원을 제시했단 거예요.(당시 마메든샘물 18.9ℓ 생수통의 대리점 납품가는 2300원) 제가 거기에 맞추다가는 1년에 4억씩 적자가 나겠더군요. 석수는 대기업이니까 1년에 몇억 적자 보더라도 시장 탈환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대리점에 물건을 대줄 수 있지만 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대리점주들은 석수가 제시한 가격의 근사치라도 맞춰달라고 반발했어요.”

김씨가 하이트진로음료의 제안을 거절하자 하이트진로음료가 대리점주들을 회유해 자신과 이간질시키는 것 같다고 김씨는 느꼈다. 괴로웠다. 대기업에 맞선 뒤 결과는 뻔해 보였다.

파국은 2008년 7월 벌어졌다. 11개 대리점의 미수금(물건 외상값)이 2007년 10월 5600만원에 불과했는데 1억9000만원으로 늘었다. 김씨는 대리점주들이 일부러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다. 7월4일 김씨는 미수금이 더 늘어나는 대리점에는 생수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7월15일 대리점들은 ‘마메든샘물과의 계약을 파기한다’고 김씨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7월16일 대리점들은 하이트진로음료와 계약을 맺었다. 마메든샘물을 유통하던 11개 대리점 중 9개가 사라졌다. 김씨는 한번에 약 90%의 시장을 잃었다.

“석수 쪽과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계약 해지 하루 만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었겠어요.” 표면상으로는 대리점주들이 김씨와 납품 가격 갈등을 벌이다 이탈한 것이지만 하이트진로음료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결과라는 게 김씨의 판단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해보려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대리점들이 어떤 조건으로 하이트진로음료 쪽으로 옮겨간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이탈한 대리점주들을 상대로 미수금 반환 민사소송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하이트진로음료와 (마메든샘물에서 옮겨간) 대리점들이 어떤 조건을 맺었는지 알게 되었다.

김씨는 하이트진로음료가 18.9ℓ 생수 한통을 622원에 공급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2013년 공정위 조사 결과로는 1년간 673.6~912.3원에 공급) 당시 하이트진로음료는 타 지역 대리점에 18.9ℓ 생수 한통을 2500원에 공급하고 있었다. 순수 제조 원가는 1091원(김용태씨 추산. 제조가격 550원, 수질개선부담금 141.75원, 운반비 400원)으로 추산됐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예요. 1년에 1억씩 대리점들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어요. 이러니 대리점들이 하이트진로음료로 다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불공정행위가 명백했기 때문에 공정위에 제소했어요.”

김씨는 2010년 4월26일 공정위에 하이트진로음료를 부당염매 행위(제조원가나 매입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파는 것)로 제소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현장조사를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기다렸다. 제소 5개월 뒤인 2010년 9월17일 한통의 결정문이 김씨에게 도착했다.

‘피조사인(하이트진로음료)의 공급가격이 제조원가를 하회(밑돎)하였다고 볼 수 없고, 시장 내 유사관행 또한 인정되어 피조사인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으로 금지하는 부당염매 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 공정위 결정문이었다.

“공정위로 바로 쫓아갔어요. 622원이 어떻게 제조원가 이상이라고 본다는 것인지 따졌어요. 공정위 담당자는 (하이트진로음료가) 이익을 보며 판매한 가격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622원이) 원가 이하 가격임을 증명하면 당신들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원가 이하로 증명되면 불공정행위가 맞다’고 하더군요.”

2010년 12월6일 김씨는 하이트진로음료와 계약을 맺고 생수를 주문생산하는 ㅇ업체 관계자를 찾아갔다.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하이트진로음료가 2008년 당시 ㅇ업체로부터 18.9ℓ 생수 한통당 550원에 사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이 대화를 녹취했다. 생수 한통당 550원이 최초 생산 단가라면 운반비와 여러 세금 등이 더해졌을 때 대리점 납품가가 622원에 맞춰질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고 김씨는 생각했다.

다음날인 12월7일 김씨는 공정위에 하이트진로음료를 부당염매 행위로 다시 제소했다. 공정위는 다시 묵묵부답이었다. 김씨는 2011년 7월29일 공정위 서울사무소 경쟁과의 팀장을 찾아갔다.

“팀장이 그제야 인정을 하더라고요. ‘18.9ℓ 생수 한통당 단가가 2000원쯤이라고 파악했다. 우리(공정위)가 실수한 것 같다’고 말했어요. 저더러 좀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과징금도 안 가하고, 손해배상도 못 받아

김씨는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면담 이후 몇개월이 지나도 공정위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김씨는 다시 공정위를 찾았다.

“제 사건 담당하는 직원은 황당한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 문제는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부당염매 행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어도 공정위에서는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어요.”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었던 공정위가 이제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공정위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덮으려 하는 것 같았다. 공정위는 2011년 12월16일 다시 ‘하이트진로음료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결정했다.

김씨는 2012년 2월 공정위에 하이트진로음료를 다시 제소했다. 세번째 도전이었다. 2012년 6월20일 담당 사무관을 만났다. “하이트진로음료가 (마메든샘물로부터 이탈한) 대리점과 맺은 계약 가격을 판단할 때 1년치가 아니라 5년치를 보자고 하더라고요. 하이트진로음료는 1년차에 대리점들에 18.9ℓ 생수통을 622원에 주다가 나머지 4년 동안에는 가격을 좀 높였어요. 그러면 5년 평균 가격이 1500원대가 되고 부당염매 행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요. 공정위가 또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들 자꾸 이렇게 하면 제가 공정위 앞에서 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김씨가 공정위에만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청와대 누리집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고 지역의 국회의원과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도 찾아갔다. 어느 곳에서도 확실히 도와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김씨의 억울함을 해결해줄 곳이 없어 보였다.

2012년 7월3일 그는 25t 트럭으로 공정위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교통이 마비됐다. 이날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졌던 교통마비 소식의 배경에는 이런 김씨의 사연이 있었다. 그즈음 김씨가 은행에 담보를 잡혔던 25억원짜리 집과 땅 등이 경매로 넘어갔다. 김씨는 빈털터리가 되어갔다. 재기할 기회는 점점 희박해졌다. 공정위는 그 후로도 아무런 입장 변화가 없었다.

2013년 봄 남양유업이 대리점주들에게 물량 밀어내기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회적으로 공분이 일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뭐하는 거냐는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2013년 6월 공정위가 김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심의를 열 테니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심의 자리에는 하이트진로음료 관계자들도 와 있었다. 심의위원들의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위원들은 하이트진로음료 쪽을 강하게 비판했다.

2013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김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결정문에서 ‘하이트진로음료가 경쟁사업자(마메든샘물)와 거래중인 대리점에 대해 법률비용 지원, 제품 공급단가 할인, 제품의 무상제공, 무이자 현금 대여 등 경제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대리점들로 하여금 경쟁사업자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자신과 거래하도록 하는 것과 같이 부당하게 경쟁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다시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밝혔다.

또 ‘하이트진로음료가 2008년 8월1일부터 2009년 7월31일까지 대리점에 18.9ℓ 생수 한통당 673.6~912.3원에 공급했다. 원래 약정 공급단가인 1720원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었다. 일반 대리점에는 (같은 상품에 대해) 2500원에 공급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부당염매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이트진로음료가 경쟁사업자 사업방해 행위를 했다고 인정했다. 김씨는 공정위 제소 3년4개월 만에 반쪽의 승리를 거뒀다. 공정위는 하이트진로음료에 어떤 과징금도 매기지 않았고 김씨는 손해배상도 받지 못했다. 공정위가 이미 경쟁사업자를 부당한 방법으로 다 죽여놓은 하이트진로음료에 ‘다시는 이러지 말라’는 경고문 한장 발급한 것에 불과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음료가 마메든샘물 대리점을 강제로 영입한 것도 아니고, 대리점들주들이 스스로 마메든샘물로부터 이탈한 점이 있는 등 애매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1·2차 심의 때 기각됐다가 3차 때 받아들여진 것 같다. 공정위가 처음부터 불성실하게 사건을 심의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몇차례 제소에도 공정위 묵묵부답
더 이상 희망이 없단 생각으로
공정위 앞 도로서 25t 트럭시위
남양 사태 뒤 여론 압박 생기자
자신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다

공정위 처분이 억울하다면서
하이트진로음료는 행정소송중
그러나 억울함 호소 차원 넘어
재판정에서 위증을 하거나
증거자료 조작 혐의가 짙다

하이트진로음료는 대리점주들을 매수했는가

게다가 하이트진로음료는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벌였다. 대리점주들이 마메든샘물과 갈등이 있어 계약을 해지하고 넘어온 것인데 마치 자신들이 빼앗아온 것처럼 판단돼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공정거래법상 어떤 수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시장 경쟁을 규제할 것인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이 어렵다. 오는 11일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의 선고가 예정돼 있다.

그런데 하이트진로음료 쪽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재판정에서 위증을 하거나 증거자료를 위조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하이트진로음료가 재판부에 제출한 여러 증거들이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이트진로음료 쪽 증인 이아무개·손아무개(마메든샘물에서 하이트진로음료로 건너간 대리점주)씨는 1월24일 법정에 출석해 “(2008년 7월) 대리점주들이 하이트진로음료로 옮겨가기 전에 다른 업체의 생수 공급가도 조사했다. 시원샘물 등 일부 업체는 (18.9ℓ 생수통에 대해) 1000원 미만 또는 1000원 초반대 공급단가를 제시했다. 농협샘물도 알아봤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음료가 대리점주들을 매수해 마메든샘물에서 옮겨간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증언이다. 그러나 농협샘물은 2007년 11월30일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원샘물은 2005년 11월10일 폐업했다. 2008년 당시 대리점주들이 농협샘물과 시원샘물과의 계약을 알아보려 해도 회사 자체가 없어져 이는 불가능하다. 최아무개씨가 2009년 1월 시원샘물을 다시 세워 생수를 생산한 적은 있으나 역시 시기가 맞지 않는다.

하이트진로음료는 재판부에 지난달 말 제출한 의견서에 ‘(2006~2009년) ㅅ음료에서 시원샘물을 위탁생산했다’고 밝혔으나 ㅅ음료 관계자는 <한겨레>에 “2010년 3월~2011년 1월까지 생산했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음료는 ‘시원샘물이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며 재판부에 2014년 2월11일 생산된 시원샘물 생수통 사진을 제출했다. 생수통 겉면에 적혀 있는 제조 공장 주소를 <한겨레>가 2일 찾았지만 이 공장은 수년 전 폐업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제조 공장 전화번호는 실제로는 택배회사 번호였다. 대리점주들이 하이트진로음료로 옮겨가기 전에 알아봤다는 농협샘물과 시원샘물은 어디서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이트진로음료는 ‘전아무개 차장은 2007년에 대구에서 근무하고 있어 천안의 대리점주들을 만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2007년 당시 천안에서 하이트진로음료 대리점을 운영한 한 대리점주는 <한겨레>와 만나 “전 차장은 당시 천안 지역 대리점을 자주 방문했다. 나도 여러번 만났다. 그는 천안 지역에서 석수앤퓨리스 물을 팔 수 있는 다른 대리점주들을 소개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마메든샘물을 타깃으로 영업전략을 펴고 있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 차장이 오래전부터 천안 지역 대리점주들을 접촉해온 것은 사실로 확인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천안 지역 생수 시장 사정에 밝은 한 대리점주는 <한겨레>와 만나 “하이트진로음료가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들키건 말건 일단 거짓말부터 하고 보는 것 같다. 마메든샘물에서 하이트진로음료로 옮겨간 대리점주들도 위증을 하고 있다. 마메든샘물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한 뒤 하이트진로음료와 접촉을 한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하이트진로음료 쪽과 접촉을 해온 것은 업계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음료는 “계약 초기 각종 지원으로 대리점들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초기 1년간 대리점 공급가로 타사와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 증거를 위조하지 않았다. 시중에 판매중인 시원샘물을 사와서 사진을 찍어 재판부에 제출했고, 등기사항전부증명서상에도 농협샘물은 현재 존재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음료에 시원샘물을 판매했다고 전해진 생수 유통업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얼마 전 하이트진로음료 관계자가 찾아와 시원샘물 상표가 찍힌 빈 물통을 가져간 적은 있으나 내가 판매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박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폐업이 되었어도 법인의 빈껍데기는 남아 등기상에 농협샘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이를 두고 현재도 영업중이라고 하면 안 된다. 폐업은 등기사항전부증명서가 아니라 폐업사실증명원으로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해주길”

김용태씨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생수 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고 문제를 시정해주기를 그는 바란다. “박 대통령 공약이 경제민주화였잖아요. 이번 사건을 눈여겨봤으면 해요.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영업하고, 정부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만드는 게 옳지요. 어차피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 대기업의 횡포가 만연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계속 싸우는 겁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7시께 김씨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그가 컨테이너 사무실 문을 잠그고 퇴근을 준비했다. 컨테이너 앞 너른 마당에는 마메든샘물이라고 적혀 있는 빈 생수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빈 생수통들만이 퇴근하는 김씨를 쓸쓸하게 지켜봤다.

“마메든샘물이 만약에 대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김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먹는샘물 산업분석 보고서(2012)’를 보면 2011년 기준 국내 생수 시장은 농심, 하이트진로음료 등 6개 대기업이 86%의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천안 지역 한 생수 업체의 이사는 “이제 중소 생수 업체들은 독자브랜드로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대기업의 주문생산으로 다들 겨우 먹고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가 대기업들만의 천국이다”라고 말했다.

천안/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