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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화장실에 이름·사진까지…찜찜한 ‘청소 실명제’

등록 2014-04-09 20:20수정 2014-04-10 18:17

‘화장실 청소 실명제‘가 행해지는 모습.
‘화장실 청소 실명제‘가 행해지는 모습.
기차역 등 공공시설 수년째 시행
청소노동자 “아는 이 볼까 불안
위에서 시키면 해야지 어쩌나”

주요 정책 결정엔 실명제 안 하면서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적용하는 꼴
인권단체 “과잉 행정…인권 침해 소지”
“화장실 앞에 얼굴이 걸리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9일 오후 서울역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는 화장실 입구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화장실 입구 쪽 벽에는 청소 담당자의 사진, 이름, 사무실 전화번호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 위에는 ‘항상 깨끗한 화장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얹혀 있다.(사진) 이름 밝히기를 꺼린 다른 청소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사람도 많은데 아는 사람이 볼까봐 좀 싫기도 해요. 하지만 위에서 시키면 해야지 어쩌겠어요?” 한국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서울역사 남녀 화장실 10곳 가운데 관리사무실 쪽을 제외한 8곳에 이런 사진이 붙어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2007년부터 ‘고객 중심 서비스’를 한다며 전국의 모든 기차역에 시설관리 실명제를 도입했다. 서울역 이용객은 하루 평균 7만5000여명이다. 서울역 화장실 앞에 사진이 걸린 청소노동자는 자기 뜻과 상관없이 많은 이에게 개인정보를 내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청결지킴이’라는 문구 아래 청소노동자의 사진과 이름이 나란히 걸려 있다. 한 청소노동자는 “급하게 필요한 일이 있거나 할 때를 대비해 붙여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공단 쪽에서 물어본 건 아니고, 관리소장이 사진을 붙이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에서 정작 필요한 다른 실명제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최근 안전행정부가 중앙부처와 광역시·도 국장급 이상이 처리한 결재 문서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지난달 28일 뚜껑을 열어보니 47개 중앙행정기관 국장급 이상 결재 서류 가운데 원문 공개 서비스가 가능한 서류는 5%도 되지 않았다. 청와대는 아예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요 정책 책임자들의 실명은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만만한’ 사람들만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도 ‘화장실 관리자 실명제가 꼭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백세라(31)씨는 “화장실에 사진을 걸어놓은 것은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화번호만 있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아무개(28)씨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한 사람의 인격을 침해한다면 다른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철도공사와 달리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2월17일부터 김포공항 등 전국 14개 공항 화장실에 붙은 청소노동자의 얼굴 사진을 내렸다. 직원들 사기가 떨어진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힌 팻말로 대체했다. 청소노동자들의 반응은 좋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강아무개(57)씨는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사진을 볼까봐 불안했는데, 이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중요한 정책은 누가 결정했는지 밝히지 않으면서 청소노동자들의 얼굴과 이름까지 밝히는 것은 인권침해이자 쓸데없는 행정”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박수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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