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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담배는 ‘무죄’, 흡연은 ‘유죄’…사실상 흡연자 ‘책임’

등록 2014-04-10 20:26수정 2014-04-1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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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담배 소송’ 원고 패소]
대법원 담배 제조사 손들어준 논리는

흡연-암 일반적 상관성 인정하고도
개별적 인과관계는 부인
니코틴 안뺀 담배 설계책임 부정
‘담배는 무죄.’

10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장장 15년에 걸친 국내 첫 ‘담배 소송’은 국가와 케이티앤지(KT&G)의 승리로 돌아갔다. 흡연인구가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에서 이번 소송 결과는 초미의 관심을 끌었지만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회사의 명운이 걸린 분쟁에서 이긴 케이티앤지는 “재판부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판단을 존중”한다며 반색한 반면, 원고 쪽은 “담배회사에 면죄부를 줬다”며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내놨다.

대법원은 담배는 해롭고, 폐암 발병과의 연관성도 인정된다는 전제를 깔았다. 하지만 흡연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고, 개인의 암 발병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흡연의 본질이 건강에 유해한 니코틴과 타르를 흡입하는 일이므로 담배회사의 제조물 설계에 위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소비자는 니코틴의 약리 효과를 의도해 흡연을 하는데, 니코틴을 제거하면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담배의 특성 자체를 제거하지 않는 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제조물의 설계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흡연자의 자유의사도 강조했다. 담배회사가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원고 쪽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재판부는 “담배는 1600년대에 (한국에) 전래된 무렵부터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점과 효능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왔다”며 “흡연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담배 말고) 가공되지 않은 식품에도 발암물질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원고쪽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왼쪽 둘째)가 ‘담배소송’ 최종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폐암으로 사망한 이기홍 씨의 유가족 이기호 씨, 배 변호사, 박용일 변호사,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 정미화 변호사, 권오용 변호사. 류우종 기자 wjryu@hni.co.kr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원고쪽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왼쪽 둘째)가 ‘담배소송’ 최종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폐암으로 사망한 이기홍 씨의 유가족 이기호 씨, 배 변호사, 박용일 변호사,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 정미화 변호사, 권오용 변호사. 류우종 기자 wjryu@hni.co.kr
여기에 개인의 암 발병과 흡연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적 판단이 보태졌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라는 표현으로 흡연과 폐암 발병이 연관돼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개별적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운 원고들이 폐암과 후두암에 걸렸지만, 가족력이나 다른 요인이 발병에 영향을 줬을 개연성도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항소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하면서도 4명의 폐암 발병과 흡연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이 4명의 발병과 흡연의 인과관계를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 발병과 흡연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한 셈이어서, 담배회사의 책임을 물으려는 쪽에서 보면 항소심보다 후퇴한 판결이 됐다. 또 재판부는 폐암과 후두암 가운데 흡연과 관련성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비소세포암, 세기관지 폐포세포암 등에 대해서는 흡연과 암 발병의 인과관계를 아예 부정했다.

15년 만에 나온 확정판결의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준비하는 거액의 담배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공단은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 지출이 연간 1조7000억원이 넘는다며 케이티앤지뿐 아니라 외국 제조사들을 상대로도 소송을 낼 계획이다. 비록 대법원이 담배와 폐암·후두암의 일반적 연관성은 인정했지만, 담배회사의 ‘제조물 책임’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이 소송의 전망도 밝지 않다.

결국 판례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담배회사에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피해자들은 ‘개별적 인과관계’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노현웅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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