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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쉽게 눈에 띈 상처들과 학대신고는 소용이 없었네

등록 2014-04-11 20:18수정 2014-04-12 14:55

‘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선고가 열린 11일 대구지법 앞에서 아동학대에 반대하는 인터넷 카페 ‘하늘소풍’ 회원들이 낮은 형량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선고가 열린 11일 대구지법 앞에서 아동학대에 반대하는 인터넷 카페 ‘하늘소풍’ 회원들이 낮은 형량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토요판] 커버스토리
칠곡 사건의 재구성
이번 칠곡 아동학대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12살 여자아이가 3살 어린 여동생을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하다 철회했다는 점 외에도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 아동보호기관, 경찰이 몇번이나 학대 사실을 확인했지만 아무도 자매를 돕지 못했다.

소리, 소원(가명) 자매가 의붓어머니 임아무개씨와 함께 살았던 1년3개월 동안 학대 의심 신고가 끊이질 않았다. 애초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 사람은 사망한 동생 소원이 아닌 언니 소리였다. 임씨와 친아버지 김씨가 동거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인 2012년 10월 언니는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눈 핏줄이 터져 충혈된 채 등교했다. 이를 이상하게 본 담임교사는 구미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기관에선 두 명의 직원을 집으로 보내 현장 조사에 나섰다. 기관 쪽 관계자는 “아이가 벽에 부딪쳐 멍이 들었고, 눈이 충혈된 것은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목을 졸랐기 때문이라고 임씨가 말했고, 아이는 그 설명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했다. 눈에 핏발이 선 수준이 아니라, 빨갛게 충혈된 것으로 보아 “스스로 목을 졸랐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그렇다고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이 기관은 의붓어머니가 아이의 자해행위를 ‘방임’했다며 아동학대로 판정했다.

팔 골절, 턱 밑의 긴 상처,
등 뒤의 손바닥 자국 멍,
화상, 머리 혹, 눈의 충혈
동생 소원이 끝내 사망하자
의붓어머니 아닌 소리가 자백

죽은 동생 소원이보다 먼저
아동학대 신고 접수된 소리
그 뒤 교사들이 계속 신고하고
아동기관과 경찰이 개입했지만
아이 마음 알아준 이는 없었다

불과 3개월 뒤인 지난해 1월 이번엔 동생 소원이의 팔이 부러졌다. 1월 말 학교에선 동생이 결석하자 학대가 의심된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알렸다. 기관이 연락해보니, 임씨는 아이의 팔이 부러져 병원에 가고 있다고 했다. 기관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골절된 팔은 몇주간 치료하지 않고 방치돼 성장판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상태였다. 뒤늦은 치료가 이뤄졌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아이의 팔이 굽어지지 않고 휜 채로 굳어진 것이다. 임씨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임씨는 잘못을 부인했다. 기관 쪽 관계자는 “아이가 왼쪽 팔이 자라지 않아 사망 당시에도 오른쪽 팔이 더 길었다”고 말했다.

팔 골절 이후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동생은 다시 여러 군데에 상처를 입었다. 동생의 담임교사는 상처를 발견해 바로 보건복지부 콜센터인 129에 신고했다. 신고는 다시 지역의 구미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연결됐다. 동생의 상태는 이번에도 심각했다. 턱 밑에는 다문 입술의 가로 길이보다 길게 상처가 생겼고, 등 뒤로는 손바닥 자국의 멍이 들었다. 멍 자국은 명백한 폭행의 흔적이었다. 친아버지 김씨는 ‘자신이 딸의 등을 때렸다’고 시인하면서도 턱 밑의 상처는 아이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고 설명했다. 구미아동보호전문기관은 1, 2월에 걸친 동생의 상흔에 대해 ‘아동학대’라고 판정했다. 다친 아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것을 의붓어머니의 방임이라고 봤고, 친아버지의 폭행과 아동들에게 집에서 내쫓는다고 협박한 것을 모두 ‘학대’로 봤다. 친아버지, 의붓어머니와 함께 거주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자매가 모두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후에도 이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뿐 아니라 경찰도 아이들을 구제하지 못했다. 경찰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의붓어머니 임씨의 남동생 임아무개씨가 지난해 2월26일 새벽 2시46분 ‘누나 집에 와보니 조카가 아버지에게 맞은 것 같다’며 112에 신고했다. 바로 경찰관 2명이 출동해보니 가족들이 모두 집 안에 있었다. 경찰이 경위를 묻자, 친아버지는 “아이들이 하도 싸워서 우산으로 겁을 주려고 휘둘렀는데 작은아이가 잘못 맞아 이마에 상처가 났다”고 둘러댔다. 경찰은 아이를 한쪽으로 불러내 상처의 경위를 물었지만,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경찰은 추가로 조사를 하거나 조처를 취하지 않고 철수했다.

지난해 5월 동생의 담임교사는 또다시 아동의 얼굴에서 멍, 입술 찢어진 것, 등의 화상, 머리의 혹, 눈의 충혈 등을 발견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교로 가서 아동과 상담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의붓어머니가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진술했으나, 다시 집에 돌아간 이후엔 “뜨거운 물을 쏟고서 넘어졌다”고 말을 바꿨다. 이 담임교사는 이날 마지막 신고를 했다. 한달 뒤 이들이 경북 구미에서 경북 칠곡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전학간 새 학교의 담임교사가 학대의 징후를 발견하는 데에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생의 새 담임교사는 지난해 6월 친아버지 김씨에게 “아이 얼굴 곳곳에 멍이 있다”고 알렸다. 얼굴이 붓고 눈 밑에 찰과상, 엉덩이에 멍, 가슴에 이빨자국, 등에 맞은 자국 등이 있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새로 이사한 칠곡의 자택을 찾았다. 이날 김씨는 자신이 훈육 과정에서 체벌을 했다고 인정했고, 이런 식의 체벌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기관은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고발조치 하겠다”고 경고했다. 경고는 소용이 없었다.

결국 동생은 지난해 8월16일에 사망했다. 사망하고도 의아한 일은 계속됐다. 임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락해 “아이가 사망했다. 장례비용을 지원해달라”고 연락했다고 한다. 기관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어떻게 아이가 사망했느냐”고 묻자, “아이가 이틀 전부터 배가 아팠는데 주말이라서 병원에 못 데려갔다”는 답변뿐이었다. 임씨의 답변만으로도, 아이가 장 파열로 죽어가도록 방치했다는 것이 아동보호전문기관 쪽의 주장이다. 임씨는 친어머니 장씨에게 아이가 배탈이 나서 배가 아팠는데,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사망했다고 알렸다. 임씨의 거짓말은 부검 결과 바로 밝혀졌다. 사인은 배탈이 아닌 외부 충격에 의한 복막염과 장기 손상이었다. 임씨가 10월 초 구속되기까지 사망한 동생의 언니와 함께 거주했고, 경찰 조사가 본격화되자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자백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임씨가 아닌 사망한 아이의 언니였다.

칠곡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특히 학대 사실이 여러 차례 밝혀졌고,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의 개입이 있었는데도 아이가 사망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난해 10월 울산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가해자의 교묘함으로 학대 사실이 교사, 이웃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반면, 칠곡 사건은 눈에 쉽게 보이는 곳에 상처가 있었고 학대 판정도 여러차례 이뤄졌다. 학대를 받은 아동이 죽고 난 이후 다른 학대 아동이 “내가 죽였다”는 진술을 강요당하기까지 자매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마을엔 지금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구미 대구/윤형중 김일우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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