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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불길 휩싸인 침대 위…장애인 송씨는 피할 수가 없었다

등록 2014-04-14 02:04수정 2014-04-14 15:41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는 3급 장애인 송국현(53)씨가 13일 오전 서울 성동구 자신의 집에서 난 불을 피하지 못하고 3도 화상을 입었다.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는 3급 장애인 송국현(53)씨가 13일 오전 서울 성동구 자신의 집에서 난 불을 피하지 못하고 3도 화상을 입었다.
온몸 화상…사흘 전 ‘활동 지원’ 신청
혼자 못 움직이는데도 ‘3급’ 판정 받아
‘긴급 복지’도 신청해봤지만 소용 없어
혼자서는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사흘 전 ‘긴급 활동지원’을 요청했던 장애인이 집에서 난 불을 피하지 못해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 2012년 10월 집 안에 번지는 불길을 보고도 피할 수 없어 죽음을 맞은 뇌병변 1급 장애인 김주영(당시 33)씨 때와 같은 사건이 재발한 것이다. 그 뒤로도 거의 개선되지 않은, 허술한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가 또다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오전 10시56분께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동 연립주택 1층에 있는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은 소방관들이 출동했을 때 송국현(53)씨는 새까맣게 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은 “혼자 불을 끄려다가 손과 발, 얼굴 등에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고 했다. 소방서는 거실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립생활 체험홈’은 장애인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을 위한 소규모 거주 공간이다.

송씨는 언어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인 중복 장애인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길을 보고도 ‘불이야’라는 짧은 말도 할 수 없었다. 송씨는 평소 상대방의 말에 ‘응’ 정도의 대답만 가능했다고 한다.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쓰지 못해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연기를 발견하고 신고한 집주인도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어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송씨는 지난해 10월, 25년 동안 살아온 장애인시설에서 나왔다. “내가 원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고 송씨를 도와온 장애인활동가들은 전했다. 송씨는 장애인시설에서 나오면서 불편한 자신의 몸을 거들어줄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국민연금공단에 장애등급 재심사를 요청했지만, 2월 말 기존과 같은 3급 판정을 받았다. 1급 장애인에게만 주어지던 활동지원 서비스는 고 김주영씨 사건 뒤 2급 장애인한테까지 확대됐지만, 송씨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3급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송씨의 ‘생활 체험홈’ 옆방에는 1급 장애인도 1명 살고 있는데, 그는 오전 10시께 활동보조인과 함께 외출한 상태였다. 송씨가 다니는 장애인교회에서 낮 12시께 예배를 위해 그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송씨는 최근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구청과 주민센터에서 긴급 복지 신청을 받는다기에 문을 두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신청 가능했던 가사지원 서비스는 한달 동안 겨우 24시간만 지원된다. 주말에는 아예 이용할 수 없었다.

송씨는 화재가 나기 사흘 전인 10일 서울 송파구 국민연금공단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긴급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자립과 자활을 꿈꿨던 송씨의 꿈은 화재로 7개월여 만에 사그라질 처지가 됐다. 화재 당일 오후에 찾은 송씨의 50㎡ 남짓 되는 작은 집은 시커멓게 타고 그을려 있었다. 송씨가 발견된 방 서랍장에는 장애인시설에서 나온 9명의 ‘탈시설 장애인’을 인터뷰한 책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마>가 놓여 있었다.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인 지원 여부는 장애등급이 아니라 실제 활동지원이 필요한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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