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력기관 균형추 기울어
회의록 유출 수사 등 지지부진
회의록 유출 수사 등 지지부진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이태 동안 정권의 양대 권력기관인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
‘첫 공세’는 검찰 몫이었다. 검찰은 2012년 대선 당시 트위터·댓글 공작을 통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했다. 원 전 원장 등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 ‘공안 라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기소를 관철시켰다. 검찰은 원 전 원장 기소 뒤에도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까지 감수해가며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추적했다.
검찰은 곧바로 반격을 당했다. 채 전 총장이 불명예스럽게 검찰을 떠난 것이다. 지난해 9월6일 <조선일보>가 ‘채 총장이 혼외 아들을 뒀다’고 보도한 게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청와대와 국정원에 ‘되치기’를 당했다는 게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여권 핵심부는 검찰이 댓글 수사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의문부호를 찍은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 이어진 수사에서도 청와대와 국정원 직원들이 대거 동원돼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로 지목된 학생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양쪽 조직은 모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법원에 낸 재정신청 때문이기는 하지만 원 전 원장 외에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등 국정원 고위층이 줄줄이 법정에 서야 했다. 일선 요원 수십명도 검찰에 불려 나왔다.
검찰에서는 윤석열 전 팀장이 지난해 10월21일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외압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조직 내 분란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법무부는 윤 전 팀장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대구고검으로 좌천시켰다. 수사에 외압을 넣은 것으로 지목된 조 전 지검장도 지난 1월 검찰을 떠났다.
두 기관 사이의 긴장은 현재진행형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증거조작과 관련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 유출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사건은 검찰이 아직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채 전 총장 혼외 아들 논란 때 뒷조사를 한 국정원 요원 수사도 마찬가지다. 두 사건 모두 검찰이 ‘칼’을 쥔 듯하지만 부담스러워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검찰은 남 원장을 서면조사하고도 수개월째 사건 처리를 미루고 있다.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에 대한 수사 역시 국정원과 검찰 조직에 대한 고려가 맞물려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의 물고 물리는 관계는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에 나타난 독특한 풍경이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는 1960~80년대까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경제·사회를 주물렀지만,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1990년 이후 그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그 공백은 검찰이 채웠다. 하지만 ‘복고풍’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국정원의 존재감이 커졌다. 정보기관으로서 존재감이란 게 각종 위법 논란 등 부정적 면모와 관련이 있어, 수사·기소를 담당하는 검찰과 국정원의 악연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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