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원장, 중국 “공문서 위조” 발표뒤
감찰지시 안내려 국정원법 위반 논란
진상조사만으로 “문서위조 안해”
“진실 덮으려 면피용 조사” 지적
유우성씨쪽 “직무유기 수사해야”
감찰지시 안내려 국정원법 위반 논란
진상조사만으로 “문서위조 안해”
“진실 덮으려 면피용 조사” 지적
유우성씨쪽 “직무유기 수사해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감찰을 지시하지 않는 등 사실상 증거조작을 은폐한 것에 대해 형사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증거조작뿐 아니라, 증거조작 은폐에 대해서도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남 원장은 2월14일 중국 정부가 “국정원·검찰이 법원에 낸 중국 공문서 3건이 모두 위조됐다”고 밝힌 뒤에도 감찰실에 감찰을 지시하지 않았다. 국가정보원법 제14조는 비위 의혹이 발생하면 “직원의 직무 수행에 대한 감찰을 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원장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비위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감찰 지시를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검찰 관계자는 15일 “국정원은 형사소송법의 제약 때문에 수사가 무척 힘들다. 국정원이 스스로 감찰했다면 쉽게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찰 지시를 하지 않은 것 자체가 직무유기이고 증거조작 은폐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감찰 지시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증거조작이 국정원 수뇌부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감찰 없이 ‘진상조사’만 하고는 ‘문서 위조는 없었다’고 결론 냈다. 국정원 내부에 밝은 사정당국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이 정식 감찰이 아니라 진상조사를 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했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거짓말탐지기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실체를 밝히기 위한 조사라기보다는 진실을 덮기 위한 면피용 조사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결론을 근거로 국정원은 의혹 제기 직후 청와대에도 허위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남 원장이 청와대에 강한 톤으로 ‘문서 조작은 없었다. 실체에 부합하는 문서’라고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권의 초기 대응에 국정원의 이런 보고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2월19일 중국 정부의 회신과 관련해 “선진국이 안 된 국가들은 자기들이 발행한 문서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국과 북한은 형제국이다. 중국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문서를 제출할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2월25일 검찰 진상조사팀에 제출한 자체 조사보고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었다. 국정원은 이 문서에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34)씨의 출입경기록 입수 경위를 상세히 썼다. 기록 입수를 위해 여러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했으며 위조는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을 적었다. 하지만 증거조작 수사를 이끈 윤갑근(50) 수사팀장은 14일 “국정원의 진상조사보고서는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진술서 성격으로 볼 수 있어 허위공문서 작성죄를 적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은 14일 사직서를 내면서도 “실무진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한 사안”이라고 토를 달았다. ‘증거조작은 몰랐다’는 뜻이다. 남재준 원장도 15일 “일부 직원들이 증거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몰랐다’는 입장을 보였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두 달 동안 거짓말을 해놓고 이제 와서 ‘몰랐다’고 하고 있는 셈이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사정당국 관계자는 “용의선상에 오른 국정원의 한 간부는 증거조작을 은폐하기 위해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결국 자신은 기소되지 않았다. 증거조작 당시에는 몰랐어도, 최소한 의혹이 불거진 뒤에 사실과 달리 거짓말을 늘어놓은 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 변호인단은 “남 원장이 감찰 지시를 하지 않은 점에 비춰 보면, 증거조작을 보고받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증거조작 의혹을 덮으려고 한 것이다. 감찰 지시를 하지 않은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하므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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