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국정원장의 오만과 기만
‘대선개입 셀프개혁’ 밝힐 당시
간첩증거 조작 이뤄졌는데
이번에도 셀프개혁 들고 나와
“엄중한 안보 상황” 책임은커녕
자리보전 빌미로 내세우기도
‘대선개입 셀프개혁’ 밝힐 당시
간첩증거 조작 이뤄졌는데
이번에도 셀프개혁 들고 나와
“엄중한 안보 상황” 책임은커녕
자리보전 빌미로 내세우기도
깎을 뼈와 갈아치울 탯줄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15일 또다시 국정원의 ‘환골탈태’를 다짐했다.
남 원장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한 엄격한 자기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국정원이 환골탈태해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번에도 ‘처방’은 ‘셀프 개혁’인 셈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남 원장은 대선 개입 사건으로 국정원 개혁 요구가 거세던 지난해 ‘셀프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12일에도 국회 국정원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송구스럽다. 국민의 신뢰가 부족한 점을 반성한다”며 자체 개혁안을 보고했다.
국정원은 자체 개혁안에서 대선 개입으로 이어진 대북 심리전 활동에 대해 ‘방어심리전 시행규정’을 만들어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국회·정당·언론사에 대한 정보관(IO) 상시출입 제도를 폐지해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부당명령 심사 청구센터’, ‘적법성 심사위원회’ 등 내부 기구를 설치해 활동의 불법성을 없애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개혁의 핵심인 국회의 국정원 통제 강화와 대공수사권 이관 등의 논의는 국정원의 강력한 반대와 여야 공방 속에 한 발자국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여야는 올해 1월1일 국정원 정보관들의 기관 출입 내부 규정, 정치 활동 관여 지시에 대한 거부권, 사이버상 정치 관여 처벌 규정 정도를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후속 작업을 해야 할 국정원개혁특위는 사실상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2월 말 활동을 종료했다. 개혁 방안을 논의해야 할 국회 정보위원회는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과 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의 지방선거 출마 준비 등의 이유로 열리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 국회 안팎에서는 “국정원 개혁은 좌절과 실패의 역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남 원장이 반성과 개혁, 합법 활동을 강조하는 와중에도 국정원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간첩사건 증거조작이 이뤄졌다. 남 원장은 ‘적법한 절차에 의한 자기통제 시스템’을 강조하며 다시 한번 믿어달라는 투이지만, 여론 무마용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터지고도 국정원 내부에서는 ‘유우성은 간첩이 맞다’, ‘잘해보려고 한 일인데 검찰과 언론이 너무들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며 “기본적으로 적법 절차에 대한 개념이 없는데 자기통제가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자기최면에 빠져, 위법한 활동에 대해서도 자기 기만적 집단 심리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법 시스템을 유린하고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 대공수사 능력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는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시민사회의 상식이다.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대공수사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나오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남 원장이 ‘엄중한 안보 상황’을 거론한 것은 자리보전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다시 한번 ‘셀프 개혁’의 기회를 달라고 강변한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출몰 등 안보 누수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정원장이 자리보전에 연연해하는 모습은 적반하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장난감 같은 무인기 사건에 우리 안보 체계가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기 침투가 군 계통으로 보고되지 않은 사례에서 보듯, 남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청와대와 핫라인을 구축한 것이 오히려 안보 체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경희대 교수)은 증거조작 사건과 남 원장의 태도에 대해 “국정원이 안보 위협을 근거로 헌정 체제의 근간인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을 유린하는 것은 시민들의 저항으로 막아내야 할 심각한 문제다. 검찰마저 꼬리를 내렸다는 것은 대통령과 유착한 국정원이 신성 영역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이승준 기자 goloke@hani.co.kr
대통령과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15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가 인근 교량 난간 너머로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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