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준비-운항 단계 권한 막대
안묶은 화물·과적 등 못걸러
운항관리자 축소돼 검사 부실
안묶은 화물·과적 등 못걸러
운항관리자 축소돼 검사 부실
검찰이 해운업계 전반의 구조적 비리를 손보기로 함에 따라, 부실과 사고를 낳고 있는 해운업계의 구조가 주목받고 있다. 선박의 취항부터 관리, 운항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규정은 촘촘하지만, 세월호 사고로 드러난 실태를 보면 이들에게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맡기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운업계에는 어떤 책임이 있고, 검찰은 무엇을 노리는지 짚어본다.
■ 입·출항 단계, 운항관리자 광범한 책임 선박에 대한 기본적 관리·감독 책임은 선장에게 있다. 선장은 출항 전 구명·소화설비가 제대로 갖춰졌는지를 포함해 15개 분야를 점검한다. 이를 토대로 출항 전 점검보고서를 작성해 선사들의 단체인 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자에게 제출한다. 운항관리자는 이 보고서를 확인하고 여객 정원을 초과하지 않는지, 과적을 하지 않았는지 등을 점검한다. 운항관리자 제도는 서해훼리호 사고 뒤 여객선 출항 전 정원 초과, 과적, 화물 고정의 적정성을 감독하기 위해 도입됐다.
운항관리자는 선장의 출항보고를 접수하고 기상이 좋지 않으면 해양경찰에게 출항을 통제해달라고 건의할 수 있다. 출항 여부는 해경이 결정한다. 사고 전날 밤 안개로 인천항의 실제 가시거리는 여객선 출항이 불가능한 1㎞ 이내였다. 하지만 해경은 인천해양항만청이 시정주의보를 해제한 것을 근거로 세월호만 유일하게 출항하게 했다.
세월호 사고는 화물 적재라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이 업무는 항운노조와 하역회사가 맡는다. 세월호 갑판에는 컨테이너의 네곳 모서리를 고정하는 ‘콘’만 있고 철사로 강하게 조이는 ‘턴버클’이 없다. 이 때문에 컨테이너 위를 쇠줄이 아닌 밧줄로 두르고 바닥의 고리에 묶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화물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적도 걸러내지 못했다. 세월호는 침몰 당시 승용차 124대, 화물차 56대 등 차량 180대를 실었다. 적재 한도를 30대 넘겼다. 운항관리실에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에서는 컨테이너를 적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침몰 뒤 바다에는 컨테이너 수십개가 떴다. 총 화물 탑재 중량도 한도의 2~3배나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인천항 운항관리실은 세월호의 최대 화물 적재량도 파악하지 못하고 출항 점검을 해온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배가 출항하면 선장은 승객들에게 1시간 안에 구명조끼 착용법 등 비상시 행동요령을 알려야 한다. 운항 중 주기적으로 비상탈출 경로, 화물 적재 상태, 기관 작동 상태 등을 점검하고 현 위치와 운항 상태를 운항관리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상층부 ‘전관’들로 채운 해운조합 제구실 못해 운항관리자의 부실한 업무 처리는 해운조합의 책임으로 이어진다. 인천지검은 23일 한국해운조합 본사와 인천지부 소속 운항관리실을 압수수색했다.
전국의 운항관리자는 한때 91명이었으나 지금은 74명이다. 여객선 이용자는 늘고 운항관리자는 줄면서 1인당 업무는 크게 늘었다. 인천항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운항관리자가 7명이다. 1명당 승객 24만4416명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형식적 서류 검사로 운항을 허가한다는 얘기다.
근본적으로 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이 선사들을 규제하는 운항관리자를 고용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201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낸 ‘연안여객운송산업 장기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는 “안전을 책임지는 운항관리자가 사업자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사업자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운항관리자 신규 채용을 불허하면서 인력을 늘리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해운조합 회장은 명진해운 박송식 대표이지만, 이사장은 지난해 3월 국토해양부 2차관에서 물러난 주성호씨다. 한홍교 경영본부장도 국토부 부이사관 출신이고, 김상철 안전본부장은 서해해양경찰청장을 지낸 인물이다. 1962년 출범한 해운조합은 역대 이사장 12명 가운데 10명이 고위 관료 출신이다.
■ 안전검사 등 독점하는 한국선급, 임원 횡령 의혹도 한국선급도 검찰의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한국선급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선박 등급을 매기고 품질검사를 독점하는 기관으로 연 매출이 1200억원에 이른다. 해양수산부 위탁으로 선박 구조 변경 안전검사, 선박 도면 심의, 선박 기자재의 재승인 및 검사, 항만시설 보안 심사 등을 맡는다. 올해 2월 세월호 객실 증축 검사는 한국선급 목포지부가 담당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정기 중간검사와 증축 당시 복원성 검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선급 부산 본사와 목포지부를 압수수색했다. 부산지검도 24일 전·현직 임원의 금품 비리 혐의를 잡고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한국선급도 역대 회장(이사장 포함) 12명 가운데 8명이 해수부 등의 전직 관료 출신이다. 조직 수장을 해수부 출신이 독식하는데 해수부가 한국선급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을 관리·감독하는 해수부와 해경은 현재로서는 한발 비켜나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해경과 해수부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구조적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보이면 수사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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