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만난 이경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오른팔이 없는 몸을 현실에 적응시키며 살아왔다. 그는 장애인의 감수성을 고려한 일상의 배려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몸 (23)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경환의 오른팔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경환의 오른팔
▶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은 신발끈을 어떻게 묶을까요? 넥타이는 어떻게 매고요? 박수는 어떻게 칠까요? 첫 장애인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경환씨에게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그는 팔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거리로 삼을 만큼 밝고 쾌활했습니다. 그에게 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어떤지, 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들었습니다. 그는 ‘걱정하지 말고 막 던지라’고 충고했습니다.
아는 것은 느끼는 것이다. ‘다리가 없어 불편한 사람이 있다’는 앎보다 ‘다리가 없음’을 느끼는 것이 더 잘 기억된다. 계몽은 공감보다 힘이 약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경환(28) 서울대 총학생회장의 당선은 그 어떤 장애인 공약보다 힘이 세다. 물리천문학부 05학번 이경환씨와 국문학과 10학번 김예나 후보의 ‘디테일’ 선본이 지난 9일 서민혁·이용익 후보의 ‘똑똑똑’ 선본을 누르고 당선됐다. 서울대 56회 총학생회 선거는 지난해 11월 진행됐지만 투표율 미달로 무산돼 재선거를 치렀다. 투표 기간을 연장해 8914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최종 실투표율 51.95%에 득표율 52.8%로 당선됐다. 이씨는 3급 장애인으로 서울대 사상 첫 장애인 총학생회장이다. 이 회장은 오른 팔꿈치 아랫부분이 없다. 세살 때 집 근처 정육점에 갔다. 고기를 썰고 다지는 장비가 부엌에 있지 않고 노출된 곳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사고로 그는 팔 없이 자랐다. 기자는 두 손으로 키보드를 치며 기사를 쓰고 있다. 이씨는 자신의 몸을 어떻게 적응시켜 나갔을까? <한겨레>가 지난 16일 이씨를 만나 ‘몸 적응기’를 들어봤다. 몸의 일부가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먼저 묻지 않고, 날것의 삶의 느낌을 먼저 물었다. 공감하지 않는 계몽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3살때 정육점에서 오른팔 잃어
팔없는 삶에 몸이 스스로 적응
신발끈, 봉투 묶기 안되지만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어
박수 칠 때는 팔꿈치를 두드려
늘상 양팔 다 있는 사람 보니까
스스로 거울 볼 때가 아니면
‘내가 팔이 없지’ 생각 못해
거울 볼 때마다 정말 깜짝 놀라
셔틀버스 탈 때 스마트폰 볼 수 없어 심심 -선거운동할 때 장애인 권익 등 장애인 공약은 있었나? “장애학생 공약은 세세하게 나열하지 않았다. 사실 만들려면 많이 만들 수 있다. 공약보다 다른 게 필요하다고 봤다. 장애학생들이 학교랑 공식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 총장님과 장애학생들의 저녁식사 간담회는 있는데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 자리이고 ‘이런저런 게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있지만 공식적이지 않다. 총학생회는 교육환경 전반을 논의하는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의’에 장애학생을 참가시키기로 했다. 수업과 학점, 재수강은 몇회로 할지, 셔틀버스 운행시간, 식당 운영 등 학사 제도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논의하는 창구다. 장애학생이 여기에 참여하는 게 보장된다면 장애학생이 가진 불편이나 환경 개선은 다 논의될 수 있어 구조적 개선책이 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걸지 않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내가 장애인이라는 게 화제가 되진 않았다. 장애인 총학생회장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니냐는 담론은 없었다. 많은 학우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내가 장애가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이씨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에는 30~40여명의 장애인 학생들이 있다. 1990년대에 장애인인권운동 동아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해체되고 없다. 학기 중에 몇차례 모여 친분도 쌓고 정보도 나누지만, 문제의식과 활동이 조직화된 수준은 아니다. 이씨는 정책의 나열보다 구조를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학생회장 이경환’을 만든 것은 장애인으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이 아니다. 진보정당 운동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2005년 입학 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부조리에 눈떴다. 연대사업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진보정당 운동의 쇠퇴를 겪으며 함께 고민에 빠졌다. 진보정당의 분열도 지켜봤다. 2010년 총학생회장 출마를 끝으로 그때까지 해온 정당 중심 학생운동에서 거리를 뒀다. 2012년 통합진보당 당적도 버렸다. 지난 활동을 돌이켜봤다. 여전히 진보정당 운동의 대의는 지지하지만,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 ‘생활정치’가 화두가 됐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모아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졸업생·재학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집단소송 참여자가 올해 초 200명을 훌쩍 넘었다. 소가(소송물가액)도 35억원이 넘는다. 이렇듯 지금 당장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 총학생회에 다시 출마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생들의 주택 문제를 상담받고 문제 해결을 도울 ‘주거복지국’을 신설하는 등 총학생회 실무진 구성을 거의 마친 상태다. -한 손이 없어 피부에 와닿는 불편함이 뭐가 있을까? 혹은 학교나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저절로’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 있을까? “나 정도(팔 한쪽이 없는)는 경증 장애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은 없다. 나보다 중증 장애인, 특히 이동장애가 있는 하반신 장애인이 더 불편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글쎄… 혼자 자취하는데 쓰레기봉투를 묶는 거라든가 신발끈을 묶는 게 어렵다는 정도의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학업에서는 오른팔이 없어서 불편한 게 없다. 다만, 셔틀버스 이용할 때, 이건 불편함이라고 하기엔 애매한데, 남들은 한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볼 수 있잖나.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손잡이를 잡으면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잡을 수 없어 아주 심심하다.(웃음) 뭐 이런 정도?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보면 된다. 세살 때 (팔을) 잃었으니 굉장히 어릴 때였기 때문에 후천적 사고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몸이 이것에 익숙해진 셈이다. 원래 왼손잡이인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연적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있었던 팔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서바이벌 슈팅 게임, 가령 ‘서든어택’ 같은 건 그냥 안 하면 된다.(웃음) 핸드폰도 액정이 지나치게 크지만 않으면 이용하는 데 지장은 없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에 민주노동당은 당직 선거 나서는 간부 후보들의 경우 성평등 및 장애인권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 교육은 많이 받아봤고, 좋았다. 장애인권에 대한 나만의 시각은 있지만 직접 장애인 활동은 한 적은 없다.” 한 손으로 신발끈 매기, 그건 정말 안 되더라 이씨는 쾌활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매우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어휘와 문장으로 잘 표현하고 전달한다. 팔과 관련된 질문을 던질 때 몹시 조심스러웠다. 외려 당사자인 이씨는 자신의 한쪽 팔이 없는 것을 객관화하고 희화화하며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기자는 인터뷰 중간 이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구두끈을 풀었다. 한 손으로 구두끈을 묶으려고 해봤다. 잘 안됐다. -미안한데 다시 한번 물어봐도 되나, 한 손으로 구두끈 묶는 게 되나? “유튜브에 ‘한 손으로 신발끈 매는 법’이라는 동영상이 있다. 나처럼 한쪽 팔이 없는 외국 청년이 만든 동영상이다. 나도 봤는데 아무리 해도 못 배우겠더라. 남에게 매달라고 한다. 소매 단추도 부탁한다. 넥타이의 경우 보통은 자동 부착 넥타이를 주로 이용하고 예쁜 넥타이는 남에게 매달라고 한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한 손으로 신발끈 묶기’(How to tie your shoes with one hand)라는 동영상이 검색된다. 기자도 따라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남과 다른 것은 조금도 용인하지 않는 잔인한 한국 사회에서 그가 지금처럼 긍정하는 마음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무엇을 느끼고 아파했을지 궁금했다. -아까 ‘몸이 스스로 적응하고 성장해왔다’고 표현했다. 그 말을 조금 더 설명해달라. 한쪽 팔이 없어 남과 다르다는 점을 사춘기 때 심리적으로 어떻게 극복했나? “‘몸이 현재 신체 조건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예를 들면 내가 성인이었는데 사고로 팔을 잃었다고 해보자. 그럼 박수를 어떻게 칠까? 저는 이렇게(왼손으로 오른팔 팔꿈치 부분을 두드리며) 친다. 이렇게 치는 이유는, 여기(왼손)하고 여기(오른팔꿈치)가 대응되는 거다. 내 머리에서는. 근데 팔이 있었던 사람은 착각한다. 마치 신체가 남아 있는 양. 나는 어릴 적부터 박수를 쳐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친다. 팔짱도 낀다. 내 머릿속에는 리치(팔의 길이)가 여기(오른팔 팔꿈치)까지다. 나한테는 이렇게 박수를 치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선천적으로 오른팔이 짧은 거고 손가락이 없는 셈이다. 있었던 상태에서 사라진 손상과는 다를 거다. 몸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로 잘 표현 못하겠다. 아무튼 리치에 맞게 생활하는 저만의 패턴이 있을 거다.” 성인이 사고로 팔다리를 잃으면 실제로 신체가 남아 있다고 착각한다. ‘환상지’(stump hallucination) 효과다. 성인이 되어 오른팔을 잃은 사람은 무의식중에 과거처럼 박수치려다 아무 소리도 못 낸다. 생각 속의 리치와 현실의 리치가 불일치한 까닭이다. 이씨는 정확히 왼손으로 오른팔꿈치를 두드려 ‘탁, 탁’ 소리로 박수를 친다. 그는 자연스럽게 몸에 적응해온 것이다. -사춘기 땐 어땠나? “내 몸을 내가 못 보지 않나. 근데 거울을 볼 때 깜짝 놀란다. ‘아, 내가 팔이 없구나’라고. 내가 늘상 보는 사람은 양팔이 다 있으니까. 내가 남들과 똑같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이 약하다.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울을 볼 때 아니면 ‘내가 팔이 없지’라는 생각을 못한다. 일반 중·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타인을 보며 지내기 때문에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 사람인 거다. 그리고 내 오른팔이 티가 잘 안 난다. 처음 만나면 50%는 감지를 못한다. 20%는 내가 팔을 접어서 장난을 치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워낙 활달하니까. 30%는 눈치챈다. 중·고등학교 때 크게 상처 받은 건 없다. 장애 문제로 싸워본 게 두세건 외에 없다. 다만 나는 의수를 착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반팔을 입기 때문에 여름에는 (장애인인 걸) 다 안다.”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가장 문제 많아 -서울대나 한국 사회의 장애인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개선해야 할 건 뭘까? “일단 ‘장애우’라는 표현은 사소하지만, 좋은 어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장애 당사자가 스스로를 호칭할 수 없다. ‘나는 여성이다’라거나 ‘너는 남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듣게 되는 단어고 불림 받는 단어다. 내가 여러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게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신체의 손상이 있거나 불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라는 관념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장애인이 약자적 위치에 있고 장애인이 어려움을 뛰어넘은 어떤 성과가 있을 때 ‘그래,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라는 식이다. ‘장애우’라는 표현은 친근하게 친구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건데, 비장애인도 잠재적 장애인이다. 언제든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약자와 강자 방식으로 분류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장애우라는 표현이 불편하다. 또 일반적으로 ‘약자=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다. 장애인은 순박하거나 선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나 장애인도 범죄를 저지른다. 너무 조심할 필요 없다. 편하게 대하면 된다. 마음의 상처를 한두번 받아봤어야지. 우리(장애인들)는 마음속에 면역항체가 있다. 상처를 개의치 말고 자연스럽게 막 던지시면 된다. 오히려 그게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거라 생각한다.(웃음) 그게 서로 차이를 확인하고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 진지할 땐 진지해야겠지만 너무 조심할 필요는 없다. 장애우라는 표현도 그냥 장애인이면 족할 듯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도로 쓰는 게 어떨까 한다. 정부가 ‘장애우’ 사용을 권장하는데 내가 왜 친구여야 되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정서적 배려다. ‘장애우’라는 어휘의 과잉은, 실제 장애인 시설의 투박함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을 입으로 과잉 배려하고, 몸으로 상처 준다. “이 얘긴 꼭 실어달라. 내가 이동장애를 가진 장애인은 아니지만 가장 문제 있다고 보는게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다. 일단 사람을 불러서 작동시켜야 된다. 리프트 자체를 장애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데 ‘삐리리’ 소리가 난다. 마치 ‘여기 구경거리 났다’는 양. 그걸 볼 때마다 과연 ‘저걸 타는 장애인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내가 이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구나’라는 기분이 아닐까. 장애인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 기구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 자신의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또 하나는 학교 엘리베이터 이야기다. 장애인용 공간이 그려져 있지만 오전 9시 수업 직전 붐비는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 바쁜 학생들에게 내려달라는 말 절대 못한다. 일반인들은 장애인 주차 공간에 ‘누가 오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 공간이 필요한 장애인은 ‘비켜달라’는 말을 못한다. 감정노동이니까.”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3살때 정육점에서 오른팔 잃어
팔없는 삶에 몸이 스스로 적응
신발끈, 봉투 묶기 안되지만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어
박수 칠 때는 팔꿈치를 두드려
늘상 양팔 다 있는 사람 보니까
스스로 거울 볼 때가 아니면
‘내가 팔이 없지’ 생각 못해
거울 볼 때마다 정말 깜짝 놀라
셔틀버스 탈 때 스마트폰 볼 수 없어 심심 -선거운동할 때 장애인 권익 등 장애인 공약은 있었나? “장애학생 공약은 세세하게 나열하지 않았다. 사실 만들려면 많이 만들 수 있다. 공약보다 다른 게 필요하다고 봤다. 장애학생들이 학교랑 공식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 총장님과 장애학생들의 저녁식사 간담회는 있는데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 자리이고 ‘이런저런 게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있지만 공식적이지 않다. 총학생회는 교육환경 전반을 논의하는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의’에 장애학생을 참가시키기로 했다. 수업과 학점, 재수강은 몇회로 할지, 셔틀버스 운행시간, 식당 운영 등 학사 제도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논의하는 창구다. 장애학생이 여기에 참여하는 게 보장된다면 장애학생이 가진 불편이나 환경 개선은 다 논의될 수 있어 구조적 개선책이 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걸지 않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내가 장애인이라는 게 화제가 되진 않았다. 장애인 총학생회장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니냐는 담론은 없었다. 많은 학우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내가 장애가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이씨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에는 30~40여명의 장애인 학생들이 있다. 1990년대에 장애인인권운동 동아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해체되고 없다. 학기 중에 몇차례 모여 친분도 쌓고 정보도 나누지만, 문제의식과 활동이 조직화된 수준은 아니다. 이씨는 정책의 나열보다 구조를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학생회장 이경환’을 만든 것은 장애인으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이 아니다. 진보정당 운동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2005년 입학 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부조리에 눈떴다. 연대사업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진보정당 운동의 쇠퇴를 겪으며 함께 고민에 빠졌다. 진보정당의 분열도 지켜봤다. 2010년 총학생회장 출마를 끝으로 그때까지 해온 정당 중심 학생운동에서 거리를 뒀다. 2012년 통합진보당 당적도 버렸다. 지난 활동을 돌이켜봤다. 여전히 진보정당 운동의 대의는 지지하지만,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 ‘생활정치’가 화두가 됐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모아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졸업생·재학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집단소송 참여자가 올해 초 200명을 훌쩍 넘었다. 소가(소송물가액)도 35억원이 넘는다. 이렇듯 지금 당장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 총학생회에 다시 출마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생들의 주택 문제를 상담받고 문제 해결을 도울 ‘주거복지국’을 신설하는 등 총학생회 실무진 구성을 거의 마친 상태다. -한 손이 없어 피부에 와닿는 불편함이 뭐가 있을까? 혹은 학교나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저절로’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 있을까? “나 정도(팔 한쪽이 없는)는 경증 장애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은 없다. 나보다 중증 장애인, 특히 이동장애가 있는 하반신 장애인이 더 불편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글쎄… 혼자 자취하는데 쓰레기봉투를 묶는 거라든가 신발끈을 묶는 게 어렵다는 정도의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학업에서는 오른팔이 없어서 불편한 게 없다. 다만, 셔틀버스 이용할 때, 이건 불편함이라고 하기엔 애매한데, 남들은 한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볼 수 있잖나.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손잡이를 잡으면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잡을 수 없어 아주 심심하다.(웃음) 뭐 이런 정도?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보면 된다. 세살 때 (팔을) 잃었으니 굉장히 어릴 때였기 때문에 후천적 사고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몸이 이것에 익숙해진 셈이다. 원래 왼손잡이인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연적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있었던 팔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서바이벌 슈팅 게임, 가령 ‘서든어택’ 같은 건 그냥 안 하면 된다.(웃음) 핸드폰도 액정이 지나치게 크지만 않으면 이용하는 데 지장은 없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에 민주노동당은 당직 선거 나서는 간부 후보들의 경우 성평등 및 장애인권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 교육은 많이 받아봤고, 좋았다. 장애인권에 대한 나만의 시각은 있지만 직접 장애인 활동은 한 적은 없다.” 한 손으로 신발끈 매기, 그건 정말 안 되더라 이씨는 쾌활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매우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어휘와 문장으로 잘 표현하고 전달한다. 팔과 관련된 질문을 던질 때 몹시 조심스러웠다. 외려 당사자인 이씨는 자신의 한쪽 팔이 없는 것을 객관화하고 희화화하며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기자는 인터뷰 중간 이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구두끈을 풀었다. 한 손으로 구두끈을 묶으려고 해봤다. 잘 안됐다. -미안한데 다시 한번 물어봐도 되나, 한 손으로 구두끈 묶는 게 되나? “유튜브에 ‘한 손으로 신발끈 매는 법’이라는 동영상이 있다. 나처럼 한쪽 팔이 없는 외국 청년이 만든 동영상이다. 나도 봤는데 아무리 해도 못 배우겠더라. 남에게 매달라고 한다. 소매 단추도 부탁한다. 넥타이의 경우 보통은 자동 부착 넥타이를 주로 이용하고 예쁜 넥타이는 남에게 매달라고 한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한 손으로 신발끈 묶기’(How to tie your shoes with one hand)라는 동영상이 검색된다. 기자도 따라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남과 다른 것은 조금도 용인하지 않는 잔인한 한국 사회에서 그가 지금처럼 긍정하는 마음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무엇을 느끼고 아파했을지 궁금했다. -아까 ‘몸이 스스로 적응하고 성장해왔다’고 표현했다. 그 말을 조금 더 설명해달라. 한쪽 팔이 없어 남과 다르다는 점을 사춘기 때 심리적으로 어떻게 극복했나? “‘몸이 현재 신체 조건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예를 들면 내가 성인이었는데 사고로 팔을 잃었다고 해보자. 그럼 박수를 어떻게 칠까? 저는 이렇게(왼손으로 오른팔 팔꿈치 부분을 두드리며) 친다. 이렇게 치는 이유는, 여기(왼손)하고 여기(오른팔꿈치)가 대응되는 거다. 내 머리에서는. 근데 팔이 있었던 사람은 착각한다. 마치 신체가 남아 있는 양. 나는 어릴 적부터 박수를 쳐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친다. 팔짱도 낀다. 내 머릿속에는 리치(팔의 길이)가 여기(오른팔 팔꿈치)까지다. 나한테는 이렇게 박수를 치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선천적으로 오른팔이 짧은 거고 손가락이 없는 셈이다. 있었던 상태에서 사라진 손상과는 다를 거다. 몸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로 잘 표현 못하겠다. 아무튼 리치에 맞게 생활하는 저만의 패턴이 있을 거다.” 성인이 사고로 팔다리를 잃으면 실제로 신체가 남아 있다고 착각한다. ‘환상지’(stump hallucination) 효과다. 성인이 되어 오른팔을 잃은 사람은 무의식중에 과거처럼 박수치려다 아무 소리도 못 낸다. 생각 속의 리치와 현실의 리치가 불일치한 까닭이다. 이씨는 정확히 왼손으로 오른팔꿈치를 두드려 ‘탁, 탁’ 소리로 박수를 친다. 그는 자연스럽게 몸에 적응해온 것이다. -사춘기 땐 어땠나? “내 몸을 내가 못 보지 않나. 근데 거울을 볼 때 깜짝 놀란다. ‘아, 내가 팔이 없구나’라고. 내가 늘상 보는 사람은 양팔이 다 있으니까. 내가 남들과 똑같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이 약하다.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울을 볼 때 아니면 ‘내가 팔이 없지’라는 생각을 못한다. 일반 중·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타인을 보며 지내기 때문에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 사람인 거다. 그리고 내 오른팔이 티가 잘 안 난다. 처음 만나면 50%는 감지를 못한다. 20%는 내가 팔을 접어서 장난을 치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워낙 활달하니까. 30%는 눈치챈다. 중·고등학교 때 크게 상처 받은 건 없다. 장애 문제로 싸워본 게 두세건 외에 없다. 다만 나는 의수를 착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반팔을 입기 때문에 여름에는 (장애인인 걸) 다 안다.”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가장 문제 많아 -서울대나 한국 사회의 장애인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개선해야 할 건 뭘까? “일단 ‘장애우’라는 표현은 사소하지만, 좋은 어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장애 당사자가 스스로를 호칭할 수 없다. ‘나는 여성이다’라거나 ‘너는 남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듣게 되는 단어고 불림 받는 단어다. 내가 여러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게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신체의 손상이 있거나 불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라는 관념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장애인이 약자적 위치에 있고 장애인이 어려움을 뛰어넘은 어떤 성과가 있을 때 ‘그래,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라는 식이다. ‘장애우’라는 표현은 친근하게 친구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건데, 비장애인도 잠재적 장애인이다. 언제든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약자와 강자 방식으로 분류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장애우라는 표현이 불편하다. 또 일반적으로 ‘약자=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다. 장애인은 순박하거나 선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나 장애인도 범죄를 저지른다. 너무 조심할 필요 없다. 편하게 대하면 된다. 마음의 상처를 한두번 받아봤어야지. 우리(장애인들)는 마음속에 면역항체가 있다. 상처를 개의치 말고 자연스럽게 막 던지시면 된다. 오히려 그게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거라 생각한다.(웃음) 그게 서로 차이를 확인하고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 진지할 땐 진지해야겠지만 너무 조심할 필요는 없다. 장애우라는 표현도 그냥 장애인이면 족할 듯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도로 쓰는 게 어떨까 한다. 정부가 ‘장애우’ 사용을 권장하는데 내가 왜 친구여야 되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정서적 배려다. ‘장애우’라는 어휘의 과잉은, 실제 장애인 시설의 투박함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을 입으로 과잉 배려하고, 몸으로 상처 준다. “이 얘긴 꼭 실어달라. 내가 이동장애를 가진 장애인은 아니지만 가장 문제 있다고 보는게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다. 일단 사람을 불러서 작동시켜야 된다. 리프트 자체를 장애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데 ‘삐리리’ 소리가 난다. 마치 ‘여기 구경거리 났다’는 양. 그걸 볼 때마다 과연 ‘저걸 타는 장애인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내가 이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구나’라는 기분이 아닐까. 장애인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 기구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 자신의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또 하나는 학교 엘리베이터 이야기다. 장애인용 공간이 그려져 있지만 오전 9시 수업 직전 붐비는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 바쁜 학생들에게 내려달라는 말 절대 못한다. 일반인들은 장애인 주차 공간에 ‘누가 오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 공간이 필요한 장애인은 ‘비켜달라’는 말을 못한다. 감정노동이니까.”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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