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5공화국 정권은 민주화운동의 새로운 양상인 ‘노-학 연대’를 막기 위해 81년 6월 이른바 ‘학림사건’으로 명명한 ‘전국민주노동자연맹’과 ‘전국민주학생연맹’ 사건을 동시에 터뜨렸다. 사진은 이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무기형을 살다가 88년 7월 특사로 풀려난 이태복 전 노동부 장관이 대전교도소 앞에서 어머니를 만나 기뻐하는 모습.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82)
전두환은 집권 초기 ‘정의사회 구현’을 빌미로 민주노동운동을 집중적으로 탄압했다. 1980년 8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서 “하달된” ‘노동조합 정화 지침’을 보면 한국노총 위원장 등 산별 위원장 사퇴, 지역지부 폐지, 각 노동조합에 정화위원회 설치 등을 지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전국 160여개 지역지부를 해체했고, “정화된 노동조합 간부들은 3년간 노조 간부를 맡을 수 없다”는 명령을 내렸다.
다음 순서는 12월 이른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감행한 노동관계법 개악이었다. 국보위는 산별 노조를 기업별 노조로 퇴행시켰고, ‘제3자 개입 금지’로 노동운동을 사회로부터 고립시켰으며, 학생들의 노동야학과 노동현장 진출을 범죄로 다루었다.
동시에 70년대 말부터 싹트기 시작한 민주노조들에 대한 파괴공작도 진행했다. 전두환 정권은 그해 5월15일 결성된 서통노조의 조합원 600명을 해고하고, 이듬해 6월 배옥병 위원장 등 노조간부 5명을 “폭력 사범”으로, 전 섬유노조 기획전문위원 이목희(현재 국회의원)를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했다. 81년 초 서울시장은 청계피복노조 해산을 명했고, 경찰은 노조 사무실을 폐쇄했다. 콘트롤데이타에서는 노조가 태업 등을 벌이자 82년 1월 미국 본사에서 노동쟁의 신고를 한 뒤 7월 일방적으로 공장 문을 닫아버렸다.
80년 7월부터 83년 1월까지 이어진 원풍모방의 노조 사수 투쟁도 성공하지 못했다. 지부장 방용석은 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연루시켜 수배했고 부지부장 박순희는 조합원에서 제명했다. 이어 12월 계엄사는 이문희 지부장 직무대리 등 노조 간부와 대의원들에게 강제 사표를 받고 그 가운데 4명은 ‘삼청교육대’로 끌고 갔다. 81년 2월 조합원들은 새 집행부를 구성해 투쟁을 계속했으나 10월1일 끝내 강제해산당했다. 회사에서 쫓겨난 노조원들은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관에서 농성을 계속하려 했지만 인명진 목사가 회관 철수를 요청해 83년 1월 투쟁의 막을 내려야 했다.
전두환 정권은 민주노조를 파괴한 뒤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조원들의 재취업까지 막았다. 정보기관·노동부·기업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는 학생운동 출신 노조 활동가들, 청계피복·원풍모방·동일방직·반도상사·동남전기·서통 등 125개 사업장의 해고자 등 700명이 넘었다.
5공화국 들어 생겨난 민주화운동의 새로운 양상인 ‘노학 연대’에 대한 정권의 탄압도 집요했다. 81년 6월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 사건’이 대표적이다. 훗날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태복을 비롯해 김철수·신철영·김병구·유해용·윤상원·양승조·박태연·유동우 등이 펼친 조합주의 경제주의 극복운동, 미조직 노동자의 노조 결성 운동, 산별 노조 운동을 막고자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사건’과 동시에 꾸며낸 일이었다. 81년 2월 전민노련과 연계해 결성된 전민학련은 5인 중앙위원회(이선근·박문식·박성현·이덕희·홍영희)를 두고 경인지부(지부장 윤성구), 부산지부(지부장 이호철)를 조직한 상태였다. 경인지부에는 신촌지회(연세대·이화여대), 관악지회(서울대), 중앙지회(성균관대·동국대·성신여대), 동부지회(외국어대·경희대) 등이 있었다.
전국불교야학연합회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출신의 최연 등이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불교운동”을 전개하면서 결성했는데, 전두환 정권은 81년 12월 이를 ‘불교 사회주의 운동’으로 낙인찍고 150여명을 연행한 뒤 법우 스님, 최연(문화농림 여래사 운영위원), 신상진(여래사 불교연구 회원)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83년 8월 치안본부 비밀수사기관에서 ‘야학교사 대학생’ 300명과 노동자 200명을 고문·수사한 뒤 “야학은 용공좌경의 소굴”로 매도한 야학연합회 사건도 터졌다.
전두환 정권의 노동운동 탄압은 일제가 식민지시대 조선의 독립운동가 또는 잠재적 독립운동가들을 “불령선인”으로 몰아 잡아가고 고문하던 수법과 다르지 않았다.
“학생은 왜 노동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노동자는 왜 사회문제에 대해 의식화되어서는 안 되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커녕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권력의 주먹이 먼저 날아왔던 전두환 시대는 ‘파쇼국가’였다.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정리도움 강태영
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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