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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월호 충격’ 떠올린듯…“지금 나가야한다” 집단탈출

등록 2014-05-02 21:23수정 2014-05-03 18:19

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차량 이상으로 잠시 정차하고 있던 열차를 뒤따르던 열차(왼쪽)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나 두 열차의 앞뒤 부분이 파손돼 있다. 반대편 열차 승객들이 유리창 너머로 밖을 살피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차량 이상으로 잠시 정차하고 있던 열차를 뒤따르던 열차(왼쪽)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나 두 열차의 앞뒤 부분이 파손돼 있다. 반대편 열차 승객들이 유리창 너머로 밖을 살피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집단패닉’ 현실화
대구지하철 사고 학습효과 더해
“불날지 모른다” “빨리 문 열어라”
승객 1000여명 직접 문 열고 대피
차내 벗어나며 안도감 질서 찾아
열차 통제 안됐다면 대형사고 날뻔

지켜보던 시민들도 불안 가중
“사고 때 안전지시 안 따를 가능성”
뒤쪽에서 여성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빨리 문 열어달라”며 벽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바로 나가야겠다”며 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현장에서는 세월호 사고로 시민들 뇌리에 박힌 대형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집단 패닉(공포·공황)’으로 나타났다.

상왕십리역에 먼저 들어와 있던 2258호 전동차를 뒤에서 들이받은 2260호 전동차 승객들은 충돌 직후 공포에 떨었다. 좌석에 앉아 있던 박은경(40)씨는 ‘쾅’ 소리와 함께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며 스테인리스봉에 얼굴을 부딪혔다. 순간 정전이 됐다. 전동차는 아직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박씨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더니 ‘살려달라’, ‘119에 신고하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했다. 누군가 “앞쪽 문이 열렸다”고 소리쳤다. 박씨는 “사람들이 그쪽으로 정신없이 몰려갔다”고 전했다.

김일행(69)씨도 충격으로 쓰러졌다. 그는 “사람들이 ‘문을 열라’고 소리질렀다”고 했다. 같은 전동차에 탄 박아무개(24)씨는 “두번째 칸에 있었는데 사고로 전등이 다 꺼졌다. 누군가 ‘불이 날지도 모른다’고 소리치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고 말했다.

막 승강장을 벗어나려다 추돌을 당한 2258호 승객들도 크게 놀랐다. 장순호(26)씨는 “바로 세월호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장씨는 “사람들이 ‘지금 바로 나가야겠다’고 했다. 누군가 수동으로 문을 열려다 잘 안되니까 뒤에 있던 사람이 자기가 하겠다며 밀쳐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고, 빨리 문을 열라고 재촉하고, 벽을 두드렸다”고 했다.

사고 직후 두 전동차 승객 1000여명은 ‘알아서’ 열차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지하철 사고가 잦았지만 ‘자발적 대피’는 이례적인 모습이다. 세월호 승객들이 ‘현재 위치에서 그대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따르다 참극이 빚어진 데 따른 ‘학습효과’로 풀이된다. 지하 공간의 폐쇄성과 정전,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에 대한 기억, 최근의 세월호 사건 집중 보도도 공포심을 키웠다. 일부 승객들이 “침착하자”, “진정하라”고 했지만 일단 번진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반대편 열차와 고압전류 등이 제때 통제되지 않았다면 자칫 심각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승객들은 전동차를 벗어나 선로를 따라 대피하기 시작하면서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안도감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일부 승객은 병원 응급실에서도 몸을 떠는 등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상왕십리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던 시민들도 불안에 떨었다. 사고 직후 역내에는 “지금 계신 분들 나가세요”라는 방송이 반복해서 나왔다. 이렇다 할 상황 설명은 없었다고 한다. 상왕십리역 지상 출입구에는 구급차와 소방차 60여대, 소방관·경찰 등 200여명이 몰려들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대형 사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9·11 테러 뒤 미국인들이 겪은 ‘집단 패닉’과 비슷한 심리상태를 세월호 사건 뒤 경험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의 일반적인 신념과 규칙, 약속 같은 것들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혼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파란불에 건너고 빨간불에 멈춘다는 기본적 약속들을 못 믿게 됐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예전에도 지하철 사고는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과거에는 ‘사고’였던 것이 이제 ‘재난’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기다려서는 안 된다’, ‘빨리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황준원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월호와 대구 지하철 사고를 보며 가만히 갇혀 있으면 죽는다는 학습효과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서영지 박기용 진명선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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