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4인 가족 가운데 65.1%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거 환경 속에서 층간소음으로 벌어지는 갈등은 점점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서울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한겨레 윤운식 기자
아랫집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제사 지내러 온 남성 숨져
소음규제기준 WHO보다 약해…민원건수 2년새 두배로
소음규제기준 WHO보다 약해…민원건수 2년새 두배로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가 또다시 이웃간 흉기 살인 사건으로 번졌다. 층간소음에 관한 정부의 새 규제기준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어난 참극이어서, 지금보다 더 강제성 있는 법적 규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도봉구 창동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싸우다 위층 주민 진아무개(48)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조아무개(54)씨를 붙잡아 조사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이 아파트 12층에 사는 조씨는 17일 밤 9시께 진씨 집에서 나는 소음에 항의하기 위해 올라갔다가 시비가 붙었다. 말다툼이 멱살잡이가 됐고, 흥분한 조씨가 자신의 집으로 내려가 흉기를 가져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진씨는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조씨도 진씨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눈 주위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숨진 진씨가 2008년 이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부터 층간소음 문제로 여러 차례 다툰 것으로 드러났다. 1980년대 말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층간소음이 심했다고 한다. 도봉경찰서 관계자는 “층간소음 문제로 싸움이 이어지자, 2011년부터 위층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진씨 가족이 지난해에는 아예 옆 동으로 이사를 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진씨가 어머니 집을 찾은 날이었다”고 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간 갈등은 종종 살인사건으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2012년 7000여건에서 지난해 1만5000여건으로 갑절 넘게 늘었다. 지난해 설 연휴에 서울 중랑구 면목동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정부 대책이 쏟아졌지만 관련 규제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마련하고 있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에 관한 규칙’안을 보면, 직접충격 소음은 낮 43㏈(데시벨), 밤 38㏈ 이내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접충격 소음은 아이들이 뛰거나 가구를 끄는 등 방바닥에 직접 충격을 가해 발생하는 층간소음을 1분간 측정한 뒤 평균을 낸 것을 말하는데, 정부 규칙은 지난 2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도입한 분쟁조정 기준치에서 3㏈씩 후퇴한 것이다. 각각 35㏈, 30㏈인 세계보건기구(WHO) 기준도 넘어서는 수준이다.
강규수 소음진동피해예방시민모임 대표는 “층간소음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고의적 소음이다. 이른바 소음으로 ‘보복’하는 것을 말하는데 정부 기준은 한 시간에 2회 이내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사실상 이웃간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제 단순한 기준 조정에 그칠 게 아니라 강제성 있는 법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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