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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낮에만…각본대로…대피 훈련, 밤중엔 ‘앞이 캄캄’

등록 2014-05-20 20:01수정 2014-05-20 22:15

하나마나 한 재난 대응 훈련

세월호 뒤 기업·지자체 등 훈련 증가
야간 등 취약시간대엔 진행 않고
방호·경비직 부재 상황도 고려 안해
요란하게 울리는 화재경보가 반사적으로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자다 깬 환자들은 허둥지둥했다. 지난달 28일 새벽 1시44분 대전의 한 요양병원 상황이다.

김아무개(65)씨가 입원해 있던 5층이 술렁였다. 경보가 울리고 10분 동안 ‘대피하라’는 방송이 멈추지 않았다. 입원한 350여명은 교통사고나 파킨슨병, 뇌신경 중증장애 등으로 혼자 걷기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이가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심야의 긴급 상황을 책임지고 안내하는 사람은 없었다. 병원 1층엔 경비원이 있었다. 또 층별로 당직 간호사가 1명씩 근무중이었다. 간호사는 환자들의 호출에는 답하지 않은 채 전화기만 붙잡고 도움을 요청하느라 바빴다. 다급한 마음에 일부 환자들이 어렵게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병원 엘리베이터는 절전을 이유로 3대 중 1대만 가동되고 있었다.

환자들의 동요는 더욱 컸다. 그나마 걸을 수 있는 환자들은 비상구 계단을 통해 탈출하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일부는 창문에 설치된 완강기 줄을 밖으로 던졌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은 정작 창틀에 올라서지도 못했다. 몇몇 환자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김씨는 “세월호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저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정말 다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화재경보는 오작동으로 밝혀졌다. 다음날 병원은 놀란 환자들에게 우황청심환을 나눠줬다.

이 요양병원은 그동안 ‘화재안전 우수 등급’을 받았다고 홍보해왔다. 한국화재보험협회는 지난해 5월 이 병원을 화재에 안전한 우수 대형건물로 지정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보건복지부 의료기관평가원이 실시한 의료기관 인증평가도 통과했다. 복지부 쪽은 “화재안전 검사를 할 때 야간과 주간을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화재보험협회도 안전점검은 낮에만 실시했을 뿐 야간 비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서류로만 확인했다.

이 병원은 일년에 한차례 자체 소방훈련을 실시한다. 직원들이 지휘반과 소화반 등으로 나뉘어 낮에 1시간30분 정도 훈련을 하는 게 전부지만, 낮 상황만을 가정하기 때문에 언제나 훈련 결과는 ‘성공적’이다. 병원 관계자는 “화재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있지만 주야간 구분이 돼 있지 않다. 화재경보 오작동 사건을 계기로 느낀 게 많아 실질적 매뉴얼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 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기관 등에서 앞다퉈 재난 대피훈련을 하고 있다. 비상훈련은 언제나 ‘방호·경비·관리 부서 모든 직원’이 ‘정위치’에 있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관리 취약 시간대인 야간·심야 상황을 가정한 훈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난 13일 사상 처음으로 201개 업체 9000여명이 근무하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트레이드타워(지상 54층·지하 2층)와 아셈타워(지상 41층·지하 4층)에서 1시간가량 화재 대피훈련이 실시됐지만, 역시 낮에 모든 관리 직원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됐다. 이튿날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대피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이의평 한국화재조사학회 회장은 “야간·심야 상황을 가정한 대책이 따로 필요하다. 정부와 관련 기관도 밤에 비상훈련이 가능하도록 인적·제도적 지원을 적극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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