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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박 대통령 “수백년 징역형”…법조계 ‘포퓰리즘’ 우려

등록 2014-05-20 21:28수정 2014-05-20 21:39

해양경찰청 구조대원들이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4월16일 오전 속옷 차림으로 탈출하고 있는 이준석 선장을 구조하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해양경찰청 구조대원들이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4월16일 오전 속옷 차림으로 탈출하고 있는 이준석 선장을 구조하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현행법은 여러 죄 저질렀을 때 무거운 죄 골라 2분의 1 가중 처벌
각 죄에서 정한 형 모두 더하는 ‘병과주의 방식’ 도입해야 가능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선진국 중에서는 대규모 인명피해를 야기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수백년의 형을 선고하는 국가들이 있다”며 형법 개정을 예고하자, 법조계에서 ‘형벌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애초 이런 방식의 형법 개정은 검토하지 않는다던 법무부도 대통령의 발언에 당혹스러워하며 ‘해법’에 고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형법 개정 방향은 ‘병과주의 부분 도입’으로 요약된다. 병과주의는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죄를 저질렀을 때 각각의 죄에 대한 형을 모두 더해 처벌하는 원칙을 말한다. 영미법계에 속하는 미국 등 일부 국가가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여러 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장 무거운 죄에 내려질 수 있는 형의 2분의 1까지만 가중해서 처벌(가중주의)할 수 있다. 대륙법계의 대표적 국가들인 독일과 프랑스 등이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고,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이 법정 최고형이 징역 12년, 10년, 6년, 4년짜리 네 개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병과주의라면 이를 단순히 더해 징역 32년까지 선고할 수 있지만, 가중주의를 적용하면 징역 18년(12년의 1.5배)까지 선고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뒤 업무상 과실치사 형량 강화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해온 법무부는 애초 병과주의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박 대통령 담화문 발표 전 법무부 박철웅 형사법제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형법에 병과주의를 도입하는 건 형사법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는 작업이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 대책 중 하나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굉장히 오랜 검토와 고민이 필요한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 김한수 대변인은 20일 “박 대통령의 말씀 취지는 ‘엄벌하라’는 것이지 반드시 병과주의를 도입하라는 건 아니다.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학계에서도 병과주의 도입에 부정적 견해가 많다. 전지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특정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건 동의하지만 꼭 병과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해당 범죄의 법정형을 무기징역으로 높이면 된다”고 말했다. 법정형을 높이면 되는데 굳이 병과주의를 도입해 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운전자가 실수로 사망사고를 냈다고 치자. (같은 사고라도) 10명 죽으면 10년, 20명 죽으면 20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얘긴데, 이렇게 하면 형벌이 ‘로또’가 된다. 미국이 그렇다지만 서부개척시대에 만들어진 법을 못 고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병과주의를 택해도 상한선만 올라갈 뿐이다. 어차피 판사들이 전체적인 범죄 사실을 고려해 형을 선고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국민 감정을 달래기 위한 쇼”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도 “우리 형법은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특정한 범죄에 대해 병과주의를 택하자는 건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검찰 쪽에서는 긍정적 반응이 많은 편이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병과주의는 정책적으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10개 범죄 저지른 사람과 2개 범죄 저지른 사람의 처벌이 같다는 건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제한적으로 적용한다면 형법 체계를 크게 흔들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한 부장검사도 “지금은 아무리 죄가 커도 형량이 얼마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특별법이 생기는데, 차라리 병과주의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냐”고 밝혔다. 법무부 형사법 개정 특별위원회의 한 위원도 “어떤 범위로 한정해서 도입하느냐가 문제일 뿐 도입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법 정책의 문제”라고 말했다.

사법부도 이날 일부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세월호 사건 관련 사법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가중주의를 적용한 형법의 한계로 처벌이 엄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국의 입법례를 심층 분석하고 연구하기 위해 정책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재판 사례를 분석하는 등 바람직한 방향의 입법이 이뤄지도록 사법부 차원의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김원철 이경미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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