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인 정보 남용 우려” 지적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현행 주민등록번호 제도는 국가에 의해 개인 정보가 남용될 우려가 있으므로 활용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자기식별번호를 도입하라는 권고안을 26일 의결했다. 신용카드사의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태 이후 나온 개인정보 보호 대책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권위는 이날 오후 전원위원회를 열어 ‘주민등록번호제도 개선 권고의 건’을 심의해 의결했다. 해당 안건은 △주민등록번호를 주소지를 기준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법·행정업무에 한정해 사용하고 다른 공공영역에 대해서는 목적별 자기식별번호체계를 도입 △주민등록번호 변경 절차를 마련 △임의번호로 구성된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채택 △민간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법령을 재정비해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최소화할 것 등 4가지 사항을 정부와 국회에 권고하는 내용이다.
다른 권고사항이 정부나 국회가 이미 입법을 준비하고 있는 사항인 데 반해 ‘목적별 자기식별번호체계 도입’는 지금까지 공론화가 된 적이 없다. 이날 의결된 안건의 설명자료를 보면 “국가전산망이나 민간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모두 주민등록번호에 기반해 구축·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번호 하나가 유출되면 개인의 모든 정보까지 유출될 위험성이 있다”며 “적절한 수준에서 개인정보의 보관과 운영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전원위에 참석했던 한 상임위원은 의결 배경에 대해 “현재 출신지역, 성별 등에 대한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주민번호 뒷자리를 임의번호로 변경을 하더라도 그 번호는 행정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하고, 공공기관마다 칸막이를 쳐서 기관 업무 성격에 맞는 목적별 식별번호를 도입하는 게 옳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도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목적별 식별번호 도입이 유엔 권고의 핵심이었던 만큼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인권위가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편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했다.
목적별 자기식별번호체계는 미국의 사회보장번호처럼 의료나 사회복지, 또는 운전면허 등 공공서비스의 성격이나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하나의 번호로 거의 모든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자격을 부여하는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 제도는 국가기관에 의해 개인 정보가 남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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