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징역 100년형’ 특례법 추진
다중인명피해범 병과주의 적용
피해규모 따라 형량 단순합계
가석방 기준도 까다롭게 바꿔
같은 행위에 결과 따라 처벌 큰 차
과잉처벌 논란 부를 가능성
다중인명피해범 병과주의 적용
피해규모 따라 형량 단순합계
가석방 기준도 까다롭게 바꿔
같은 행위에 결과 따라 처벌 큰 차
과잉처벌 논란 부를 가능성
법무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나온 지 보름 만에 징역 100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서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세월호 심판론’이 지방선거의 화두가 된 상황에서 하필 선거 전날 형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안을 덜컥 내놓아 시점 선택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에 관한 특례법’ 안은 ‘행위에 따라 처벌한다’는 형법의 원칙을 대량 인명 피해에 한해 ‘결과에 따라 처벌한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의 행위로 여러 사망자를 냈을 경우 피해자 수만큼 여러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하나의 행위라면 하나의 범죄로 본다. 예를 들어 한번의 버스 사고로 20명이 숨지면 운전기사가 하나의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저질렀다고 본다. 하지만 특례법은 20개의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저질렀다고 본다.
형량 부과 방식도 확 달라진다. 형법은 20개의 죄를 저질러도 가장 무거운 죄에 내려지는 형의 1.5배까지만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특례법은 각각의 죄에 매겨진 형을 모두 더해 처벌하는 ‘병과주의’를 택했다. 20명의 사망자를 내 업무상과실치사죄(5년 이하 금고)를 저지른 버스기사의 경우 지금은 그 밖의 다른 죄가 있더라도 7년6개월 금고형이 최대 처벌량이다. 하지만 특례법을 적용하면 징역 또는 금고 100년(5년×20명)을 선고받을 수 있다.
가석방도 까다로워진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면 최소 40년을 복역해야 심사 대상이 된다. 현재는 20년이다.
이런 변화는 언뜻 ‘국민 법감정’에 부합하는 듯하지만 학계에선 ‘결과책임보다 행위책임’이라는 근대 형법의 원칙을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위는 같은데 결과가 다르다는 이유로 최대 형량이 징역 5년에서 100년까지 차이가 나는 건 옳지 않다. 과잉 처벌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감정을 달래기 위한 쇼’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과실 정도가 비슷한데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형을 얼마나 더 중하게 부과하겠냐. 실무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은 “과실의 차이는 없을 수도 있지만 승객들이 많이 있을 때 주의의무가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양형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입법 움직임의 계기가 된 세월호 사고만 보더라도, 이준석(69·구속 기소) 선장은 현행 형법의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도주선박죄(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중 하나가 인정되면 ‘충분히’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자연 수명을 고려하면 징역 100년형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형법의 근간을 바꾸면서 이를 특별법의 형태로 서둘러 도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어차피 소급 적용은 되지 않기 때문에 이준석 선장 등에게는 특례법안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서울지역 법원의 다른 부장판사는 “필요하다면 깊은 논의를 해서 형법을 개정하는 게 맞다. 형법 전반을 흔드는 것인데 특별법 형태로 도입하는 건 꼼수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법무부는 애초 병과주의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대통령 담화문 발표 직후에도 법무부 관계자는 “대통령 말씀은 엄벌하라는 것이지, 꼭 병과주의를 도입하라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선진국 중에서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수백년의 형을 선고하는 국가들이 있다”는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세자릿수 형량을 ‘고안’해낸 것으로 보인다. 김원철 이경미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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