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당선무효’ 성완종·배기운 의원
변호인쪽 연기신청 다음날 즉각수용
선고기한 10개월·7개월 이상 넘겨
검 간부 “날짜 잡혔는데 연기 처음”
대법 “변호사 새로 선임 땐 관례”
변호인쪽 연기신청 다음날 즉각수용
선고기한 10개월·7개월 이상 넘겨
검 간부 “날짜 잡혔는데 연기 처음”
대법 “변호사 새로 선임 땐 관례”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재판 비용) 죄수는 먹어 조지고(사식 요구) 간수는 세어 조지고(잦은 점호) 형사는 패 조지고(구타와 고문) 검사는 불러 조지고(잦은 소환) 판사는 미뤄 조진다(기일 연기).”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됐던 소설가 고 정을병씨가 발표한 단편소설 <육조지> 내용의 일부다. 미결수 처지에서 판사의 선고 연기는 경찰의 구타와 고문만큼이나 힘들었다는 풍자다. 그런데 선고가 미뤄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도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배지’들이 주인공이다. 대법원이 이들에 대한 ‘미뤄 봐주기’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3월19일 새누리당 성완종(63)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배기운(64) 의원 사건에 대해 그달 27일 선고하겠다고 예고했다. 두 의원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뒤 기소됐고, 항소심에서 각각 벌금 500만원과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확정판결이 선고되면 그날로 배지가 떨어질 처지였다.
그런데 대법원의 선고 예고 이튿날 성 의원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들을 추가로 선임했고, 바른은 선임계와 함께 선고연기신청서를 대법원에 냈다. 고영한 주심 대법관은 이튿날 이를 받아들여 선고 날짜를 ‘추정’(추후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배 의원도 그달 24일 법무법인 로월드를 추가 선임하며 기일변경신청을 냈고, 김용덕 주심 대법관도 이튿날 선고 날짜를 ‘추정’하기로 했다. 배지가 간당간당하던 의원들이 변호인을 추가 선임하자 대법관들이 선고를 미뤄준 셈이다.
김선일 대법원 공보관은 “변호인이 새로 선임돼 상고이유보충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한차례 정도 선고를 연기해주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거 사건을 전담하는 검찰 공안부의 한 간부는 “지방법원에서는 선고기일이 잡힌 뒤에 기일을 연기해주는 경우를 몇차례 본 적이 있지만, 상고심에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겨레>가 제19대 총선 선거법 위반 사건 30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상고심 단계에서 새로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는 많았지만, 선고 날짜가 연기된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다.
공직선거법(제270조)은 ‘선거법 사건 재판기간에 대한 강행규정’을 두고 있다. 1심은 공소제기(기소)로부터 6개월, 2·3심은 하급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 안에 사건을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 의원은 지난해 5월13일, 배 의원은 8월22일 항소심 선고를 받았다. 결국 대법관들은 법규정까지 어겨가며 선고를 미룬 것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변호사는 “대법원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대지만, 선거법은 비리 정치인의 변론권보다는 올바른 인물이 국민의 대표가 되도록 신속히 재판할 가치를 더 높게 판단하고 있다”며 “대법원은 재판부에서 선고 내용에 합의한 뒤 기일을 정하는데, 단지 변호사가 새로 선임됐다고 선고기일이 잡힌 사건을 ‘추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용덕 대법관은 지방선거 직전인 지난 3일 배 의원 사건을 12일에 선고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고영한 대법관은 성 의원 사건을 여전히 ‘추정’ 상태로 놔두고 있다. 성 의원은 경남기업 대주주 겸 회장 출신으로,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충남도당 위원장을 맡아 활약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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