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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엄연한 전문직인데 등대지기라는 말은 좀…”

등록 2014-06-20 19:08수정 2014-06-20 21:51

하룻밤 내내 등불을 밝힌 등롱의 창은 매일 정성스럽게 닦아주어야 내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6일 아침 하조도 항로표지관리소 박병훈 관리소장(오른쪽)과 곽주현 주사가 등롱에 낀 먼지 등을 닦고 있다. 등대에 쓰이는 렌즈는 보통 700W(와트)짜리. 대략 1000시간 수명이다. 하조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하룻밤 내내 등불을 밝힌 등롱의 창은 매일 정성스럽게 닦아주어야 내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6일 아침 하조도 항로표지관리소 박병훈 관리소장(오른쪽)과 곽주현 주사가 등롱에 낀 먼지 등을 닦고 있다. 등대에 쓰이는 렌즈는 보통 700W(와트)짜리. 대략 1000시간 수명이다. 하조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르포
하조도 등대에서의 하룻밤
▶ 바닷가 절벽에 우뚝 솟아 있는 등대는 외로워 보입니다. 밤에 보는 등댓불은 연인끼리 사랑을 속삭이며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은 등대를 찾아가본 적 있나요? 등대를 지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신 적은요? 등대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유인 등대는 37개(무인 등대 1141개)가 있는데요. 그중에서 진도군 하조도 등대를 찾아갔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의 어린 주인공 제임스는 등대로 놀러 가는 소풍을 꿈꾼다. 감정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등대는 ‘그토록 기대했던 멋진 곳’으로 제임스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성장한 제임스가 찾은 등대는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이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어쩌면 등대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등대 전문가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구소 이사장)씨는 그의 책 <등대>에서 썼다.

등대는 이중적이다. 멀리서 보기에 아름답지만 절벽 위의 외로운 집 같은 곳이다. 바다의 오랜 친구지만 때로는 폭풍우에 맞서 위태롭게 서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등대는 낭만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지난 5일 진도군 하조도 등대에서 척박한 삶을 일구는 이들을 찾아 길을 떠났다.

하조도 등대를 찾으려면 진도군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을 들어가야 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올봄 매일같이 텔레비전에 모습을 나타냈던 그 항구다. 팽목나무가 많고 조도군도 곳곳의 섬을 연결하는 곳 정도로 알려졌던 작은 항구가 이제는 온 국민의 슬픔을 운명처럼 받아안고 살아가는 항구가 되었다.

5일 오후 6시 낡은 여객선 한척이 팽목항에 들어섰다. 세월의 때가 묻은 사람의 얼굴이 그렇듯 오랫동안 조도군도를 오간 여객선에는 벗겨진 페인트칠이 곳곳에 주름살처럼 자리잡았다. 불안했지만 하조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교통편이니 별수 있으랴.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 타고 30분
34개 유인도, 119개 무인도 속
하조도 창유항에서 다시 한시간
물감 풀어놓은 듯한 바다의 낙조
박 소장은 이곳서 27년째 근무중

12m 높이 700W로 10초마다 깜빡
아침에 밤새 불빛 지킨 이들은
100년 된 철제계단을 따라 올라
등롱의 겉면을 깨끗이 닦는다
안개 낀 바다, 배의 유일한 벗

“엄연한 전문직인데 등대지기라는 말은 좀…”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먼발치 바다 안개에 뒤덮인 하조도 창유항이 눈에 들어왔다. 하조도는 조도군도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섬으로 34개의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멀리서 보면 새떼처럼 보인다 하여 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조도 하나만 놓고보면 마치 우직한 소 한마리가 앞발로 턱을 괴고 자는 듯한 형상이다. 소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 코뿔소의 뿔처럼 하얀 게 솟아 있는데 그것이 하조도 등대다.

하조도 등대는 대개의 등대가 그렇듯 창유항 인근 마을에서 한시간가량 걸어가야만 만날 수 있다. 등대는 사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깜깜한 밤 배가 항로를 잃지 않도록 존재한다. 그래서 바다에 빛을 잘 뿌릴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세워져야 한다. 그곳은 보통 섬의 끝자락 절벽 옆인 경우가 많다. 아름답지만 꽤나 발품을 팔아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 등대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좋은 동반자를 얻을 수 없듯 등대도 그렇게 연애하듯 찾아가야 한다.

저녁 7시께 하조도 등대에 도착했다. 하조도 앞바다는 며칠 전의 기상악화가 언제 적 일이냐는 듯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조물주가 마치 단감색 물감을 풀어 휘이휘이 저어놓은 것처럼 바다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박병훈(55) 하조도 항로표지관리소장이 기자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박 소장이 기자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가 인상적인 곽주현(33) 주사가 그 옆에서 씨익 웃으며 함께 인사했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선한 인상이다. “진도 앞바다 낙조가 정말 아름답다”고 말을 건넸다. “도시 사람들은 한번 와보고는 이런 데서 근무하니 좋겠다고 말하지만 여기에 일주일만 있어봐도 그런 말 안 나올걸요.” 박 소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박 소장은 올해로 등대 근무만 27년째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부터였다. 혈기왕성한 청년기부터 평생을 섬에 갇혀살듯 지내야 하니 여간 고욕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아름다운 자연은 좋은 벗이지만 매일 똑같은 아름다움만 오롯이 보고 살라면 어느 누가 쉽게 견딜 수 있으랴. 우리가 등대지기라고 부르는 이 직업은 도를 닦는 선인의 마음씨를 닮아야 버틸 수 있다.

하조도 등대는 세명이서 한달에 22일 근무하고 8일간 휴무하는 식으로 근무한다. 8일간은 가족들을 보러 목포 등 대도시로 나간다. “아이들이 아빠 언제 오냐고 찾을 땐 좀 힘들긴 하지요.” 결혼을 좀 일찍 한 30대 등대지기 주현씨는 아이들이 늘 보고 싶어 애가 탄다. 50대의 박 소장은 “(자주 못 봐서) 부부관계가 늘 신혼 같으니까 그런 점은 좋은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등대를 관리하는 사람들을 친근하게 등대지기라고 부른다. 등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싫어한다. 등대 근무자들의 정식 이름은 항로표지관리원이다. 등대의 이름도 항로표지관리소다. 왜 등대지기라는 말을 싫어할까.

“엄연히 전문직종인데 등대지기라는 말에는 뭔가 좀….” 박 소장의 말대로 항로표지관리원은 전문직이다. 그냥 자연을 사랑하고 혼자 지내는 것을 잘 견디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선설비와 항로표지 기사 자격증 등을 소유해야 국가고시 채용 자격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왜 등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등대지기라고 부르는지 의아하긴 하다. 철도원이라는 말 대신 철도지기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경비원은 있어도 경비지기라는 말은 없다. 유독 등대 근무자들만 애잔한 연민을 담아 등대지기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저녁 7시30분을 넘기자 해가 온전히 바다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등대가 바다의 지킴이가 될 시간이다. 등대에 불이 켜졌다. 잔잔한 진도 밤바다에 백색직선의 선명한 불빛이 산란하듯 흩어졌다. 하조도 등대는 12m 높이의 등대 맨 위 등명기의 배전판에 센서가 달려 있어 해가 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수십년 전 등댓불은 숯불로 켜곤 했다. 가까운 과거에는 석유로 점등했다. 요즘은 전기와 태양열을 이용한다.

하조도 등대.
하조도 등대.
조난자 떠내려온 적도…세월호의 기적 기도

등대 불빛을 바다에서 살펴보면 깜빡이는 것처럼 보인다. 등대를 가까이서 지켜보면 사실 불빛은 깜빡이는 게 아니다. 등명기의 등이 360도 회전을 하면서 직선으로 쏘는 불빛이 10초에 한번씩 같은 곳을 비추는 것이다. 사면체의 렌즈라서 회전하는 등명기가 정확히 40초 주기로 처음 위치로 돌아온다.

장죽수도의 뱃길을 담당하는 하조도 등대는 10초에 한번 깜빡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운영되고 있다. 등대마다 불빛이 깜빡이는 주기가 다르다. 만약 모두 똑같다면 망망대해를 헤엄쳐야 하는 배들은 어떤 게 하조도 등대이고 어떤 게 다른 등대인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선박의 항해 장비가 아무리 첨단화해도 등대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 선장은 선박이 항구 내 수역으로 진입하면 등댓불을 육안 관측해 선박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한다. 기상관측 장비를 이용해 풍향·풍속·가시거리 등을 운항관리실에 통보하는 것도 등대 근무자들의 임무다. 박 소장은 사명감이 크다. “등대를 지키는 일은 힘들지만 제가 등댓불을 지키지 않으면 배들이 갈 곳을 잃고 암초에 부딪힐 수도 있지요.” 진도 앞바다는 물살이 세어 위험하다.

박 소장은 요즘 세월호 사고로 예민해 있다. 하조도 등대와 아무런 상관 없는 사고였지만 인근에서 배가 뒤집혔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혹시 하조도 앞바다로 무언가 떠내려오는 것은 없는지 바다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 잦다.

“90년대 초반에도 하조도 등대에서 근무했는데 배가 조난을 당했는지 사람이 이곳으로 헤엄쳐온 적 있었어요. 숙소로 데려가서 안정을 시키고 뭍으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호의 생존자가 그렇게 기적적으로 나타나주길 박 소장은 바랐다.

하조도 등대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등대의 등롱(등명기를 둘러싼 등대 맨 위 시설물)은 여느 등대들처럼 지붕이 둥근 판테온 양식이다. 판테온은 만신전이란 뜻인데 ‘만가지 신이 깃들인 전당’이란 뜻일 테다. 바다의 영령이 함께해야 배들이 길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러한 모양들을 채택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등대는 대부분 100년 안팎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조도 등대는 1909년 2월 건립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는 1903년 6월 건립됐다. 왜 하필이면 100여년 전에 한반도 섬 곳곳에 등대가 들어서기 시작했을까. 우리의 슬픈 근대사를 살펴봐야 한다.

등대는 섬 주민들에겐 ‘낭만의 불빛’으로 비쳤을 수 있겠지만 탄생 당시 등대는 ‘침략의 불빛’에 가까웠다. 러일전쟁 뒤 일본은 한반도 곳곳을 출입할 일이 잦았다. 한반도 앞바다의 항로에 익숙지 않은 일본 배들은 암초 등에 부딪히는 사고가 잦았다. 일본 정부는 조선 정부를 압박해 1903년 인천 팔미도에 첫 등대를 건설하도록 했다. 돈과 노동력은 조선 정부가 대었어도 관리는 일본인들이 했다. 등대를 단순히 운치 있는 공간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될 듯하다.

등대에서는 밤새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자는 등대관리원과 함께 하조도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이날은 날씨가 좋은 편이어서였는지 별다른 복잡한 일은 없었다. 관리원은 등대 주변을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등명기가 제 속도로 돌아가는 것을 체크했다. 인근의 장죽도 등대 등 무인등대 7개와 등표(암초 위에 설치된 꼬마 등대)들의 등명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살폈다. 그외에는 특별히 바빠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은 등대 옆에 마련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았다.

밤새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 게다가 평생 해야 한다. 때로 무섭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더라도 이러한 외로운 근무에 익숙해져야 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 등대 관리가 간단해 보여도 만만하게 봐선 안 되는 이유다.

밤 12시. 곽주현 주사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하조도 등대 주변 순찰에 나섰다. 이날은 곽 주사가 야간 근무를 하고 박 소장은 낮 근무 담당이었다. 자정의 밤바다는 풀벌레들조차도 잠든 듯 조용했다. 등대의 불빛만이 등대관리원의 유일한 친구다.

하조도 건너편의 작은 섬들을 묵묵히 바라보던 곽 주사가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7년 전) 근무를 시작한 뒤 3개월까지는 우울증 걸릴 거 같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정년퇴직할 때까지 섬에서 살아야 해요. 가족과 함께할 수 없지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제 이름이 ‘두루 주’에 ‘빛날 현’이거든요. 등대관리원이 제 천직일 수도 있어요.”

스무날 이상 먹거리 챙겨와서 자급자족

곽 주사가 출출한 듯 밤참을 먹으러 숙소로 잠시 돌아갔다. 등대에서의 생활은 자급자족이다. 등대관리원들은 근무하러 섬에 들어올 때 스무날 이상 먹을 거리를 직접 챙겨온다. 혹여라도 등대에 지인이 있어 놀러 가려 한다면 뭐라도 사들고 찾아가길 권한다. 이들의 식량을 축내선 안 된다.

곽 주사 등이 머무는 하조도 등대관리원들의 숙소는 등대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수년 전 2층짜리 건물로 신축됐다. 덕분에 더는 낡은 방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었다. 등대관리원 각자에게는 30여평 남짓한 깔끔한 숙소가 제공된다. 몇년 전만 해도 등대 근무를 하러 올 때 짐을 선착장에서 지게로 날라야 했는데 그런 불편은 이제 안 겪어도 된다. 지금은 선착장에서 등대 앞까지 포장도로가 놓였다.

곽 주사가 자신의 숙소로 기자를 안내했다. 라면을 끓이러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곽 주사의 숙소를 훑어보니 오락기와 낚싯대, 기타 등이 거실 한편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든 취미거리를 찾아야 외로운 등대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죽도(하조도 인근 작은 섬)에서 근무할 때는 사람이 너무 그리워서 누가 등대를 찾아오면 ‘제발 커피 좀 마시고 가라’고 말하곤 했어요.” 30여분간 휴식을 취한 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곽 주사가 말했다. 멀리 조도 대교의 작은 불빛이 바다안개 사이로 아스라이 깜박였다.

새벽 5시50분께 날이 서서히 밝아왔다. 등명기의 불빛이 자동으로 꺼졌다. 밤샘 근무는 등대로 올라 등롱의 겉면을 깨끗하게 닦는 일로 마무리한다. 이날은 일찍 잠에서 깬 소장이 등대로 나와 곽 주사를 도왔다. 곽 주사가 하얀 하조도 등대의 문을 열자 나선형의 계단이 나타났다. 100년 전의 철제 계단 그대로다.

곽 주사와 박 소장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등탑에 올라 등롱 겉면의 유리창을 수건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밤새 불빛을 좇아 유리창에 붙어 있던 나방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방의 분비물은 먼지처럼 유리를 탁하게 만든다. 등롱 겉면을 제대로 닦아내지 않으면 등대의 불빛이 흐려질 수 있다. 700W짜리 전구에 아무 이상 없는지 확인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어깨를 쓰다듬는 아내의 손길이 그러할까. 정성스럽게 등롱을 닦은 곽 주사와 박 소장이 20여분 만에 등대를 내려왔다.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아침 8시. 박 소장이 아침상을 차려왔다. 손수 끓이고 부친 된장국과 달걀 프라이다. 창유항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바라다본 바다는 기도하는 아낙네의 모습처럼 평온했다. 작은 어선 한척이 물살을 가르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저 배도 안개가 끼거나 캄캄한 밤 의지할 곳이 없어지면 등대 불빛을 벗삼아 집으로 돌아가리라. 옥빛의 푸른 바다 위에 떨어진 햇볕이 은비늘처럼 반짝였다.

하조도/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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